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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①이집트의 기독교인들 Christians in Egypt, 이집트에 기독교의 꽃이 피다. - 중동 천일야화
①이집트의 기독교인들 Christians in Egypt, 이집트에 기독교의 꽃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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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콥틱 청년들이 부활절 예배에서 기도문을 낭송하고 있다. 콥틱 교회에는 유독 성화가 많다. ⓒ노석조_Hanging Church, Cairo

이집트엔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가 대표적 종교다. 공식적으로 국민의 90%는 이슬람 교도인 무슬림이고, 10%정도를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10%라고는 하지만 실제 기독교인 수는 1000만명을 웃돈다고 한다. 이집트 전체 인구는 8천만이다. 때문에 이집트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집트기독교, 즉 콥틱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에서 기독교는 2천년 동안 뿌리 내려 왔으며 이슬람 들어 온 7세기 이후로는 14세기 동안 이슬람과 공존해 왔다. 쉽게 눈에 띠는 건축물만 봐도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 양식이 구분되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집트 사람들의 생활 양식,언어 표현, 교육방법 등 또한 종교에 따라 사뭇 다르다. 공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이집트를 비롯해 아랍 국가들을공부할 때 으레 이슬람만 알면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필자는 보다 공정한 시각으로 중동을 바라 보기 위해 우선 ‘이집트 기독교, 콥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고자 한다. 기독교 신자이든 아니든,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인들이 이천년 전부터 믿어 온 콥틱기독교를 들여다 보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아직 한국에는 콥틱에 관한 책이 없다. 교회 및 선교 관련 된 사람들이 논문 위주로 외국 서적을 일부 번역한 요약본이 전부다. 필자 또한 콥틱에 관해 부족하기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열의를 품고 시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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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배당 앞에 십자가 문양으로 둥글게 만들어진 등불(상드리제라고 해야 하나?;;)과 예수 및 열두제자의 성화가 있었다. 성화 테두리의문자는 이집트 콥틱어인데 7세기 이슬람 침략후 10세기 무렵 사라졌다. 콥틱 예배를 드릴 때 그리고 수도원에서 사용하며 명맥을 이어나가고있지만 일상에서는 이집트기독교인 모두 아랍어를 모국어로서 사용한다. 위 사진의 가운데가 예수이며 12명 중 사진에 안 보이는6명은좌측편에 같은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노석조_Hanging Church, Cairo


◇콥틱(Coptic orthodox Egyptian Church)이란.

콥틱 이집트 정교회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용어 설명이 우선 필요하다. 콥틱Coptic의 콥트Copt란 말은 아랍무슬림들이 641년 이집트를 침략하면서 이집트를 지칭하며 부르던 Qibt킵트 란 말에서 유래한다. Qibt라고 부른 이유는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어로 이집트를 지칭하는 Aigyptios를 축약해 Qibt라고 부르며 사용했기 때문이다. 7세기 아랍무슬림들이 이집트를 침략할 때 이집트인들은 공식적으로 기독교인들이었다. 따라서 Qibt란 말은 당시엔 기독교인인 이집트인 민족 자체를 칭하는 용어 였다. 하지만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이집트 기독교인 중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집트인 사이에 종교적 분립이 생긴 것이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으로 말이다.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Qibt란 말은 어느새 이집트인들 중에서 기독교인들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용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콥트라 함은 이집트의 정통 기독교인을 말하며, 이집트의 독자적인 정교회(orthodox)를 의미하게 됐다.

◇어떻게 이집트에 기독교가 전해 졌나.

콥틱 정교회에 따르면 이집트에 기독교가 정식으로 전해지게 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마가Mark에 의해서라고 한다. 기원후61년 무렵 마가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알렉산드리아에는 성 마가 교회가 존재하며, 이집트 콥틱 정교회의 초대 교황은 마가로 돼있다. 당시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유대인들이 다수 알렉산드리아에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었는데, 걔중 유대인 구두 수선공이 마가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됐으며 이를 시작으로 전파가 진행됐다고 한다.

이집트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이집트에 기독교가 전해지고 부흥하게 된 이유로 여러 가지 중 Holy Family Tradition를 꼽기도 한다. 즉 성경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폭군이던 헤롯왕을 피해 아기예수와 요셉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가 이집트에 왔는데, 그Holy Family가이집트에 머물었던 흔적이 이집트에 기독교 전파의 토양을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추정상 4~7년 동안 이집트에 머문 아기예수 가족과 발자취를 기리고 축복하는 의미에서 매년 관련 행사와 예배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추후 Holy Family Tradition에 대해 소개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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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예배, 대표자가 나와 성경을 대독하고 있다. 예배 용어나정해진 기도문은 콥틱어로 하지만 성경은 아랍어로 되어 있다.콥틱 기독교인도 아랍어를 모국어로 오늘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석조_Hanging Church, Cairo


◇녹록치 않았던 콥틱.

200년부터 300년 무렵까지 여러 차례 이집트 콥틱 교회는 로마 황제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박해로 인해 더러는 기독교를 포기하기 했지만 콥틱 교회는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그 와중에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면서 콥틱 교회는 성장세를 탔다. 오랜 기간 박해를 받은 초대 콥틱교회에는 그리하여 여러 Saint와 Saint관련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박해로 순교한 인물 그리고 관련 이야기를 그린 성화를 콥틱 교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오늘날에도 많은 이집트 기독교인들의 이름은 미나, 비쇼이 등과 같은 전해오는 Saint의 이름으로 지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와 친한 이집트 기독교인 친구 이름도 ‘미나’다.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교회는 서방과 동방으로 나뉜다. 콥틱교회는 동방교회쪽에 속하는데 서방교회의 압력에 시달렸다. 이러한 교회의 분열은 결국 교회의 힘을 약화시켰고 많은 신자들을 수도원에 들어가 침거하게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는 아랍에서 밀고 들어 오는 이슬람 세력을 쉽게 받아들이는 형국을 야기시켰다. 동방교회에 시달리고 정치적으로 위협을 받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슬람군을 받아 들인 것이다. 이집트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처럼 교회간 분열로 이슬람세력은 이집트 땅에 무혈입성시킨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타국의 분열된 시기와 정세를 이용해 쉽게 정복한 것이다. 이 때가 바로 638년이다. 이슬람은 이집트를 정복하게 되면서 기독교인인 이집트인들에게 서방교회로부터 보호해주는 대가로서 무거운 세금을 물었다. 이에 대항하는 반란이 있었지만 실패하고 전부 죽임을 당했다. 무거운 세금을 피하고자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집트 인구90%가 무슬림이 된 시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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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라인강

    2010/02/16 at 12:34 am

    저는 근자에 들어서 우리가 중동에 대하여 다시한번 좀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의 하나는 원자력발전소이고 또 하나는 테러 입니다.

    전에는 이슬람지역에서 테러가 그맇게 기승을 부리지 않았으나
    이제는 거의 일상화가 되어 가는 지역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동일한 무슬림권이라 보여지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콥틱과 같이 전혀 이질적인 그런 세력들이 이슬람권에는 상당수에 달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어떤 이슬람세력을 경계를 하여야만 테러로 부터 우리나라와 사회를 지킬수 있을것인지, 또한 어떤 나라와 어떤 사회와 교류를 강화해야만 원자력발전소를 제대로 세일즈를 강화 할 수 있을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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