위대한 그녀

이번겨울우리동네겨울은직무유기다,

적어도이즈음눈은내리거나쌓여있어야한다.

깊은상념에젖노라

도무지외관에무심한겨울나무들을

눈은덮어주어야하지않나..

늘푸른나무라는명칭이무색한저나무들

오히려겨울을더욱메마르게하질않는가.

노숙자들에게신문지한장이지닌엄청난온기처럼

겨울,

눈은내리거나쌓여있어야한다.

눈이지닌습기는나무에게만필요한게아니다.

지리멸렬한한겨울속의내게도꼭필요하다.

겨울이깊어가면

모든깊음이그러하듯이갈증도함께온다.

그러니드문드문눈이라도내려줘야지

이겨울을잘보낼수있지않겠는가.

지리하고또지리한시간들.

멸치의먼지를가볍게털어낸뒤

맨후라이팬에살짝볶아낸다.

올리브유를두른다음마늘편과청량고추를몇개썰어넣는다.

기름의느끼함과특유의향취를

마늘과청량고추가상당부분감소시킨다.

올리브유는샐러드로사용할때는당당하게맨몸을들어내나

멸치볶음에서는저안깊숙이사라져야한다.

때에따라다른모습이어야하는것을기름도인지하고있는것이다.

올리브유에대해

인지라는단어가너무뉴에이지적이라면

구조라는틀로바꿔볼수도있을것이다.

조청을붓고진간장도살짝붓는다.

보글거리며거품을내며끓기시작한다.

거품과끓음은모든것들이섞였다는사인이다.

불을약간줄인후잣과호두를멸치와함께넣어살살볶는다.

볶는시간이길어지면멸치는딱딱해지고

너무작아도감칠맛이없다.

마지막에향기좋은참기름몇방울을넣고잘볶은참깨를넉넉히넣는다.

강원도에서온곰취장아찌도조금담고

깻잎김치담아놓은것도약간담아쇼핑백에넣는다.

그리고그녀를만나러간다.

그때나온지얼마안되었던새우깡맛을보게해주었던내친구.

중학교일학년때부터만나지금까지친구로살아온

위대한여인R.

나는올해부터모든거대한것들에게서위대함을제하기로했다.

무슨이야기냐면

생각하고또생각해보니

살고또살아오다보니

사람들눈에보이지않는

아주작은것들이오히려절절하더라는것이다.

작고소소한,

진실하고고통스러운,

정직해서더욱힘든,

그모든것들을인내하며생명을성취해가는사람들….

마치나무처럼꽃처럼

아니그보다더욱아름답고위대해보인다는것이다.

무엇보다질병앞에서무너지지않으며더욱더열심히생을이어가려는

장렬한행위.

내암에게지지않으리,이겨내리.

암과벗하는길에서그녀는담대하다.

내친구그녀

이번에암수술세번째다.

갑상선암수술을하고

유방암수술반년마다온몸을전부살펴보는데

오월에아무런일이없던가슴에서무엇인가만져졌다.

그리하여다시수술을하고

또지루한항암치료가시작되었다.

나보기보다질겨야….

그녀는자신이질기다는것을스스로에게각인시키듯

수술직후병원에서그랬다.

그녀의질김은생에대한의지이자도전이다

아이구이쁘네….멋있다야,….

,이것암이라는말듣고하나질렀어.세일도많이해서..

잘했어,완전멋있어

평생멋쟁이라는이름을걸고살아온여인답게

볼터치탓인지생기있는얼굴이환자같지가않다.

뭐든골고루먹는게좋을것같아서

반찬가짓수많은한식집으로갔다.

항암치료를한뒤며칠이면울렁증이생겨.

배멀미몇배로보면돼.

입두다헐고온몸이아프지않는데가없어,

몸이좀우선해지면공기좋은산자락아래로이사갈까봐.

이렇게살다오라하시면가야지

나요즘교회안다녀도그것은있다.난절대하나님딸이란거,

요즈음일찍자고일찍일어나아침밥챙겨먹으려고

열심히먹고좋은것도먹어야지그래야항암치료를견뎌낼수있어.

이젠아무욕심도없다.

그래도건강하지않더라도사는날까지열심히살아야지,

뒤돌아보니인생참별것아니더라.

위대한여인R에게서

나는생명이지닌생명을향한생명을위한

생명자체의웅혼함을본다.

그렇게좋아하던커피를못마시는그녀앞에서

나는여전히커피를시켰다.

커피를시키며생각했다.

그렇다.

생은이렇게결국혼자가는거다.

니가나보다더커피를좋아했는데

너는커피를마시지못하는데

나이렇게니앞에서마시는것봐라.

이런것아주사소한일이지만

이사소한일이내포하고있는

거대담론이내겐보이네.

아무리사랑하더라도아무리좋아하더라도아무리안쓰럽더라도

그마음은그저깊은산속메아리라는것,

사람은결국혼자라는것,

니가혼자항암치료받는것

니아들딸이가슴아파하면서도

그아이들은자신의생을위해직장에나가야하고일해야한다는것,

니혼자밥먹어야하고

니혼자이겨내야하고

혼자아픈길,치료의길을가야한다는것,

어쩌면오직매순간의니벗은

니가가장원치않는

병이라는것,

슬프고참혹한아이러니가아닐수없다...

생명이란것이참으로덧없으며

소유라는게얼마나미미하며

가족조차얼마나먼존재들이며…..

그녀의외로움고독이저절로전이되었다.

그래,

인생은참으로고독하다는것을,

어느철학서의글보다

더깊고웅숭하게네게서읽어지는구나.

겨우두시간여만에눕고싶어하는그녀를집에데려다주고

집에돌아와

나는오후내내부엌청소를했다.

전동칼갈이로칼을갈아서

아주가늘게,정말가늘게,정성들여

양배추당근사과배피망오이를썰어샐러드를했고

이즈음살짝데쳐먹으면

마치꿀을넣은것처럼달콤한섬초를무쳤고

무나물과숙주나물에그리고배추국을끓였다.

거기다가밑반찬을꺼내놓았더니한상가득

가짓수많으면무조건좋아하는마이브라더께서

한마디

배춧국참맛있네

응들깨를넣어서…..

평온한시간.

그러나나는너와더불어

삶이고독해져

열심히음식을만들었던것이다.

인류역사가시작된이래로전쟁의소문은그치지않고

그리하여누군가에게는생과사를넘나드는시간일것이며

어디선가는절망과고통의탄성이발해질것이고

욕망속에자지러드는이도있을것이며

그리고배가고파죽어가는이들도있는….

역사의시작점을카오스라고했는데

지금도여전히카오스여서

도무지사람의계산으로는정리가안되는세상아닌가,

그래서우리는그분을의지하지않고는살아갈수없는것아닌가.

저녁식사를마치고난후보니

먼남쪽에서전남대교수최석화가가전시회를

한다는소식을문자로보내왔다.

그가그린자작나무가아직눈에선한데

이번에는순천만갈대를바라보았구나.

순후한자연스러움이충만한곳,순천만

그안에서무수히존재하던갈대들….,

그렇지.

여전히세상은깊은혼돈의강을건넌다할지라도

사람들은

혹은자연은

자신의생이라는몫을지켜나가고있는것이다.

내어린시절의아픈친구.

그아픔을잘이겨가겠다고다짐하는그녀를

나는위대한그녀라고칭한다.

8 Comments

  1. 데레사

    2015년 1월 22일 at 11:07 오후

    나는왜작은일이메만분개하는가?하던박완서님의글이
    생각납니다.
    소소한것에의소중함,저역시요즘많이느낍니다.

    친구분그고통속에서도밝게잘견디나봅니다.
    부디완쾌되었으면합니다.   

  2. 벤자민

    2015년 1월 22일 at 11:23 오후

    자기의아픔을잘이겨가시는
    위대한친구분!
    긍정적인마인드가참좋읍니다

    자!일단~~

    제가멸치뽁음을참좋아합니다^^
    요즘은입맛도없고거의외식이많다보니
    먹을게별로없어요
    우리집엔아애김치가없고
    얼마전에마누라가왠일인지엄청비싼멸치뽁음을해놓았어요

    저녁에집에오면은
    시도때도없이그거줏어먹느라ㅎㅎ
    어쩌다저녁먹어도멸치뽁음
    테레비보면서맥주한잔마셔도멸치뽁음
    폼잡고와인한잔마셔도멸치뽁음ㅎㅎ
    가히멸치뽁음인생!

    그집에도부라더가계시군요^^
    전영화잘안보는데얼마전우연찮게본한국영화
    신세계란영화!
    그기참연기잘한다고느낀황뭐시기배우가
    브라더~브러더~해삿더만
    그부라더요즘잘나가는건지잘못엮긴건지??^^

    순천만!!
    나살때는없던순천만
    하도사람들이순천만순천만그래~사니
    한국나가면꼭한번댕겨와야지~싶네요

    위대한여인에게화팅!!!
    내가한국살면은가서한번웃겨주겠구만은^^   

  3. 잘 우는남자

    2015년 1월 23일 at 12:52 오전

    참글이맛이있습니다.
    아픈친구를위하는마음
    사람은역시혼자라는거
    글이요리와같습니다.
    친구분의빠른쾌유를진심으로빌어봅니다.   

  4. mutter

    2015년 1월 23일 at 9:12 오전

    따뜻하기도하고
    가슴아프기도하고
    푸나무님좋은친구네.
    음식솜씨도좋고.

    날로먹을수있으면날로먹고
    조리순서를가장적게한음식으로
    먹으려고노력하고있어요.
    그래도김치는먹어야.   

  5. Angella

    2015년 1월 23일 at 6:15 오후

    푸나무님의친구분중에그런분이계셨군요.
    낫기를바라지만.무엇보다푸나무님이큰위안이되셨을듯합니다.
    저도정말어려운순간있엇는데.
    친구들이허구헌날연락하고관심주고하며지나갓습니다…
    그런따듯한배려로세상살만하지싶습니다…
       

  6. 쥴리아스

    2015년 1월 24일 at 4:27 오후

    신년들어깨닫는것이많으신푸나무님..제가가장좋아하는문장하나,뭐여러번써먹었지만,이글에꼭맞아또씁니다…’인생이견딜수없는것은존재해서가아니라자신의자아로존재하기때문이다’-불멸에서…꼭맞는말…결국’자신’의자아입니다…^^   

  7. 참나무.

    2015년 1월 29일 at 6:04 오전

    멸치볶음만드는방법이저랑거의비슷하네요
    요즘저도먹고있는데…
    가끔은(밥사먹을갈시간어준간할때)주먹밥맹글어가지고다니기도하는데요

    답글창이닫겨서여기라도횡수…;;

       

  8. 벤조

    2015년 1월 30일 at 5:48 오후

    눈은와야해요.저도습기가필요하니까…
    푸나무님의아릿한표현들이무딘제가슴을후빕니다.
    새우깡기억처럼저도아주사소한것을기억합니다.깊게…
    이아름다운글,
    ‘위대한그녀’로기억하면너무슬프니까,’멸치복음’으로기억할게요.푸나무님.
    아,
    방금라지오에서베토벤의’합창’이끝났습니다.
    위대한그녀에게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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