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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샘물교회, 침묵 - 심장 위를 걷다
샘물교회, 침묵

분당 샘물교회 신도들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취재하면서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고통의 순간에 신(神)은 과연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은 17세기에 포르투갈의 젊은 신부 로드리고가선교하러 떠났다가배교(背敎)한 자신의 스승을 찾아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카톨릭 신자를 적발해내기 위해 후미에(踏繪)라는 방법을 썼습니다.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聖畵)를 밟도록 시켜, 밟는 이는 배교한 것으로 인정해 용서하고, 밟지 않는 이는 처형을 하곤 했었지요.

로드리고 역시, 결국 일본 관리에 의해 적발되어 성화를 밟아야만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고민하는 로드리고에게, 이미 배교한 그의 스승 페레이라는 말합니다. 이 안마당에는 지금 가련한 농민 세 사람이 매달려 신음하고 있어. 자네는 그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 소중하겠지. 적어도자기자신의 구원이 중요한 것일테지. 자네가 배교하겠다고 말하면 저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있어. 고통에서 구원 받는 거지. 그런데도 자네는 배교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자네는 그들을 위해 교회를 배반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야. 나처럼 교회의 오점이 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지.

젊은 신부는 답합니다. 저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고통 대신에 영원히 기쁨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스승은 말합니다. “자신을 속여서는 안 돼. 자네는 자신의 나약함을 그런 아름다운 말로 속이려 하는 거야. 결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돼. 나도 그랬었지. 저 캄캄하고 차디찬 밤, 나도 지금의 자네와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행위란 말인가? 신부인 나는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쳤어.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거야! 그리스도는 배교했을 것이네.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마침내 로드리고는 성화에 발을 갖다 댑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침묵하고 있던 신(神)은 입을 열지요.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이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엔도 슈사쿠, ‘침묵, 홍성사, p.267.-

지난 7월 20일, 아프가니스탄에 단기 선교를 떠났던 분당 샘물교회 신도들이 탈레반에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분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금세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길기만 했습니다. 근 한 달 반을 넘겼으니까요. 길었던 만큼, 아픔도 컸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죽었고, 국제사회는 테러리스트와 직접 협상한 대한민국에 맹렬한 공격을 가했었지요.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팩트도 벼랑 끝에 놓인 인간의 생명 앞에서는 무력했었고, 무력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교회는 신도들의 생명을 위해 언론에 선교라는 단어를 봉사로 써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도록 샘물교회라는 명칭 대신 교회 건물이 있는 상가 명칭인 분당타운이라고 써 줄 것도 부탁했습니다. 한 목사는 새벽 네 시에 불쑥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기사를 고쳐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매일 민감한 기사를 쓴 언론의 기자는 교회, 혹은 한민족복지재단 관계자에게 호출돼 정정 요구와 함께 질책을 들어야만 하기도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샘물교회측이 작성한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 지원서가 나돌았고, 네티즌들은 선교봉사라고 표현한 언론에게 비난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침묵’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그 어떤 진실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23일 한민족 복지재단은 외교부에서 지난 2월 5일 아프가니스탄 여행 자제 공문을 보냈고, 그 사실을 교회에 알렸음에도 교회가 아프가니스탄 행을 강행했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냈지만, 어떤 언론도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피랍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데 쓰지 못한다는 것은 기자에게 꽤나 괴로운 일입니다. 기자의 존재 이유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소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건이 길었던 만큼 해프닝도 많았습니다. 사건이터진첫날에는 교회 사무실에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무선 인터넷이 되는 인근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영업시간이 지나자 쫓겨나서는 그나마 희미하게 무선 인터넷의 흔적이 잡히는 카페 앞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기사를 송고하기도 했고, 갑자기 피랍자 가족들이 샘물교회에서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으로 옮긴다기에 밤 10시에 못하는 운전으로 후배를 옆자리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길이 헷갈려 멈추는 바람에 뒤 차들을 급정거시켜 황천길로 갈 뻔 하기도 했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고(故) 배형규 목사 피살설이 전해졌던 날 밤, 좀 더 자연스러운 사진을 신문에 싣고자 하는 욕심에 교회 사무실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켜져 있던 PC 바탕화면의 폴더를 열어보던 중 PC 주인인 교회 전도사에게 딱 걸려 성난 신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동영상까지 찍혀가며 대질심문을 당하기도 했었지요.

피랍자 19명 석방 소식 이후 샘물교회 책임론에 대한 기사를 썼다가 지난 일요일 피랍자와 가족 상봉장에서 하필이면 문제의 PC 주인인 여자 전도사가 저를 발견하고는 저 사람이 곽아람 기자예요. 취재 못하도록 막으세요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바람에 억센 남자 신도의 손에 팔을 낚여 상봉장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했었지요. 당시에는 일은 하고 봐야겠기에 당찬 척 끌어내지 않아도 알아서 나갈 테니 밀지 마세요 쏘아붙이며 취재를 계속했지만 속으로는 집단 구타 당할까봐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그 날의 가족 스케치는 도무지 쓰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지만, 피랍자들을 애타게 기다려 온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아래의 그림을떠올리며 기사를 썼습니다.

Weyden_Deposition.jpg

Rogier van der Weyden, Deposition, (1400-1464).

숨진 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와 아들의 죽음에 혼절한 성모 마리아의 슬픔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지요.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온 피붙이를 품에 안은 가족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 오랜 시간을 과연가족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사건이 일단락되자 피랍 사건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즐겁고 신나게 여긴다고 간증한 한 피랍자 어머니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돌았고, 네티즌들은 그 어머니에게 심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됐습니다. 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그 어머니가 기댈 곳은 신앙밖에 없었을 겁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난제에부닥쳤을 때, 할 수 있는 행위는 결국 기도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도란 신(神)에게 바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국 신의 이름을 빌어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요? 비록성당도 잘 안나가는 ‘무늬만’천주교 신자이지만 저는 힘들어서 마음이 축 처질 때면마음을 드높이(sursum corda)라는 기도 말에 종종 기대곤 합니다.

샘물교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드높습니다만, 교회 내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 샘물교회 관계자는 목사의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 마련된 당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목사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을 추후 승인해주는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한데 대해 깊이 회개하고 반성했다며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무사히 돌아왔고, 그리고 살아 있습니다. 생명은 귀중합니다. 침묵의 주인공 신부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면서까지 지켜낼 정도로요. 살아서 돌아온 그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들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사건이 일단 끝나고 나자 저 사람이 곽아람 기자예요. 취재를 못하게 막으세요! 외치던 그 여자 전도사의 눈빛, 팔을 낚아채던 남자 신도의 억센 손길이 자꾸만떠올라 심지어 운전을 하던 도중에도 공포심 때문에 숨 쉬기가 곤란해지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흘러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었거든요.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개신교도들한테 잠시 수모를 당한 저도 이러한데 낯선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십일 동안 총칼을 든 탈레반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상처받았겠습니까. 의사는 충고하더군요.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어느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답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지요.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 했습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모든 순간은 지나갑니다. 그만큼 절대적인 진리도 없지요. 아프간에서 돌아온 그들에게도, 그들이 겪었던 공포의 순간들이 그저 지나가 주기를, 기도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3 Comments

  1. 라인강

    2007년 9월 9일 at 11:31 오후

    보면 볼 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그 분당샘물교회인지 하는 인간들 치가 떨립니다.

    전에는 그 박은조 인가 하는 인간만 그런가 보다 하였는데

    이제 그동안 흘러간 사정을 접하다보니 그 분당교회가 자체가 제 정인신인가를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의 교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어 온세상에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하는지 퉁분한 심정을 숨기기 힘듭니다.

    현재도 외국에서 아니 고통 받는 현장에서 선교에 힘쓰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주님의 소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것들과는 다릅니다.

    저들이 겉으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내부로는 세상을 속이는 가증한 일을 계속 벌리고 있음이 자꾸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가 쓰레기통에 쳐박히고 있음이 그저 퉁분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면 저들은 결코 정통교회가 아니요
    현재도 우리 교회 일각에서 김정일을 무작정 돕자는 것을 주장을 하는 주사파들의 일부인것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계에는 상당수가 바로 이들과 동일한 색깔을 갖인 주사파들 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점을 분명히 알고 저들과 일반 교회를 분명이 구분 하여 보아야 할 것 입니다.

       

  2. 천기누설

    2008년 12월 8일 at 4:23 오후

    1년도 넘은 글에~^^ 댓글 달려니까~^^… 조금 이상하기는 한데~…곽기자님~^^.. 고생 많으셨네여~^^*….. ㅋㅋㅋㅋ.. 곽기자님~ 말대로~^^ 잊어버리셨죠?????? ^^*
    제가 예전에~ 강인선기자님~^^ 팬이었는데~^^… ㅎㅎㅎ 오늘 곽기자님 글~^^.. 첨인데~^^….. 보니까~^^… 넘~ 좋네여~~~~~^^*   

  3. 풀트로틀

    2009년 5월 12일 at 12:38 오후

    현장의 관점에, 사람의 시선이 더해진 글이네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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