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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석조가 만난 사람]주한 아프간 대사관 와히르 자문관을 만나다. - 중동 천일야화
[석조가 만난 사람]주한 아프간 대사관 와히르 자문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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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1 이태원 Paris Baguette

대학 도서관에서 신문, 책, 뉴스동영상, 다큐멘터리, BBC, NYTimes, Algazeera Channel과 그리고 낮잠과공부하고 놀고 꿈을 꾸다 오후 5시 이태원을 찾았다. 04:59이 되자 만나기로 약속한

Hazarat Wahir씨에 전화가 걸려 왔다. 주차 중이니 오분만 기다려 줄 수 있냐고 양해를 구했다.

‘시간 개념이 철저하군’ 속으로 생각했다.5분이 지났다. 아프가니스탄人인 그의 외모엔동양의 기운이 느껴졌다.악수를 힘있게 하고 커피와 이야기를나누고자 자리에 앉았다.

슴설레던 세 시간이었다.

소개를 했다. 난 ‘중동과 사랑에 빠진 꿈 많은 남자’라고 소개를 했다. 와히르(아프간. 38)씨는minister counseler of Embassy of Afghanistan 이라고 직책을 말했다. 걷는 자세나 검소하면서도 깔끔한 옷차림이 절도있어보였고, 자연스러운 매너, 에티켓 배인 행동에서 공직 생활을 오래했음을 알 수 있었다.

Paris Baguette 케페에 들어서니 종업원을 빼곤 전부 외국인이었다. 히잡을 머리 반쯤만 덮은 이란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앞에는 아흐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흡사하게 생긴 마른 체격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국 시월의 오후 다섯시는 황금빛깔로 물들었고, 시간에 종속되는 모든 물체들은 금빛에 물들었다. 와히르씨와 노석조(필자)가 앉을 테이블 또한 해질 무렵에 발광하는 금빛 햇살로 물들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한국땅에서 아프간의 한 지식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이란 사실이 감사함으로 치환되며 날 충만케 하였다.

"Jo(노석조의 영어 이름), 2년 동안 이렇게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를 하는 한국사람은 당신이 두번째입니다." 와히르씨는 한국에서 가장 힘든 점은 한국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외국인들, 특히 낯선 인종, 국적의 사람들을 향한 한국인의 닫힌 마음을 말한 것이다. ‘한국인들의 마음은 외국인에게 닫혀 있다.’라는 말은 중동, 아랍,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내게는 익숙한 말이었다. 한국에 와서알게된 아랍어منغلق는 이집트 유학생과 대화를 나누다 새롭게 됐다. منغلق는 ‘닫혀진, 패쇄적인’이란 뜻이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어요. 벌써 검은띠 1단 입니다. 근데, 한날 오랫동안 제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신 女선생님께 커피 한 잔을 신청했다가 아주 난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선생님이 손사래치는 건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도 그러면 안된다고 충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그저 태권도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과 대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죠." 와히르씨는 닫혀진 한국인의 마음에 대한 한 예로 태권도 도장에서의 얘기를 꺼냈다.

한국인으로서 그 상황이 머리에 그려졌다. ‘아프간 남성이 한국인 여성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말을 건낸다?’난 와히르씨에게굳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진 않았다.

와히르씨는 외교관답게 한국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기덕 영화감독의 작품은 전부 DVD로 소장했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또한 감명깊게 봤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가 안국동까지 차를 태워주면서 한 얘기지만, 자신의 한국의 판소리와 애국가를 들을 때 감정적 소통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까지 말하며 깊은 소견을 표현하기도 했다.

두 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엉덩이 한번 들지 않고 많은 얘기를 듣고 나눴다. 아프간 부정선거에 대해 그리고 해결방법에 대해, 다인종,다문화,언어,부족등의 고질적인 아프간의 사회문제, 소비에트연합 그리고 코뮤니즘의 폐해등이 주제였다. 국가적 차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종교에 대해 특히 이슬람에 대해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나는 그가 우선 실질적인 무슬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앞이마에 기도로 인한 검붉은 자국 및 굳은 살에 없다는 점, 마그립 살라(해질녘 예배/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 자동차 내부에 종교적 악세사리가 전혀 없었다는 점, 아랍어를 거의 모른다는 점등 확신할 순 없지만 짐작할 수 있는 나만의 리스트와 육감을 이용해 파악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아프간은 전부 radical한 무슬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못된 stereo type입니다. 우선 그는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아프간의 주종교가 이슬람이라고 되어 있고 전국민이 이슬람교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지방을 가도 모스크에 가서 하루 5번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프간이 몰락된 이유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이 문제이며, 정치적으로 이용된 꼬뮤니즘의 잔재의 폐해때문입니다."

와히르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보다 깊이 중동 지역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역사, 문화를 알고 오늘날에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아 건강한 하나의 국가로 발돋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라는 마음 또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와히르씨는 조만간 한남동 아프간 대사관을 방문하라고 말을 건냈다. 도서관에 jo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관련 사실들에 대한 서적이 한 가득있다는 것이었다. 아프간 음식 또한 자신의 집에서 선보여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옆에 앉아 있던 이란인으로 보이던 외국인들도 자리를 떴고, 우리 자리를 빼고는 새로운 사람들로 카페 안이 물갈이 됐다. 날은 어둑해졌다.

"jo, 밖에 나가 걸어가면서 좀 더 얘기 합시다. 담배도 한개비 피우고요."

카페를 나와 제일기획 건물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한국이란 작은 나로도 아프가니스탄처럼 주위 많은 열강들에 둘러 쌓여서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국민들도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탓’하지 않고, 대신에 ‘덕분에’라는 사고로 끊임없이 긍정의 힘을 부여잡아 왔다. 전쟁과 열강의 압제, 내란등 아프간이 겪었고, 겪고 있는 상황이 한국에게 낯설지 않다. 아프간의 현 상황을 이해한다. 아프간 사람들이 긍정의 힘을 믿고 희망을 품길 바란다."라고 했다.

그와 난 발걸음을 반대로 돌렸다. 그의 담배는 벌써 필터 앞까지 따올랐다. 알록달록한 이태원 큰 길을 옆에 두고 까만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오르막길이다. 어둠 속에 아프리카 미용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슬쩍 안을 들여다 보니 까막 골목길에 하얀 빛이 가득한 미용실에 까만 피부의 여인네들이 빡빡한 곱슬머리를 따고 있었다. 흑인들의 영가는 서로의 골슬머리를 땋아 주며 흥얼거리며 흘러나온 노래가 아닐까 순간 생각했다.

언덕길을 좀 오르고 보니 유료주차장이 있었다.

와히르씨는 태권도장에 가기 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우리 집 주소를 물었다.

그의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향하는 20분동안 이란 음악을 배경으로 한국 애국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서로의 나이를 물었다. 나는 스물 여덞 그는 서른 여덞이었다.

집 앞에 차가 섰다. 작별 인사를 했다.

"추석, 좋은 시간!" 자하라트 와히르씨가 손을 흔들어줬다.

뿌듯한 기분, 앞길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감사가 추석 보름달만큼 내 마음에 한가득 차올랐다. 이천 구년 시월 일일 밤의 일이다.

돌새 노석조 Http://stonebir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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