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트르 여행법

요즈음의꿈이라면,
지니고있는차에밥해먹을간단한취사도구와쌀조금,
오래먹어도괜찮을밑반찬약간과라면몇개를지닌채훌쩍떠나는일이다.
춥지도덥지도않은지금한열흘쯤여기저기다녀보는것,
그러다가좋은들판만나면차세우고나무그늘알맞은곳에앉아서
하염없이너른들판을바라보는것,
잠언처럼명료하지않는,들판보다야못하지만나름대로오래산사람이
삶에대해적은글두세권도필수이겠다.

그러자면차에커튼도만들어야하고등도하나준비해야하고
에베레스트에가서잠을자도춥지않을오리털침낭도하나사야하고
무엇보다시골들판에차를세워놓고자다가
무서운짐승이나무서운사람을만날까무서우니
시골파출소앞마당에주차를하는것은어떨까,설명하기가참복잡하겠다.
순경,어디가시는길이시오?아무데나요,순경,무엇때문에?그냥요,
질문겸홀소리,모텔에서자는것이더나을텐데….
아,저어기,(돈이없어서….라는뉘앙스를풍기는것이편하다.
사실돈주고남이덥던이불덥는것보다는허리가조금불편한것이
훨씬더나으니,)아,알아서하슈,…..
허락을한뒤에도순경아저씨는자기동료에게이야기하질않겠는가,
저그이상한아지매가하나왔어,돈사람같지는않은데,돈것같기도하고…..
말이설령들리지않더라도나는내내그사람말이귀에쟁쟁해서
책도잘안읽어지고잠도쉬오지않을것이다.

이런소심함때문에나는오늘도떠나지못한다.
대신빈차에오후햇빛을가득싣고강화로간다.
차츰비어져가는들판에가을햇살이눈부시게풍성하다.
늦가을햇살은어느계절보다길고가늘면서도맑다.
사물의이면속을거침없이투과해가는광선이다.
차가없는한적한길에서는아주느리게가다서다를반복하며
가을들녘을바라다본다.

청련사.표지를보는순간핸들의방향을튼다.
높지도가파르지도않는조그마한산길에서말라가는나뭇잎냄새가그득하다.
크고작은잎들의습기가투명한공기속에서형체를지닌채부유하다가
코속으로스며들어오는듯하다.
나는그들을소멸에대한회한의향기라고이름붙여본다.

예수쟁이인내가절에가는이유는단하나다.
그곳에서만나는숲과나무때문이다.청련사역시그런날실망시키지않는다.
주차장에차를대고조금쯤걸어올라가자
거대한,우람한,그러면서도잔잔하기그지없는
느티나무한그루가표표히서서나를바라다본다.
저물어가는햇살이옆으로길게새어들어와
오히려나무에게신비로운음영을드리워주고있다.
그는금빛햇살에아랫도리를환하게밝힌채나를반겨맞는다.
수줍으면서도당당하게그러면서도진지한눈빛으로날관찰한다.

설마,혹시,당신,
나무와의상견례시당신만나무를바라본다고생각지는않으시겠지.,
오히려나무는오래산자의홀연함과세월을견딘자만이지을수있는
원숙한시선으로당신을깊게은근하게바라볼지니,
나무와조우할때너무많은욕심을내서도안될일이다.
아니낸다고한들도무지무람없는일이될것이다.

존러스킨도뎃생을아주못했다고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뎃생을해야하는이유는
‘잘그리기위해서가아니라보는법을알기위해서“라고했다.
존러스킨의뎃생에대한이야기는삶에대한이야기로확장되기에충분하다.
물론나무에대한이야기로도그윽하기그지없다.
그리하여이제내가아는것은누구나다나무를본다고해서
다보는것은아니라는것정도이다.
하여나는한순간에나를반하게하는나무앞에서면경하게오메!
소리를내뱉지는않는다.잠시숨을훅들이킬뿐이다.

삼백년이넘는시간을한결같이이자리를지키고있다고생각해보라.
봄이오면여린싹젊은엄마처럼내어내고여름엔무성한젖으로키워내고,
가을이면땅으로무참하게돌려보내는
그리고차가운겨울을신음소리한번없이꿋꿋하게버티는아름다운인내의제왕,
아득한나무의우듬지를알것인가,자라나는가지의결을알것인가,
상처나고짓물렀던곳에생살이돋아난의지를이해할수있을것인가,
저푸르렀던나뭇잎의생을알것인가.
노오랗게변해가며펄럭이며져내리는슬픔을알것인가,
땅속고요한곳에자리하고서서침묵의몸짓으로저거대한
몸을지탱하고있는뿌리의힘을혹꿈이라도꿀수있을것인가,
힘겹게땅으로솟아난나무의뿌리위에살풋한늦가을의이불이되어주는
상냥한이파리,
그러나아직도싱싱하게숨을쉬는연초록,진초록잎새들,
물들어가는노랑단풍잎이빚어낸놀라운조화로움앞에서
나는서슴없이그의제자가된다.

메스트르는돈없는혹은돈안드는여행의미덕을
우리에게처음으로깨닫게해준사람이다.
그가쓴‘내방여행’은단어그대로방안에서하는,그러나끝없는여행이다.
그는당연히여행의목적지보다는여행하는심리에의해
여행이좌우될수있다고여겼다.
그는사람들을피해은둔할구석방이없다면얼마나슬프고절망적일까,
라고말했다.

우연히그를만나면이렇게말하고싶다.
당신의‘구석방’과
나의‘나무’도그리다르지는않지요?

2009년에내가쓴글이다.

검색하다가우연히만낫는데

블로그에있나햇더니없다.

6 Comments

  1. 참나무.

    2015년 9월 21일 at 8:38 오전

    가끔씩이라도거풍좀해주셔요~~
    서두읽다유혹당했어요   

  2. 선화

    2015년 9월 21일 at 9:13 오전

    설마..혹시..당신..

    나무와상견례시당신만나무를바라본다고생각않으시겠지
    ~~저요!!접니다/울동네너무도한적한..그래서가끔은섬찍한
    그길가의외로운한그루나무도그런가요?푸님?ㅎㅎㅎ

    며칠전운동후부부가저녁을먹고는바닷가아래아주한적한
    평상이있는곳엘갔습니다(션한캔맥주몇개사들고..)
    너른평상이3개가있었는데…그부부만이아는아지트라했는데
    이미그곳엔차에서숙식을하는여행객들이앉아있었습니다

    또어느날은강쥐들과늘댕기던그길끝자락에도젊은부부가
    차에서자고는그이른아침에라면을끓여먹고는커피를마시고
    있었는데너무좋았다구요~ㅎ

    생각보다많이그런여행객있습니다전혀순사들이이상하게생각않는…
    시도하세요!!!브라더님과함께~^^   

  3. 푸나무

    2015년 9월 22일 at 11:38 오전

    거풍이아니라
    저두잊엇던글하나를찾은거예요.
    전에썼던글을옮긴다고했는데아닌가봐요.

    쨍한가운데그래도가을이깊어가고있어요.   

  4. 푸나무

    2015년 9월 22일 at 11:43 오전

    하하선화님
    전아예집대신캠핑카를…도생각해보앗어요.
    그런데마이브라더께서는늙으면잠자리가좋아야한다고하더군요.

    태항산갔을때
    여행쟁이70대부부께서
    저기설악산자락어디선가밤을세우곤한대요.
    깊은밤밤떨어지는소리가톡톡들린다지요.
    그러면일어나차라이트를켜고밤을줍는데요.
    엄청많이요.
    밤떨어지는소리도듣고프죠.
    그런이야기들으면   

  5. 곽정부

    2015년 9월 22일 at 12:47 오후

    여행은뭐니뭐니해도혼자떠나는고독한여행이좋읍니다.사색할시간도생기고?   

  6. trio

    2015년 9월 22일 at 2:06 오후

    꿈은이루어진다…떠나세요.그러나튼튼한보디가드와함께…ㅎㅎ
    저도외국은혼자도잘다니면서막상한국에서는혼자훌쩍떠나지못할것같아요.
    그러나이제는외국도혼자서는…ㅋㅋ자꾸만자신이없어진답니다.
    혼자떠나는여행?낭만적이고멋져보이지만실제는그렇지도않거든요.
    외롭기한이없고무섭고두렵고…ㅋㅋ
    낭만을누리기이전에정신적인소모가대단하지요.
    그래도다녀와서뒤돌아보면그제서야아,낭만적이었나?싶기도하거든요.
    여행은많은것생각하지말고떠나고싶을때,기회가되는대로,우선떠나는것…
    요즘처럼인터넷세상에서는구석방에서도세계일주를할수있는…얼마든지…
    그러다가실지로떠날수도있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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