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로필

 

 

 

입대 날이었다. 아무리 차가 많지 않은 시절(1970년)이지만 오전 9시까지 H대학 주 운동장으로 모이라니 서둘러 나서기 전 아버지께 넙죽 큰 절을 올리며‘군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고하자, 아버지는 쓰다 달다 말씀 않으시고“너! 집구석에서 하던 행동 했다가는 군대에서 맞아 죽는다.” 하시며 군대 가는 자식 놈에게 조언인지 충고인지 아니면 협박이신지….덕분에 반 절도 생략하고 아버지 곁을 뛰어 나오듯 빠져 나왔다.

 

조만간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방이라는 의미의 책을 하나 출간하려고 거의 준비가 되었다. 며칠 전 출판사의 최대표로부터 메시지가 뜬다. ‘사진과 프로필(약력)을 정리해서 사무실로 메일 해 달라’는 메시지다.

 

다른 건(다른 거라고 할 것도 없지만) 다 좋은 데‘프로필(약력)’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들숨은 가빠지는데 날숨이 나오지 않는다. 더 하여 심장까지 요동을 친다. 나의 가장 아픈 데를 찌르고 소금까지 뿌려댄 경우다. 하긴 출판사 최대표가 내 사정을 어찌 짐작이라도 했을까?

 

고등학교를 무려 다섯 군데를 옮겨 다녔다. 그러는 동안 부모님의 속이 속이었겠는가. 정규교육을 그나마 받았던 게 고등학교 2년 까지다. 나의 최종학력은 그래서 중퇴라고 밝힌다. 그것으로 문교부 혜택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지만 자식 둔 부모 마음이….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최소한 인간구실을 할 수 있다며 마지막 다섯 번째 그것도 상업고등학교에 적을 두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출석 일수만 맞춰주면 졸업장을 주겠다는 약속에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기적적으로 졸업장을 샀던 것이다.

 

이 정도면 군대 가는 자식 놈에게 조언인지 충고인지 아니면 협박이신지 모를 말씀을 하신 아버지의 속을 충분히 독자 분들께서 납득하시리라.

 

그 쯤 했으면 될 것을 아버지는 그래도 대학 물은 먹어야 한다며 또 반강제로 K대 청강생으로 등을 떠미셨다. 아버지의 깊은 뜻과는 달리, 안 될 일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내게 학문이란 가당치도 않은 길이었다. 그것보다‘돈. 돈. 돈’평생을 입에 담고 사시던 어머니 때문이라도 편하게 학문을 연구하고 닦는 것 자체가 낭비고 사치였다. 딱 한 학기 예쁜 여학생 꽁무니 좇는 것으로 학문을 대신하다가 그것도 지겨운 나머지 입대를 한 것이다.

 

글쎄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군대 가는 것을 지옥 가는 것만큼 두려워하고 싫어하지만 그 시절은 그래도 36년 압제기의 독립군만큼은 아니더라도 애국심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애국심을 발휘하는 때부터 이상한 조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토록 지겹던 아버지가 그립고 잔소리 하시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고 누나. 형님 .동생 등 즉, 온 가족이 사무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효도 하겠습니다. 형제간 우의를 다지겠습니다.’라는 편지를 거의 매일 썼다. 군문 내에서 부모형제께 쓴 편지대로만 살았어도 효자로 국민훈장 정도는 받지 않았을까? 물론 편지대로 효도는 못했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 내 인생(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 군대야 말로 공짜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인간개조를 하고 사람을 만드는 곳이었다.

 

아무튼 군대생활 3년여를 마치고 귀가를 했지만 여전히 학문과 담 쌓는 나는 복학을 하지 않고, 다행히 아버지께서 구입해 주신 상고졸업장을 앞세워 취직을 했다.

 

정확하게 세 군데의 직장을 옮겨 다녔다. 월급이 적거나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상고졸업장으로는 인간 행세를 할 수 없을 만큼 학력. 학벌의 위세는 대단했다. 후임자가 항상 먼저 출세(?)하는 제도가 불만스러웠다. 내 비록 학문을 제대로 연구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19금 책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손에 놓지 않고 열심히 읽었는데 좀 그럴듯한 직장에 경쟁이라도 해보려면‘대학졸업장 특히 ROTC장교 출신우대’라는 신문광고 때문에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다 언제쯤에나‘돈. 돈. 돈’을 외치시는 어머니의 포원(抱冤)을 풀어드릴까? 생각 끝에‘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어!’단호한 결심을 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첫 사업은 6개 월 만에 거들이 나고 알거지가 되었다. 옆집 순이 엄마나 뒷집 영희 엄마가 마누라를 찾아 단간 방 문을 열면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숨기 바쁜 시간도 있었다. 두 번째 사업은 부모님의 전 재산을 저당 잡히고 시작했다. 그런대로 첫 번의 실수를 거울삼고 열심히 한 결과 제법 공장도 널이고 수출도 잘 되었었다(부모님 재산도 복구해 드렸다). 그런데 공장을 자꾸 키우는 과정에서 무리를 했나 보다. 더하여 국내의 인건비가 널뛰듯 했다. 다시 파산. 그 과정에서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법의 심판도 받았다.

 

재기를 꿈꿀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었다. 죽고 싶을 만큼.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특히 마누라와 3남매를 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아니 겁이 나서 못 죽겠더라. 살아있으며 막노동을 비롯한 이런저런 직업을 10여 개 바꾸며 살아갔다. 어떤 사업을 하던 악덕업주가 되어선 안 된다. 그즈음 이전 나와는 비즈니스 관계있던 후배가 나를 어여삐 보고 그의 안내로 중국에 진출했고 다시 소규모의 공장을 현지에 차리고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 꿨다.

 

내 나이 72(한국나이). 이젠 은퇴하여 산 좋고 물 맑고 골짜기에 전원주택 지어 놓고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면, 부침(浮沈) 심했던 삶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3남매 시집장가 가서 넷이나 되는 손녀를 안겨 주었다. 아이들 모두 윤택하고 행복하다. 나와 아내도 행복하다. 행복하면 됐지… 좀 복잡하고 장황했지만 이게 나의 프로필이고 약력이다. 끝으로 최 대표에게 묻고 싶다. 프로필(약력) 시원찮으면 책 안 내 줄 건가? 그렇다면 말자고….

10 Comments

  1. 無頂

    2019년 3월 8일 at 1:51 오후

    인생 후회없이 사시네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하고 싶은것 맘대로 하고 살기가 쉽지 않는데요.
    소인이 생각하기에는 굵게 사시는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늘 행복하세요 ^^

    • ss8000

      2019년 3월 9일 at 3:59 오전

      늙어가며 과거를 반추해 보면,
      후회되기도 또 부끄럽기도
      스스로 놀랍기도 한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젠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어졌습니다.
      이래저래 세파에 흔들려 살아다 보니
      수치심이란 게 없어졌나 봅니다.

      책을 사 주신다니 진심으로 감지덕지입니다.
      미리 밝혔지만, 땡 전 한 닢도 개인적으로 사용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책이 나오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2. 無頂

    2019년 3월 8일 at 1:54 오후

    책이 출간되면 아래 주소로 연락 주세요.
    서점에서 한 권 사서 보겠습니다.

    anwjdanwjd@hanmail.net

    • ss8000

      2019년 3월 9일 at 4:07 오전

      넵, 반드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3. 데레사

    2019년 3월 8일 at 5:48 오후

    포로필 적당하게 써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학교는 마지막 다닌 학교이름만 말하면 되지 굳이 그 옮겨다닌
    학교 다 쓸 필요는 없을것 같아요.

    책 출간, 일단 축하 합니다.

    • ss8000

      2019년 3월 9일 at 4:06 오전

      감사합니다. 누님!
      언젠가 누님 말씀이 아직도 머리에 맴 돕니다.
      ‘소나 개나 다 책 낸다고…’ 하시던….

      제가 그 소나 개가 됐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윤이나 명성(자랑)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근간 벌어지고 있는 한일관계가 너무 심각하여
      감히 민간으로 국익을 위해 실상을 알리고 싶어
      급히 서둘렀습니다.

      수익이 날지 수익이 날 정도로 책이 팔릴지
      기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이 책을 일본어를 번역해서
      출판할 계획입니다. 출판비라도 나오고 만약
      땡전 한 닢이라도 수익이 생긴다면 본문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들 그리고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누님!!^^

  4. 미미김

    2019년 3월 9일 at 5:34 오전

    🌵책이 서점에서 판매 하기도 전에 절판 되는거 아닙니까?
    선생님의 책이 벌써부터 관심과 인기를 받고 있는것같아서 해보는 소리 입니다.
    멀리있는 저도 어떻게 해서라도 구입해 읽어볼 생각입니다.
    제 e-Mail 에 ” 지금 서가에서 판매합니다 ” 라는 문구만 띄워 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ss8000

      2019년 3월 9일 at 12:20 오후

      “”판매 하기도 전에 절판 되는거 아닙니까?””
      덕담 중 최고의 덕담이십니다.

      절판이 될 정도로 책이 잘 팔려서가 아니고,
      책이 많이 팔리면 수익도 많이 날 것이고
      위안부 할머니나 강제징용자 분들께 보다 많이 위로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만…
      또 강조를 하고 강조를 해도 사용(私用)은 땡 전 한 닢 않겠습니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별고 없으시지요?
      말씀만이라도 감사드립니다.

      사실 비매품으로 출간 하려 했으나
      원고를 읽어 본 출판사 몇 곳에서 출간을 보이콧 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거금(?)을 들여 출간을 합니다.

      개인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 원고를 일본어로 다시 출간하려합니다.
      무너진 한일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미미님을 위시한 모든 이웃 분께 무료로 한 권 씩 드려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그래서 한 권이라도 더 팔려 나가기를
      속물이 되어 기도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5. 백발의천사

    2019년 3월 15일 at 10:25 오전

    오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벌어먹고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아 오랜만에 이 방에 들렀습니다.
    그동안 오선생님의 글에서 대략적으로 감은 잡았습니다만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주신 덕에 오선생님의 프로필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책 나오게 되면 저도 꼭 사서 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어판은 일본 지인들에게도 나누어 주겠습니다.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 ss8000

      2019년 3월 16일 at 7:35 오후

      천사님 이제야 봅니다.
      제가 좀 큰 수술을 한 관계로 아직 입원 중입니다.
      지난 토요일 입원하여 금주 월요일 수술을 했답니다.
      수술 결과는 좋아 내일 쯤 퇴원이 가능 하다고 합니다.

      이제야 좀 살만하여 노트북을 병원으로 가져 오래서 이것저것
      점검 중입니다. ㅎㅎㅎ….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꼭 한 권 구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는 정말 큰 뜻이 있답니다.

      말씀대로 해 주실 것을 믿고 기쁜 마음으로 퇴원하여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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