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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덧없는 꽃그림 - 심장 위를 걷다
덧없는 꽃그림

수원의 제 오피스텔 벽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작은_꽃다발,_1607.jpg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전’에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저 그림을 직접 보셨을 겁니다.

플랑드르 화가 얀 브뢰겔이 1607년 경에 그린’작은 꽃다발’이라는 그림입니다.

수원의 제 오피스텔은

복층 구조로돼 있어 천정이 높은데다가

벽이 온통 흰색이라 살풍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림을 선물해준 이는 "색이 의외로화사해서 샀다"며

"벽에 그림이라도 붙여놓으면 좀 사람사는 집같은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었지요.

그 말대로 작업용으로 쓰는 작은 탁자 앞에 저 그림을 붙여놓자

늦은 밤 어두컴컴한 빈 집에 혼자 돌아와도 어쩐지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의외였어요.

텅 비어있던 흰 벽을 한 점의 그림이 가려준다는 것이

그렇게 큰 위안을 주리라고는미처 생각하지 못했었거든요.

작년, 휴직하고 대학원에 다닐 때 한 수업시간에

‘그림은 끔찍한 현실을 걸러주기 위한 일종의 스크린’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라깡의 이론이라는데

저는솔직히 라깡에 대해서는전혀 모르기때문에 이론적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그 말만은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학부시절, 선사 시대의 동굴 그림이 빽뺵하기 그지 없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여백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때문에 공간을 채우기 위해

애써 빈틈 없이 그림을 그려넣었기 때문이란해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美)’라는 게 있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주입식교육을 받아온 덕에

몸소 이해한다기보다는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여백에 대한 공포’라 글쎄?

하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막상

텅 빈 채 하얗기만 한 높은 벽이 있는 집에 살아보니

비로소야 그게어느 정도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집의 텅 비어 있는 벽은 외로움을 가중시킵니다.

‘공포감’이라고까지확대될 수 있는 그 외로움을진정시켜주는 도구로 한 점의 그림만한 것이 없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제 방 벽에 붙어 있는 저 그림이

마냥 화사하고 다정한 것만은 아닙니다.

17세기 네덜란드화가들이 그린 정물화는

대개 일종의 알레고리( allegory)거든요.

그림에 그려진 꽃병의 꽃은

단순히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위해 그린꽃이 아닙니다.

어떤 꽃들은 아직 화사하게 피어 있지만

어떤 꽃들은 한편 벌레먹고,

어떤 꽃들은 시들어 색이 변하고

어떤 꽃들은 이미 떨어져버렸지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지요.

모든 꽃은 언젠가 시들고 맙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그려지는 꽃은

vanitas, 곧 ‘허무’를 뜻합니다.

인생의 무상함, 순간의 불영원성, 모든 것의 덧없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그려진그림들이지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저 그림을 바라보면서

저는 삶과, 욕망과, 관계의 덧없음에 대해 곱씹어봅니다.

제게 그림을 선물한 사람은 아마도,

저 그림의 의미에 대해 저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지요.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9 Comments

  1. FREETIMES

    2007년 10월 8일 at 1:09 오전

    덧없는 이름이라도 남아있는 장미는 한때 아름다웠다…ㅋ   

  2. 곽아람

    2007년 10월 8일 at 4:36 오후

    장미라는 이름이 아름다웠던 거겠지요 ^^   

  3. 별궁이

    2007년 10월 8일 at 7:44 오후

    글도 어렵고, 댓글들도 어렵고~~~ ㅎㅎㅎ

    자자~~~ 올겨울은 11월 24일부터 시작되는 반고흐 전시회를 보면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겁니다.

    저번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는 반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전시회에서는 딱 3점 뿐인 고흐 그림중에 생레미의 포플러라는 그림의 좌측 상단의 두껍게 칠해진 파란 색 구름… 이것만 1시간 뚫어져라 본거 같은데…   

  4. 곽아람

    2007년 10월 9일 at 8:10 오전

    별궁이님. 서울의 제 방에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붙어 있습니다. 반 고흐는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람인데 대개들, 반 고흐의 그림을 아주 좋아하더군요.. ^^ 저 역시나 반 고흐 그림은 좋아합니다. 실제로 보면 물감의 느낌, 붓 터치 등이 놀랄 만 하지요.   

  5. 별궁이

    2007년 10월 9일 at 9:13 오후

    진품인가요? 진품이 아닌 평평한 도화지에 납작하게 프린트한 그림은 별로…

    별이 빛나는 밤 작품위에 주황색 할로겐 전구를 달고 조명을 잘 맞춘다음에 방에 불을 끄고, 베토벤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들어보셨나요?
    그리고 와인 한잔…

    어느새 그녀의 눈망울엔 하트가 그려지고…   

  6. 곽아람

    2007년 10월 9일 at 11:45 오후

    ㅎㅎ 진품은 아니죠 당연히. 프린트에 액자만 그럴듯하게 씌웠어요. 대학교 때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사온 거라 그래도 상당히 귀하게 여긴다는… ㅎㅎ   

  7. 제스나

    2007년 10월 21일 at 12:07 오전

    좋은 그림입니다.
    저도 아주 작은 부엌에 꽃 그림만 세 개 있습니다.
    브뢰겔 풍의 꽃그림입니다…   

  8. 곽아람

    2007년 10월 26일 at 9:36 오전

    부엌의 꽃 그림이라니 아주 운치가 있네요. 저도 이 다음에 부엌을 가지게 되면 꽃그림을 걸어놓아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9. 여요

    2012년 7월 31일 at 10:38 오후

    아고,,,,,5년전 얘기군요….행복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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