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온순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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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사실이다.
올해 나는 꽃에 조금, 아주 조금 관심을 잃었다.
올봄 꽃들은 너무나 화들짝 피어났고 너무나 많았고
그 눈부심이 하 현란하여 그들이 내는 소리가….
그러니까 정말 소리가 나는 것처럼 여겨지곤 했는데
그 소리들이 심하게 부산스러웠다.
마치 이명처럼…,
‘귀속에서요. 귀뚜라미가 사스락사스락 수백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교회 권사님은 자신의 이명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명은 귀가 저 혼자 운다는 이야기다.
소리를 내는 근원도 없이.
하긴 긴 세월 귀를 통하여 들어낸 소리가 얼마인가,
풍월을 읊는 서당 개처럼 귀는,
들어온 그 수많은 소리들 중
가장 인상적인 소리를 기억하지 말라는 법 어디 있겠나,
자기만의 소리 하나쯤 품고 싶어 지니고 있다가
헐거워진 사람의 기능을 틈타 슬그머니 내보내는 거겠지.
그러니 꽃에 대한 무덤덤은
내 눈의 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산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산에 들어서니 온통 연분홍 치마다.
진달래가 마치 땅을 덮기라도 할 것처럼 피어나 있었다.
소나무 밑….가느다란 잎들 사이로 햇살이 투과하니…
아직 채 순이 돋지 않는 참나무들 밑으로도 무한량
그리고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산벚나무는 머릿속 버짐처럼 하얗게 하얗게 피어나 있었다.
산 아래쪽으로는 여기저기 개나리가
마치 물뿌리개 속에서 뿌려지는 물처럼 자지러들 듯한 자태로
노란색을 뿜어대고 있었고…
사이사이 선연한 분홍빛 도화꽃도 한축 자리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만화방창이었다.
울긋불긋 꽃대궐이었다.
더 할 수 없이 환하고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런데
그 수많은 꽃들에 대해 도무지 설렘이 없다.

겨우 며칠 전이다.
보길도에서 꽃들을 보며 가슴 무너져 내린 것이…..
보길도의 나와 북한산의 나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인가,

그러니까
꽃에 혹한 것이 아니라
꽃에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이른 봄 꽃이 지닌
처음, 신선함, 작음, 기다림의 끝, 새로운 계절,
그리고 여행이라는 환경과 꽃과의 케미…가 빚어낸 어떤 상태…를
단순화해서 나는 내가 꽃에 혹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다리 컨디션도 그래서 백운대 오르려는 길목에서 원효봉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효봉을 지나 짧지만 세찬 바윗길을 지나는데
119헬기가 북한산을 향하여 왔다.
그리고 앞봉우리…용출봉인지 의상봉인지…에 한참 머물렀다.
사람을 구출해 가나…했더니 다시 이십 여 분을 뱅뱅 돌다가 그 자리에 섰다.
아마 누구보다 씩씩하게 걸었을 것이다.
봄의 산기운을 폐 깊숙이 들이마시며 상쾌했을 것이다.
순간의 낙마.
어쩌면 초도 안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산에서 다치는 일만 그럴까,
우리가 사는 모든 일들이 여여하게 되어지는 듯 하나
물 세차게 흐르는 계곡에 허술하게 놓인 돌다리를 건너가는 게 생 아닌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삽시간에 넘어질 수 있는,…
그러다가 귀룽나무를 보았다.

모든 나무의 순들이 이제 막 솟구치기 시작하면 의외로 그들의 색은 다양하다
떡갈나무 순들은 거의 단풍처럼 붉기도 하다.
연한 회색의 순 갈색의 순 연노랑…….
햇빛을 받아 점점 녹색으로 변해가나
나무순들은 제가각의 색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아직 산이 채 초록화 되기 전. 딱 이 무렵
초록도 아니고 연두도 아닌
정말 가장 아름다운…..
그 중간의…
그렇다고 그색을 연초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싫다.
순 먼저 나는 귀룽나무…

모든 나무들이 이제 막 순을 틔울 무렵 이미 자라난 순의 빛깔
귀룽나무의 색을 나는 녹연綠軟으로 부르고 싶다.
녹연은 버드나무의 푸름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지만
비유가 아닌 실제의 색으로 푸름초록연두가 환상적으로 배합된
귀룽나무의 색…. 딱 이 철이면 눈부시게 빛나는 나무….
모든 나무들이 초록으로 옷 입게 되면 잘 보이지도 않게 되는
아주 순한 나무…
꽃도 갓난아이 배내웃음처럼 순하기 그지없다.
아주 작은 봉오리에
더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는데
그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만개하면….구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구름나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런데도 참 온순하다.
저만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조차 온순하게 만들어준다.

길가가 아닌 조금 더들어가서 귀룽나무 몇 그루가….
그리고 꽃 몇송이가 피어나 있었다.
어머나….
사진 몇 장 찍고 그 아래 앉았다.
한참 앉아있었다.

좀 온순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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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4월 16일 at 3:20 오후

    아, 아름다워요.
    이맘때의 산풍경이 제일 아름다운것
    같아요.

    나도 북한산 가고 싶은데 이제는 못가요.

  2. 푸나무

    2016년 4월 19일 at 9:58 오전

    하하, 이제는 못가요….가 조금 슬프게 들리네요.
    대신 둘레길 가시면 되죠 뭐…감사합니다.

  3. 푸나무

    2016년 4월 19일 at 10:09 오전

    참나무님께서 쓰신 댓글은
    아예 승인 난이 없네요.
    제글 댓글난에 올릴수가 없어요.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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