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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외국어를 배우는 꽤 괜찮은 마음자세 - 중동 천일야화
외국어를 배우는 꽤 괜찮은 마음자세

<외국어를 배우는 꽤 괜찮은 마음자세>

"외국어는 마법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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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百尺竿頭)였다. 생기 없는 회색 돌산을 거니는데 황소만한 늑대가 쫓아왔다. 피하고 피하다 결국 낭떠러지에 섰고, 한끝 더 힘을 내 벼랑 끝에 힘겹게 서있는 나무 위로 기어 올랐다. 늑대무리는 나무를 뒤흔들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때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 ‘간달프(사진)’씨는 주문을 왼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그 주문은 곧 마법이었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점보 비행기만한 독수리가 날아와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이들을 태우고 자리를 떴다. 마법 주문이 아니었으면 가능치 못했을 구출이었다.

이같은 장면(scene)을 얼마 전 영화 ‘호빗’에서 봤다. 다소 유치했으나, 빨고 있던 빨대를 순간 잠시 입에 물고 멍하니 있을 정도로 꽤 긴장감 넘쳤다. 특히 간달프 할배가 주문을 외는 5초정도의 짧은 장면은 알만한 건 다 아는 서른 두 살에게도 환상적이었다. 혹자는 유치하다고 하는 간달프의 마법주문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지루하게 콜라만 쪽쪽 빨고 있었을 것 같다.

마법사 간달프의 얼굴을 보다 문득 2008년 1월이 떠올랐다. 이집트 지중해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나이반도 시내산을 향해 한국에서 여행온 모 대학원의 박사님들을 버스에 태워 데리고 가는 길이었다. 나는 당시 여행가이드였다. 누군가 부탁을 해와 경험삼아 재미삼아 도전했었다. 일행이 많아 통솔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 지방 아랍어(암메야)를 한참 배우던 난 카이로·알렉산드리아에서 암메야를 써가며 현지인들과의 가격협상부터 버스운전기사에게 지시하는 것을 무리없이 해냈다. 시내산으로 향하는 그날 밤버스에서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 외국어란 마치 마법 주문같구나. 외국어의 멋진 표현은 더 높은 수준의 주문을 구사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주문을 서툴게 쓰면 고양이로 변할 게 개로 나온다든지 엉뚱한 결과가 나오듯, 외국어도 그런 것 같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표현이 적절치 못하면 상대방이 못 알아듣고, 때론 오해하지 않는가. 그 나라의 언어를 통달한다는 것 어느 한 영역의 탁월한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난 아랍어를 열심히 익히기로 했다. 이후 어려운 문법이나 발음이 나오면, “아 이거 고난위도 주문인걸”이라며 신이나서 달라 붙었다. 아랍어 문자가 꼬불거리는게 정말 마법 주문같기도해 몰입도가 장난아니었다. 이후 난 아랍어든 뭐든 외국어를 배우려는 친구들에게 마법주문을 익힌다는 생각을 하면 재미나고 진도도 잘 나갈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편, 최근2012년 하반기 대학원의 성적이 발표됐다. 상반기 때는 잘 나왔는데 이번에는 ‘아랍어 번역’과목의 학점은 낙제를 의미하는 ‘에프(F)’였다. 입학 할 때와 입학 후 첫학기 때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는데, 이 과목의 낙제로 인해 못 받게 됐다. 하지만 담당 교수님에게 “학점 좀 올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한 학기 내내 그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낙제점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마법 학교’의 ‘낙제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이 교수님께 있었을지만 자책감은 없었다. 업무로 인해 수업은 빠졌지만, ‘마법’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야근 등으로 새벽 서너시에 자더라도, 매주 토요일 아침 9시까지 강남끝자락에 사는 아랍인 친구집에 찾아가 3시간 동안 기사번역·아랍방송 받아쓰기·말하기를 연마했다. 토요일 오전에 일이 있을 경우에는 차를 몰고 강변북로와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새벽 5시에 그 친구집에 도착했다. 새벽에 공부하자는 제안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주는 그 친구의 열의가 날 더 자극시켰다. 물론 주중에 꾸준히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자체 학점을 매긴다면 ‘비(B)’는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대학원에서도 공식적으로 실력있는 ‘아랍 마법사’가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

뉴스카라반(newscaravan) 돌새 노석조

stonebir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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