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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제비꽃, 보라빛 - 심장 위를 걷다
제비꽃, 보라빛

조동진의 ‘제비꽃’을 처음 들었을 때

2006년이었고,

스물 여덟이었습니다.

배종옥, 배두나, 김창완 등등이 출연했던

‘떨리는 가슴’이라는 MBC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아빠, 엄마, 딸의눈을 통해 각각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들을 들여다보았던

이 드라마 중

엄마가 옛사랑을 회고하는이야기에서 이 노래가 나옵니다.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딘지서정적이고 아련한 가사와

서글픈가락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제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는데요.

제가 "조동진은 잘 모르지만 이 노래는 참 좋아한다"고 말하자

회사 선배 한 분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모든 여자들이 이 노래에 나오는

‘너’를 자기 자신이라고착각하면서 좋아했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저는잘 모르겠지만,

80년대풍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간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이 노래를 계속 들었는데요.

노랫말 뜻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고

(여자가 죽었다는 이야긴지, 병에 걸렸단 이야긴지,

도무지 모르겠…-_-;)

소녀와 여인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Violet_Sargent1.jpg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음~음~~~


10277.jpg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음~음~~~

Violet_Resting_on_the_Grass.jpg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우~우~우~~~

첨부한 그림은 모두

여인의 초상화를 특히 많이 그린

미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12~1925.4.15)의 작품으로,

제목은 모두’바이올렛 사전트(Violet Sargent)’랍니다.

바이올렛(1870-1955)은 화가의 누이동생으로

사전트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했지요.

그림은 각각 위로부터 1875년, 1883년, 1889년의 작품입니다.

아마도 사전트는 ‘violet(보라색)’이라는 누이의 이름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이를 그린 초상화들에는하나같이 보라빛 기운이감돌거든요.

Violet_1881.jpg

Violet, 1881.

이 그림은 옷도 짙은 보라빛,

코사지와 머리 장식, 배경도 보라빛 톤.

sargent5.jpg

A Gust of Wind. Mrs. Violet Ormond, Artist’s Sister. 1887

(바이올렛은 후에 프랜시스 오먼드라는 사람과 결혼, 오먼드 부인이 됩니다.)

여기선 배경의 하늘이 온통 청보라빛.

display_image.jpg

Violet Sargent, 1887

이 그림엔 의자 아래와

벽에 기댄 바이올렛의 목 뒤에 보라빛 그림자가 서려 있네요.

화가는초상을 그릴때마다 누이의 이름에서 빛깔을 연상했겠지만

조동진의 ‘제비꽃’을듣고 있는 제게는

이 모든 초상들이 꽃으로 보입니다.

violet에는 ‘제비꽃’이란 뜻도 있지요.

제비꽃.jpg

어릴 때 들판에서 이 꽃을 꺾어다가

야쿠르트병에 물을 담아 꽂아놓곤 했습니다.

허리가 약간 꼬부라져 있는 이자그마한 꽃을 감당할만한 화병은

야쿠르트병밖에 없었거든요.

제비꽃을 꺾어본 것이 언제인지….

화면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화가의 누이동생과,

조동진의 노랫말 속에서 점점 여위어가는 ‘너’와,

들판의 제비꽃 따위는까마득히 잊어버린 채잿빛 일상을 살고 있는 저 자신,

전화선을 통해 서투른 음정으로 제비꽃’을 불러주었던 그 언젠가의 누군가가

아련한 보라빛으로 멀어져 가면서

문득,

… 아득해집니다.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8 Comments

  1. 진희원

    2009년 4월 23일 at 10:25 오후

    토니오크뢰거, 호퍼, 전철로 한강다리 건너기 에 이어 ‘떨리는 가슴’까지…
    혼자 찌릿~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따듯합니다.
    오래간만에 푹 빠져가며 책읽기를 했습니다. 독후감이라도 올려야할 것같아 물어물어
    찾아왔는데 쑥스럽게 댓글까지 남기게하시네요..(처음이랍니다 댓글을 써보는 거^^)
    아~ 참고로다가 저는 푸드스타일리스트 랍니다. 혹여나 맛난 거 만들어 드시고 싶으신 날이 생기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조곤조곤 설명해드릴께요^^    

  2. 곽아람

    2009년 4월 24일 at 12:02 오전

    푸드 스타일리스트!! 정말 굉장한 직업을 가지셨군요. 전 ‘요리’가 아니라 ‘취사’를 하고 있어서.. 스타일링까지 하기에는 어째 분에 넘쳐서요 ^^;; 전철로 한강다리 건너는 걸 좋아하시나요?

    저도 반갑습니다.
    이렇게 발걸음해주시다니.

    자주 오세요.
    맛난 거 만들어 먹고 싶을 땐 여쭤보겠습니다. ^^   

  3. 흉노

    2009년 4월 24일 at 10:07 오전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처럼 잔잔한 글이네요…

    소녀…

    어려서는 형제들속에서 부대끼고
    커서는 대학때까지도 남녀 공학은
    근처에도 못가보고 (공대출신입니다)…

    아들들만 키우고 있어서
    소녀란 의미는 참 아득한데…

    일본 소설 [청춘산맥]에서도
    어느 의사가 남자주인공에게
    [사춘기 남자애들이란
    소녀들 알기를
    초콜릿만 먹고 시만 읽는다고…]

    그렇게 아득하게만 생각하지요…

    그런 소녀의 이미지…
    그리고 여인…

    전철로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도 좋지만
    해마다 2월쯤이면 잠수교 부근에
    댕기흰죽지 라는 오리들이
    앉아 있는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요…

    한국이 그립네요…
       

  4. 루시안

    2009년 4월 24일 at 8:16 오후

    예전에 balthus의 화집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멍~~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sargent 그림들도 다시 한번 찬찬히 찾아봐야겠네요…최근 교보서 "windsor joe innis"라는 화가의 화집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멕시코에서 소녀들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이였는데…한눈에 빠져들게 되었죠…가격땜에 아직 구입은 못했는데…나중에 한번 만나보세요….    

  5. 곽아람

    2009년 4월 25일 at 1:00 오전

    흉노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라고 하시면 저는 당연히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시리즈가 떠오릅니다. 다음에 여기에 대해서도 한 번 포스팅을 해 보아야겠어요. 외국에 계신가봐요.. 전 소녀를 그린 그림들을 참 좋아합니다. 애달프잖아요.

    루시안님// baltus는 제가 모르는 화가군요. sargent는 저같은 여인의 초상 매니아에겐 제격인 화가지요. 말씀하신 화가 화집은 교보에서 한 번 볼게요. 저도 가격때문에 웬만해서 화집은 잘 사지 않는데 Sargent는 기회가 되면 완전 구비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들이 워낙 많아서.    

  6. wonhee

    2009년 5월 1일 at 4:50 오전

    한 편의 시 같은 글입니다.
    Sargent 하면 어머니의 초상 그림이 워낙 유명해서 알고있었는데
    누이를 주인공으로 많은 초상화를 그렸었군요.

    Violet / 보라색 얘기를 읽으면서 순간 어렸을때 읽었던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가다 꽃을 꺾는데
    소녀가 도라지꽃이 예쁘다고 하면서 자기는 보랏빛이 좋다고 하지요.

    국어시간엔가 보랏빛은 이 소설의 종말에 소녀가 죽는 것을
    예시하는 상징(?) 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어렵풋이 납니다.
    (제 기억이 맞나요? 아니면 엉뚱한 설명인가요? ㅎ )

    님 덕분에 저의 회색 톤의 일상에 은은한 보랏빛 색조를 조금 담아갑니다. ^ ^    

  7. 곽아람

    2009년 5월 1일 at 11:48 오전

    저도 소나기의 보라빛이 죽음을 의미하는 복선이라고 배웠습니다. 작가의 의도와 얼마나 일치하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덕분에 잊고 있었던 ‘소나기’가 떠오르는군요. 이번에 사전트 그림을 보면서 보라빛의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요. ^^   

  8. wonhee

    2009년 5월 7일 at 5:01 오전

    아, 맞아요 – ‘복선’이라는 용어가 생각나지 않았어요. ㅎ
    외국에 나온지 오래되니 어휘가 많이 줄어서 창피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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