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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이란 사복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는 법 - 중동 천일야화
이란 사복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는 법

이란 사복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는 법

이란 경찰 불심검문에 ‘주몽’이야기 꺼냈더니,웃으며 오토바이 태워줘…



이란을 이해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떠난 이란 여행. 천 년, 이 천 년 전 건축물을 바라보며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짜릿함도 느끼고, 사람들과 부대끼고 이야기 하며 따뜻함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꽤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이란 경찰서에 연행돼취조당한 뻔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란은 경찰이 나라를 꽉 쥐고 있는 나라다. 사형 집행이 중국과 북한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란 여행 8일차이자 귀국하는 날이던 2012 8 17일 오전 11시 이란 테헤란. 이란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건물인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찾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라 테헤란 공항으로 비행기 타러 가기 전까지 조용히 호텔에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하나라도 더 챙겨볼 마음으로 모자를 눌러 쓰고 지도를 집어 든 채 거리로 나섰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이끌었던 인물 중 하나인 딸레까니의 이름을 달고 있는 메트로역에 내렸다. 그러자 곧바로 혁명 당시 전세계인의 숨을 죽이게 했던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바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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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레까니 역에 나오자마자 보이는 옛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의 모습. ‘미국을 타도하자’라는 뜻의 영문 문구가 벽화 쓰여 있다.미국 대사관은 1979년 11월4일 이란 대학생들의 의해 점령당했다. 대사관 직원 90여명이 인질로 잡혔다.호메이니가 일으킨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정권이 무너지고 반미 정권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대형 사건이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1980년 4월 24일 ‘독수리 발톱 작전’으로 특공대원 90명을 보냈으나 처참히 실패하는 고배를 마셨다. 헬리콥터로 잠입 침투해 대사관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이었지만 헬기 8대 중 2대는 고장이 나고 헬기 1대와 수송기가 모래 폭풍에 휩싸여 충돌하는 불운에 빠졌기 때문이다. 다음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협상 끝에 인질은 풀려 났지만 양국은 2012년 지금까지 ‘원수지간’으로 지내고 있다. ⓒ노석조

이란 속 미국땅이던 대사관은 이제 반미의메카로

2미터 높이의 벽돌 벽으로 둘러 쌓인 커다란 하나의 단지였다. 빨간 벽돌 건물과 초록 나무들로 이뤄진 모습이 꼭 미국의 한 고등학교 같았다. 이게미국 대사관이었는지 믿기지 않았다. 분간이 안 됐다.지나가는 사람들 서넛에게 물은 뒤에야 지도가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미국 대사관은 더 이상 미국 대사관이 아니었다. 대신 이란 민병대 건물로 사용 중이었다. 지도를 보고 찾아 갔기에 알았지, 모르고 지나갔더라면 이 건물이 뭔지 알아채지도 못 했을 것이다. 대사관이었다는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다.다만 길게 이어진 담장 옆을 찬찬히 걷다 보니 건물의 정체성이 드러났다. 담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페이트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하나하나 예술(?)이었다.

미합중국 타도(Down with USA)’라는 문구가 정사각형의 테두리에 정체로 쓰여 있었다. 담장을 따라 이어진 여러 벽화를 아우르는주제어같았다. 공격과 폭력을 상징했다고 풀이할 수 잇는 성조기 무늬가 씌워져 있는 권총 그림, 자유의 여신상의 얼굴을 죽음의 상징인 해골로 바꿔 그린 그림 등 미국의 이중성을 그들의 시각으로 나타낸 벽화가 다름아닌 옛 미국 대사관에 그려져 있었다. 30년 전 ‘이란 속의 미국땅’이던 대사관은 이제 ‘반미의 메카’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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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은 현재 이란 민병대 건물로 쓰이고 있다. 담장에는 미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에 뉴욕 리버티(Liberty-자유)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이 죽음의 상징인 해골 얼굴을 하고 있다. 17일 이란인이 벽화 옆을 지나 걸어가고 있다. ⓒ노석조

오토바이탄 사복 경찰이 쫓아오다

사진을 찍고 근처 한 미술관을 구경한 뒤 다시 대사관 인근을 지나 지하철로 들어갈 참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푸앙~”거리며 배기량 700cc는 돼 보이는 오토바이가 달려왔다. 모델이 가와사키 ZX’ 였던 것 같다. 두 명이 타 있었다. 한 명이 헬멧을 벗더니 벽 쪽으로 붙으라고 손짓을 한다. 말이 없었다. 순간 코끝에 찬 바람이 불었다.

3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내 목에 메여 있는 캐논 카메라를 가리키며 페르시아어로 뭐라 말했다. 못 알아 들었지만뻔했다. 무슨 사진 찍었는지 보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란 사복경찰이라 직감했다.

카메라를 보여주기 전 왼손에 든 론니 플래닛 앞 장에 실린 페르세 폴리스 유적 사진을 보여주며 투어라고 두 세 번 말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상을 쓴 채 그는 다시 카메라라고 말했다. 사진 안 보여주고 대충 넘어가진 못하겠구나 판단했다.

사실 벽화 사진을 보여줘도 연행될 이유는 없었다. 위키피디아 같은 웹사이트 등에 다 공개돼 있는 사진 아닌가.하지만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고, 신분을 조사하거나 체류 목적이 무엇인지 따져 들기 시작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내 직업은 공교롭게도(?) 기자아닌가. 당장 몇 시간 뒤에 공항으로 가서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할 날에 곤란한 상황을 굳이 맞을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러면 안 됐다.

카메라를 켜자마자 재빨리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부터 차례로 보여줬다. 하지만 식은땀이 났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미술관 사진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정신없이 찍어댔던 미 대사관 사진이 나올 차례였기 때문이다.어떻게 할까 궁리하다미술관 사진을 보며 주면서 하나하나설명을 곁들였다. 시간을 좀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경찰들은 큰 눈을 고정한채 "됐어. 이만 가봐"란 말을 좀채 하지 않았다.

내겐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카메라 액정에 이란 정부가 그린 반미 벽화가 나올 무렵 나는 대뜸 한국 드라마 ‘주몽이야기’를 꺼냈다.’주몽’이 이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주몽’은 그 무섭다는 이란 사복경찰(민병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의 마음마저 녹여버렸다. 위력이 대단했다.의심의 눈초리로 사진을 넘기는 날 째려보던 이들이 주몽이야기가꺼내자 코레아 자누비?”라며 한국에서 왔는지 묻더니 활짝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기세를 놓칠세라 나는 드라마에서 한혜진씨가 맡은 소서노이름을 연달아 외쳤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들은 거의 나를 형제처럼 대해주기 시작했다. 8일 동안 이란을 여행하면서 이란 사람들이 이란에 방영됐던 한국 드라마 주몽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경험했기에 가능했던 임기응변이었다.

한 술 더 떴다. 천진난만한 관광객이라고 완전무결하게 인지시켜주기 위해 나는 사복경찰에게 오토바이를 태워달라고 졸랐다. 그랬더니 뒤에 타고 있던 애가 자리를 내어주더니 두 손으로 타라고 가리켰다. “야호~”

나를 불시 검문했던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뒷자리에 탔다. 순간 부릉부릉소리를 내더니 오토바이는 인도를 빠져 나와 4차선 테헤란 차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쾌감을 맛 봤다.사진이 걸리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멋지게 근처 지하철역에 세워준 녀석은 손을 흔들었고, 나는 코다 하페즈(굿바이)라고 답했다. 이란 경찰용700cc 바이크를 타고 테헤란을 질주해본 관광객이아니 한국인이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잠긴 뒤 나는 지하도로 여유롭게 내려갔다.

‘주몽’이 날 살렸다.


<끝>

테헤란=돌새 노석조 stonebird@chosun.com

<중동전문블로그, ‘뉴스카라반’의 천일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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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도로에 서 있던 교통경찰이 자신의 모습을 찍지 말라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다. ‘주몽’이야기를 할 때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더니 막상 찍으려니까 "나(‘아니오’라는 뜻의 페르시아어)’라고 했다. 앞서 말한 사복경찰과 달리 교통경찰은 상대적으로 온순한 편이었다. ⓒ노석조

1 Comment

  1. 그림자보스

    2012/12/22 at 4:28 pm

    어휴, 상상만 해도 온몸이 떨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인도에서 겪어봐서 압니다. 경찰 정말 무섭지요. 경찰이 맞고다니는 나라 한국과는 비교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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