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받아쓰기 공책

가을산을못보고가을가버릴까봐못내초조했네.

사는게왜이리번다한지무슨중요한일이많아서산에도못간다는말인가,

게으름탓이지.

산과정분났을때는만사젖히고산을갔네,

산에혹하여정신이없었네,

가지않으면세상만사가허망했고산에들어서면깊게숨을들이쉬었네.

그무렵누군가내게부카니스트라는별호를붙여주었는데

기쁘게받아들이고즐겁게사용했네.

그즐거움속에는전혀나와어울리지않는간극이있었지.

평소의내가아닌듯하여그리신기했다네.

위영과산이라니,

산과바다처럼아득한말이었지.

그러니그래서참치열한연애였다네.

산을오직나만의사람인듯도여겼으니,

산으로서는오불관언,

그러나그의위대함은바로거기에있지,

아무리찌질한사람이라도차별하지않는다는것,

차별은속세의것이라는것,

그리하야천지분간을못하고깨춤을추었다네,약삼년여간,

사람이그렇지,산과난정분이라하여잦아들지않겠나.

올핸열손가락안에꼽을정도가되었으니

이젠부카니스트라는어불성설이되었네.

그래도내맘어딘가모셔두고싶은은밀한단어라네.부카니스트.

오후부터비가내린다더니시야는흐릿했네.

집에서조금만차를타고나아가면저어기하늘자락아래삼각산이오롯이나타나지,

신기한이야기를아들에게많이전수해주신시아버님께서는

삼각산을학산이라고도불렀다는군.

멀리서보면흰바위들이하얀학처럼보여서….

나무위의학식구들처럼보이지않았겠나.

그이야기를들은후나도가끔생각해보긴한다네.

더군다나어제는하늘에서구름이살짝내려와삼각산봉우리를은은히덮고있는데

가히신선이살만한곳처럼아득하게여겨지더라는거지.

어느풍수학자가그랬다고올만에같이산을가는마이브라더가그러더군,

명산은높거나험해서가아니라신선이살고있어야명산이라고….

그러면서시아버님해주신이야기를해주는데

우리나라지리산에도갈처사라는신선이살고계셨다는군,

하도낙서28수를아는바둑신선,

어느선비가과거시험에실패실패를하여낙향을했다는군,

지리산어디쯤여관에묵는데

공교롭게도돈이엄청많은중국상인이거기에함께묵었던거라.

(언제나스터리는기막힌우연에서비롯되는거지)

선비의아내용모를보니천하절색,

흉심이동한바.수작을걸어선비에게바둑내기를두자고….

이선비도바둑이라면지는일이없는사람이라게임신청을받아들였지.

<천냥을걸겠소통크게중국상인이말하니나는그런큰돈에걸맞게걸것이없소.그럼대신당신의아내를거시오.당연히선비에게는천냥이라는어마무시한돈이어른거렸겠지.에이설마내가저중국상인에게지리좋소.>

내기는시작되었고쉽지않는게임중간에중국상인이화장살에갔다네.

그때아랫목에누어있던늘그니가일어나바둑돌몇개를움직거리더니

휭밖으로나가버렸다는거야,

보나마나헐한차림일망정범접치못할기가있었을터,

다시중국상인과바둑을두는데몇수안두고중국상인이졌다며돌을내렸대.

하면서하는말.

<당신은지금왜이긴지도모르는바둑을두시고있소이다.이수는하도낙서28수라는수인데신선아니고서는모르는바둑의최고봉수요.아마아랫목늙은이가지리산에산다는갈처사였나보오..>

하여천냥을받아쥐고잘살았다는이야기.

이런옛날이야기는어쩌면이렇게단순하고명쾌한지,

마치가을산같질않는가.

내시아버님께서는세상경험이아주많은분이셨다네.

젊은시절일본과중국을온통휘젓고다니셨다니

다닐기운이없을때서야집에계시면서듣고본이야기를아들에게해주셨다니

그리고그많은방황을한후에예수님께귀의,

신혼여행다녀와서에배를드리며말씀을시아버님께서전하시는데

태안의신자였던나,

그때까지들었던어느목사님의설교보다

평신도였던아버님의말씀이더훌륭했다네.

이미낮은곳땅으로이사를한나뭇잎들이길에자욱했네.

죽음이자자유처럼보이기도했다네.

한나무에만매여있다가겨우바람불면조금흔들리다가

져내림과동시에저렇게자유롭게바람다라차바퀴따라서도저렇게굴러다니다니,

치매노인의천진함처럼….낙엽들천진해보이기도했다네.

오랜만의산길,

다리는아프고숨소리는헐근거렸네.

난데없이팥배나무붉은열매아래진달래가피어나있었네.

해찰하라는사인이지^^g

안녕꽃아,지금이렇게피어나버리면내년봄에는너어떡하련,

다들피어나있을때,이미사용해버린네눈()을감고너는대신무얼하련,….

이즈음잦은가을비로물소리가제법세찼네.

이상하지저렇게커다란소리로줄기차게귀를채우는데도그소리는소음이아니었네.

사람이나혹은기계가내는소리와는전혀다른차원의

무채색소리….는샤워기능이있네.

그아니라도혼자걷는산길은참으로소소하여

잡다한것들을떨궈내는기능이강하다네.

인식에충전을가해사유가선명해지는데

더불어저계곡의물소리들은분별이반듯하게줄을서게도한다네.

겨울엔산두외로운가보네.

중간쯤오르니헐벗은모습이여름과달리푸욱가라앉은듯

손에잡힐듯가까이다가왔네.

나그다지멀지않아,손짓하는듯,

산을,한결같은산을바람에일렁이는잎새같은사람속에비유하는게맞는가몰라,

그러나그렇게위무하고싶은마음에

겨울산도외로움탈거라고그래서낮아지는거라고,생각해본다네.

산에들어서면우리는부부가아니라네,아는사람도아니라네.

저냥반은앞서서걸어가고

내가너무뒤쳐진다싶으면잠간쉬면서

나를기다리고내가보이면다시오르고

그렇게따로가는길이지.

오랜만에백운대를올랐네.

마치한라선이라도되듯자욱한안개와바람…..뿐이었네.

오후1시에시작한산행인데도어둠이걱정이안된것은

혼자가아니어서지..

늦은오후산길을걸어내려왔다네.

오르는길은힘에겹지만내려오는길은잘걸어

우린그제야부부가되어혹은산친구가되어함께내려왔다네.

산을거의다내려올때쯤어둠이산을물들이기시작했다네.

그렇게늦은시각산에있기는아마도처음이었네.

어둠의성정은휘휘하다네.

!일갈하지않더라도오솔한기운으로사위를제압해버리네.

어둠의색은뭘까,

태양이사라진다는것,

빛이없으면색도없는걸까,

밤이시작되기전,

태양빛이완전히사그라들기전.바로그때

그짧은시간에

혹시만물은오직그만의색을보여주는걸까,

물은더욱푸르렀고

물소리는그푸름을더욱짙게만들었고

서서히어둠이덮히는하늘은누군가가바라보는하늘이아니라

구름이나바람혹은태양을담는그무엇이아니라

그저하늘…..

그리고

계곡주변의바위들이하얗게변했네.

아니낮에도계곡의바위들은하얗지만

일몰의그시각미묘한흰빛은오히려등처럼환해지는듯,

어쩌면깊은밤,온통적막한어둠속에서혹시산속등대로화하는게아닌가.

그늘진곳에겨우몇남았던상수리나무의노란단풍잎몇개가더욱찬연해보이기도했고

계곡저편의시들다가말라버린당단풍의붉은잎들은

마치팥배나무열매처럼…..보이기도했네..

버드나무노오란잎몇개남아나무를지키고있었는데….눈부신슬픔,

산자락을벗어날즈음….

아마도그날우리가마지막산사람….이었을까….

밤새내여전히여상히여일하게흐르고좌정해있을

고요한그모든존재들에게

향하는외경!

******

내받아쓰기공책을보고

바람과나무,아이와노인,

귀신과저승사자모두

한마디씩하고간다.

"내가이렇게말했나?"

"내이야기는이게아닌데."

"잘못들었군."

귀가어두워져서걱정이다.//자서(自序)/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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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ussy:Clairdel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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