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석류

석류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달디 단 참외와 단감 정도이다.

몸에 좋은 사과나 배 토마토는 거의 안 먹고

딸기나 포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귤은 좋아한다.

새로 개량해서 새콤달콤한 맛이 증가된 레드향이나 천혜향보다는

그냥 평범한 귤,

그것도 굵기가 조금 굵고 껍질이 얇아서

약간 심심한 단맛이 나는 귤이 좋다.

 

그러니 천상 촌스러운 입맛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입에 맞는 것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려 하는데

여전히 나는 입맛에 맞는 음식만 즐겨하니

아직 몸철(?)이 덜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내가 석류에 꽂혔다.

마트에 가면 굵고 단단한 그리고 송이가 큰 석류….를

한 박스씩 사다놓고 매일 먹는다.

에스트로겐이 많아 나이든 여성의 과일이래,

양귀비도 먹었대.

크레오파트라도 먹었대.

양귀비처럼 크레오파트라처럼 석류를 먹는다.

딸아이는 가끔 옆에서 몇 알정도 먹다가 그만두고

남편이나 아들래미는 손도 대지 않는다.

물론 석류도 개개의 맛이 달라서 어느 것은 아주 달지만

어느 것은 신맛이 강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선명하게 붉은 자태가 귀골이다.

바라만 봐도 오지다.

석류를 깨끗이 씻어. 조금 넓은 접시와 잘 드는 과도를 함께 준비한다.

그리고 손에 힘을 뺀 다음 과도로 살짝 양옆을 잘라내야 한다.

마귀할머니의 루비주머니…

연약한 루비가 터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뒤꿈치를 높이든 자세처럼 아주 아주 조심할 것,

잘못해서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순간에 마구마구 붉은 피를 흘린다.

 

발레리는 석류…를 빛나는 파열이라고 했다.

아마도 발레리는 손길이 거칠은 듯 싶다.

그러니 파열….이 먼저 다가왔겠지.

루비를 모르던 율곡은 붉은 구슬이라고 했지.

마치 폭탄처럼 생겨서 수류탄ㅡ손으로 던지는 석류 폭탄ㅡ이라고도 불렀다.

근데 이런 대목은 지금 내가 먹는 석류와는 조금 다른 듯 도 싶다.

 

내가 먹는 석류는 아주 먼나라에서 왔다.

어느 때는 이란 산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캘리포니아 산이기도 하다.

기실 우리나라 석류는

여름날 초록나무 잎새 사이에서 피어나는

주황색의 선명한 꽃이 주는 정한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열매는 작기도 하고 지나치게 시어서

과일 속으로 밀어 넣기에는 조금 눈치가 보인다.

 

오늘은 캘리포니아 산…

뜨거운 햇살과 날마다 다함없는 열애에 빠졌을 것이다.

이렇게도 붉게 익으려면….

 

(상략)

뒤늦게 석류를 쪼갠다

도무지 열리지 않는 門처럼

앙다문 이빨로 꽉 찬,

핏빛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네 마음과도 같은

석류를…(하략)석류//나희덕

 

이젠 위아래가 잘린 석류에게

아주 곱게 열십자를 그어주어야 한다.

전에 우리 엄마….언제나 막한 밥 위에 십자가를 그으시곤 했다.

그 짧은 순간 우리식구 건강하게 해주옵소서..기도하셨겠지.

이제는 엄마도 나도 잊어버린 버릇인데

석류에 십자를 그을 때 마다

무럭무럭 솟아나던 김과 엄마가 주걱으로 그으시던 십자가 생각이 난다.

 

역시 깊지 않게 아주 살짝만

세련되고 능숙한 손길의 칼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류를 가볍게 잡고 아주 천천히 벌린다.

수류탄이 터지지 않도록

가운데서 루비가 튀지 않도록

결대로 벌어지게끔..

내 아귀의 힘이 아닌 석류 저들의 결을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나는 겨우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

결이 아주 중요하다.

결은 일종의 순리이다.

편안한 귀갓길

 

잘하면 구슬 한 알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몇 알 정도는 실패하기도 하지.

그리고 다시 반쪽을 살짝 나누면

익숙한 길 찾아 걸어 가듯이 석류가 수욱숙 제 몸을 열어보인다. .

여러 개로 조각난 석류에게서

수줍기 그지없는 연미색 속옷을 살짝 벗겨낸다.

거기 껍질보다 더 붉은 자태들…

붉은 루비들

아름다운 구슬들

부드럽기 한량없는…..

살짝 입에 담고 누르면 온통 터지고야 마는

그 달콤하고 그윽한 영롱함…

 

연푸른 새순 맛,

자라나는 신록 맛,

짙푸른 녹음맛, 그리고 화려한 꽃 맛….

아니지 바람..비..구름…햇살…..흙…..

오! 할렐루야~~~

 

 

4 Comments

  1. smdthghk

    2016년 1월 5일 at 12:20 오전

    음 봉사 문고리 잡는 양
    겨우 글 한꼭지 올렸습니다.
    근데 다른곳과 달리 제집…아래는 왜 이리 휑한지요? ㅠㅠ
    이사온 글들도 안보이고…
    그래도 금방 잘되겠지요? ㅎ
    모두모두 근하신년…하세욤.

  2. ohokja1940

    2016년 1월 5일 at 1:41 오전

    참 어렵지요?
    오늘 처음으로 저도 사진을 겨우 올려봤는데 크기가 마음에
    안드네요.

    앞으로 나아지리라 생각하면서…
    반가워요.

  3. suni55

    2016년 1월 5일 at 6:20 오전

    이사 후 첫 글 반갑습니다.

    나에겐 아주 슬픈 이사의 추억이 담긴 과일이 석류입니다.
    아직도 애닯은 과거얘기…….

    게시판이 어찌나 까다로운지
    적응을 한참 해야 나아지겠지요?
    우리가 익숙해 져야지요.
    복된 한 해가 되세요.

  4. 참나무.

    2016년 1월 6일 at 10:54 오후

    이우환 작품으로 배경 이미지를…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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