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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낯섦으로 만끽한 이집트 올드카이로 - 중동 천일야화
낯섦으로 만끽한 이집트 올드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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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길고 먹물처럼 검은 곱슬 머리를 늘어 놓은 이집트 기독교 여인들이

마리아와 아기예수 성화 앞에서 뭔가 간구(petition)하고 있다.

해외 경험이 없는촌스러운 조건은더욱 이집트를 민감하게 오감할 수 있는 축복의 조건이었다.

이집트에서 두번째 아침을 맞이 한 날,미스르 알 아디마(Old Cairo.구시가지)로 향했다. 묵고 있던 마아디(카이로 남부지역으로 한국교민을 비롯해 외국인이 많이 산다.)에서 메트로로 15분만에 도착했다. 전날 갔던 카이로 중심시가지(미단 타흐리르 주변)와는 달리 넓은 아스팔트 도로보다는 흙모래 반, 시멘트 반으로 포장된 작은 길이 뻗어 있었다. 계획 아래 지어진 도로가 아니라 사람이 수백간 걸어 다니던 자연발생적 길이었다.

미스르 알아디마(또는 카디마)라는카이로 남부지역은 이집트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하다. 책을 펼쳐 볼 것도 없이메트로 역(驛) 마르기르기스에서 내려 두 눈을 들어 주위를 보면,반경 1km이내에십여 개의 교회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이 곳은 7세기 이슬람이 이집트를 정복하기 전부터 인구의 90%가 무슬림인 이집트사회에 이른 오늘날까지예수그리스도의 맥을 끈질기게 부여 잡아 온 그런 동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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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그들에겐 염소도 자식이다.

마르기르 기스역에서 내리면 한쪽은 이집트 콥틱 기독교 박물관이, 반대쪽엔 주택가와 재래 시장이 펼쳐 진다. 박물관 쪽은 관광지라서 나름대로 정비가 돼있고 관광경찰·상인들도 많지만, 반대쪽은 이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시멘트 바닥은 움푹 패어 있고 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흙바닥 그리고당나귀·말 수레에 야채 과일을 실고 노점을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외국인이 없는’이집트 자연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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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올드카이로의 오락실. 한국에서 유행하는빈티지 인테리어라도 아는 걸까.

재생 종이를 구겨 벽을 장식했다. 오락기, 포켓볼까지 있다. 동네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

어리보기해서 박물관쪽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그만 반대편으로 나가 길을 헤맸다. 그래서 운좋게도 ‘2007년 이집트 자연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거 원, 책에는 관광객으로 붐빌 것이라고 쓰여 있는데 외국인은 고사하고 온통 당나귀, 말, 닭, 염소 양과 이집트 어린아이들로 가능 찬 동네가 나타났다. 길 양 옆으로 세워진 작은 상점들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웬 얼빵한 낯선 놈이 여기를 찾아 왔나 생각이 들었는지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의 눈빛을 내게 팍팍 발산시키셨다. 난 뭔가 잘못됐구나 느끼면서도 뭐 관광이 꼭 정해진 관광지에 가야만 하는 것이냐. 내가 가는 곳이 곳 관광지다 라는 생각으로 새침데기가 되어짙은 검은 색안경을 끼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거리를 활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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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이집트 서민들이 사는 주상복합 아파트.

거칠고 탁한 콘크리트 벽에 빛바랜아이들의 옷감이 바람이 흔들렸다.

각박한 사회가운데도 인간답게 사는 이집트 사람들을 사진 속 세탁물이 상징한다고 말한다면 억지 일까.

잘 관리되고, 유명하다고 소문난 지역을 가보는 것도좋지만, 이처럼 관광버스타고 온 사람들을 가볼 일 없는 또는 가이드가 흔히가지 말라고 하는금지된 지역을 나의 두 발로 밟아 보고, 그 곳의 공기를 들여 마시며 내가 지닌감각 수용기관으로 오감하는 것 또한 가치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이집트에 유학 온초창기에 이러한’깨달음’은 이후 내 유학 생활 내내배움의이정표가 됐다.

동네 아이들이 ‘재키 찬’이라고부르며우르르 몰려떼거지로 달려 붙었다. 나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으면 안되겠다 생각하고 ‘이방인을 환영해주는 척 해주는 관광지’로 발길을 돌렸다.이집트 콥틱 박물관이 나타났다.

‘콥틱’이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사회를 이해하는데 핵심키워드였다.콥틱은 이집트가 기원후 62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마가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객관적 자료로 고증되진 않았지만, 이집트인들은 전통적으로 마가가 이집트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이집트콥틱정교회는 제1대 교황으로 마가를임명.)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기독교 국가가 됐을 때 이집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7세기 이후로 이집트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콥틱이란 말은 의미상으로 이집트인을 두루 일컫는 말이 아니라 이집트기독교인을 지칭하는 말로 축소변화됐다. 이슬람 지배 이전에는 전부가 기독교인이었지만 지배 이후 ‘딤미 정책’으로(이슬람이 지배하는 비이슬람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차별 정책) 이집트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면서 이집트인들의 종교가 기독교과 이슬람으로 구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된 결과 오늘날에 이집트에서 콥틱(coptic)이라고 하면 이집트기독교인(이집트콥틱 정교회, 복음주의 개신교 등등)만을 지칭하는 의미가 됐다.

이집트 콥틱 박물관은 고요(tranquillity)했다.경건함이 감돌았다.(It’s in the piousair) 사실 그 누구에게도 박물관을 찾아 고요함과 경건함을 느껴다는얘기를 듣지못했지만, 2007년 9월 15일 오후 1시 노석조 내가 있던 콥틱 박물관은 고요했고, 경건함이 감돌았다. 아마 박물관에 이상하게도 관광객이 나 말곤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박물관을 항시 순찰하는 관광 경찰이 구석에서 의자 붙여 놓고 낮잠을 즐겼을까. 사람이 없어 적막할 수 있었던 물리적 조건도 조건이었지만,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는 이집트에 기원 전부터 존재하는 ‘창조주’의 흔적과 이를 찬양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그림, 문서, 조형물, 건축물과 같은 영적 결정물등을 확인할 수 있어 경건함(piousness and God-fear)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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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콥틱어로 쓰인 성경. 만지고 싶었다. 냄새를 맡고 싶었다.

(이집트에서는 디지털일안반사식카메라DSLR처럼 덩치 크기 보다는 작은 컴팩트 카메라가 유용하다. 두 개를 겸비해 활용하면 더 좋겠다. 필자는 18개월 이집트 생활하는 동안 절대적으로 소지하고 다니던게 두개가 있는데, 바로 아랍어포켓사전과 루믹스fx(눈물나게도 한 날 카페에서 도둑 맞아 cannon ixus로 전환)였다. 암튼 작은 디카 덕에 박물관에서도 (사실 공식적으로는 금지이지만)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콥틱 박물관을 나와 왼쪽 길로 올라 가니 몇 발 가지 않아 하얀 회벽의 교회에 닿았다. 나의 의지로 들어 가지 않았다. 모래색 벽에 뚫려 있는 아치형 문이 나를 잡아 끌었다. Hanging Church الكنيسة المعلقة공중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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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무알라까 교회. 29개의 계단층에 바짝 붙어 앉은 두 남녀의 모습이 눈에 띤다.

저들은 무엇을 얘기하고 있을까.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 중의 하나인데 공중 교회라고 하는 이유는 이 교회가 지상으로부터 6미터 가량 떨어 진 상태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책을 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교회가 바빌론 요새성벽의 문루 ‘위에above’ 7세기무렵 지어졌다는 것이다. 교회의 예배당 아래로 성벽 안의 길목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 가보면 관광객에게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바닥에 투명 유리 강판을 설치해 교회 아래가 비어 있음을 보여 준다. 교회 우측하단은 말발굽 모양의 로마 타워가 보인다. 사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는 쉽게 ‘떠있는 듯한’느낌이 들지 않는데, 7세기 이후로 수 차례에 걸쳐 개보수 공사를 하면서 들어 올려져 있는 듯한 당초의 시각적 인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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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이집트 콥틱 교회 예배당에 앉았다. 출처를 모르는 향내가 아직까지 (킁킁)은은히 감돈다.

الكنيسة المعلقة키니사 무알라카(무알라카 교회)에 들어 가보면, 오감을 통해 낯섦을 느낄 수 있다. 대리석과 나무로 지어진 내부의 시각적 특징과 함께 원목과 어우러진 향초의 냄새 그리고 역사적 ‘숙성’으로 인한 오묘한 대기(atmosphere)상의 깊이가 우선 후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낯선 아랍어 보다 더 낯선 콥틱어로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를 테면 "킬리에kyrie 라이손, 킬리에 라이손…"과 같은 것인데, 이는 콥틱어로 ‘주여, 자비를 주소서’란 의미로간구하는 기도문에 사용된다.(개인적으로 2008년 11월에 일주일간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남서부사막 와디 나투룬 지역에 위치한마카리우스 수도원(دير القديس أنبا مقار )에서 통밀빵과 올리브만 먹으며 일주일동안 모든 예배·기도를 참석하며 기거한 적이 있다.그 때 콥틱어에조금익숙해 질 수 있었다.)

플래쉬를 이용한 사진앨범을 있는데 기술적 문제로 [http://stonebird.co.kr/40097232604]에만 게재시켜놨다.

라마단기간 무료배식테이블/아므르이븐알아스모스크야경/올드카이로예수피난골목길등을 보려면 윗주소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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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아므르 이븐 알아스 모스크. 올드카이로에서 조금 벗어나면 대로변에 위치.

642년에 지어진 것으로 이집트에서 제일 처음 지어진 모스크.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아잔 소리와 함께 무슬림들이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 갔다.

모든 수용 감각 기관을 활짝 열어 놓고 무알라카 교회의 정취를 감상하다가 주위 몇 몇 교회를 둘러 보고 허기진 배를 채운 뒤, 거리를 또 다시 배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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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성 조지(마르기르기스)교회 안뜰에서 왕눈이 아이를 만났다.

이렇게 천진난만 한대, 계속 날 재키 찬이라고 부르며끈질기게 쫓아 와서 조금 고생했다. ;;

해질 무렵의 고즈넉한 햇살을 배경으로 아이의 콧물이 귀여움의 미장센으로 작용한 사진.ㅋ

라마단 기간, 해질 무렵이 되자 ‘타마르, 수베야’와 같은 이집트 전통 음료를 사려는 천진난만한 이집트사람들의 모습·라마단카림(자비로운금식월)을 외치며 무료 배식을 기다리는 서민들. 어리보기하게 배회하고 있는 이방인에게 ‘마이 프렌드’라 부르며 같이 빵을 나누길 권하는 사람. 그리고 먹고 나니 돈 좀 있으면 달라는 귀여우면서도 음흉한 아저씨. 무슬림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리 그리고 어둠 속에 빛을 밝히고 있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형상물들이 혼합되어(Being mingled)내게 내 머리에 내 가슴에 내 정신에 파고 들었다.

여행을 많이 한 이에게 낯섦은 더이상 낯섦답지 않은 낯섦일지 모르겠으나, 한국 촌놈에게 ‘미스르알카디마’는 지극히 낯섦답게 낯설었던 공간이요, 시간이요, 인간, 즉 삼간(三間)의 총체였다. 2007년 9월 15일 유학 이틀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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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_이스라엘에 헤롯왕권시기 아기예수가족은 이집트로 피난을 왔다. 그들의 발자취로

안내하는 이정표이자 이집트에서 미스르알카디마지역이 시사하는 바를 보여주는 상징물.

이 곳과 저 곳을 잇는 중동뉴스 카라반, 돌새 노석조 ; http://stonebir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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