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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Are you happy? - 심장 위를 걷다
Are you happy?

그저께부터 감기 기운이 있더니

급기야 코가 막히고 기침이 심해집니다.

워낙 감기를 달고 살아서 감기엔 익숙하지만

이번엔 왠지 좀 걱정이 되더군요.

‘나, 신종 플루 아냐?’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고열이 없으면 아니라네요.

다행히도, 열은 나지 않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LA에서 온 미국 사람을 인터뷰했거든요.

캘리포니아에 신종 플루 환자가 많다던데

혹 그에게 옮아온 것이 아닐까,

잠시 좀 과한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굴 인터뷰했냐고요?

바로 이 분입니다.

2009052200055_0.jpg

참 잘생겼죠?

사진을 본 편집자도 "어머, 사진 너무 좋아요" 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인터뷰하러 간다고 얘길 했더니 LA에서 유학했던 과 선배 언니가

"주의해. 그 분 굉장히 잘생겼어"라고 애길 하더군요.

(뭘 주의하라는건지… 유부남인데.. -_-;)

이 분이 누구냐면,

미 서부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LA카운티 미술관(줄여서 LACMA/라크마)

관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입니다.

‘박물관 관장’ 하면 흔히 떠오르는 고리타분하고 깐깐한 할아버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상큼하고 젊은(만 46세) ‘미모의’ 관장님이시더군요.

늘 그렇듯 기사거리가 없어서 고뇌에 빠져있었던저,

이 분이 방한한다는 보도자료를 보고 인터뷰 여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외국인인데…(사람들면엔 되도록이면 국내 인사 이야기를 많이 쓰라는 게 회사 방침입니다.)’

‘박물관장.. 따분하지 않을까?’

‘한국에 처음 온 것도 아니잖아. 세번째네.’

그러나 밥값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은 무섭습니다.

곧 이어 자기 설득이 시작되었습니다.

‘라크마면 한국 미술품을 해외 박물관 중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잖아.’

‘구글 서치해보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잖아. 재미있겠는데.’

‘한국에 세번이나 왔으니 처음 온 사람보다는 더 정확하게 한국을 보겠지.’

그리하여

바로 전화 걸어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구글을 통해 이것저것 검색을 해 보았더니

석,박사 학위도 없이 25세라는 젊은 나이에뉴욕 구겐하임 부관장을 역임한 인물로,

뉴욕 디아 아트재단 이사로 12년간 있으면서 허드슨강변의 인쇄공장을 거대한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실현했고,

2006년 ‘Transformation’을 기치로 내건 라크마 관장으로 부임해 진행했던

프로젝트들도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더군요.

21일 오전,

꾸벅꾸벅 졸면서 5호선을 타고 약속장소인 김포공항 인근의 모 호텔로 갔습니다.

인터뷰이가 전날 한국에 도착해 바로 경주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었거든요.

일단 궁금했던 것은

1. 경주에 다녀온 소감.

2. 6월 28일부터 라크마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작가 12인전을 왜 개최하게 되었는가.

3. 9월에 라크마 한국실을 확장 개관하는 이유.

4. 개인적인 이야기.

1번과 4번은 전형적인 피플 기사용 질문이라 기사에 충분히 썼고,

3번에 대해서는 "라크마에 훌륭한 한국미술품 컬렉션이 있고, LA라는 도시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감성적인 이유와,

라크마를 글로벌 문화를 대변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키우고 싶다는 전략적인 이유가 있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 개인으로서는 2번 질문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일단 답은 이렇습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매우 역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서도호, 양혜규, 김수자 등

우리가 선정한 12명의 작가들은 한국 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으면서도

한국의 문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는 특히 2004년 심장마비로 타계한고(故) 박이소 작가의 작품에 대해

전시회 도록까지 직접 뒤적여 보여주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시회 제목인 ‘당신의 밝은 미래(Your Bright Future)’는

박 작가의 동명의 작품에서 이름을 따 온 것입니다.

아래와 같은 작품이지요.

09-a22-02.jpg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2002/2006

열 개의 전기 램프들이 반사경 및 얇은 나무 구조물들과 연결돼 있습니다.

이들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커다란 흰 벽을 비추지요.

빛의 형상은 카리스마에 가득 찬 지도자의 은총을 받는

군중을 연상케 합니다.

이들은 어떤 군중일까요?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극악한 현실의 노예?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아이러니컬한 제목은 북한의 선전구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작품을 한 번 볼까요?

우리는_행복해요.jpg

박이소, ‘우리는 행복해요’, 2004.

2004년 8월 부산 비엔날레에 전시된 이 작품은 그해 4월 숨진 작가의 유작이 되어버렸습니다.

작가는 북한의 한 건물 위에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간판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요.’

과연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까요?

이것이 비단 북한만의 이야기일까요?

고반 관장은 말합니다.

"박이소의 작품은 ‘유토피아’의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행복해요’라든가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공허한 약속, 정치적인 클리셰가 존재하는 ‘유토피아’의 아이러니에 대해."

박이소는 한국을 대표하는 개념미술가였고,

고반 관장도 한 때 개념미술가가 되길 꿈꿨던 아티스트 지망생이었습니다.

이 둘은,

이런 면에서 통하는 모양입니다.

완성된 작품보다는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정의하는 개념미술가들의 작업은

참으로 지적입니다만,

저는 사실 개념이나 추상보다는 구상을 훨씬 더 좋아하는지라

이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작품은

저라는 인간의존재와 제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더군요.

‘사이좋은 사람들 싸이월드’라는 문구를 보고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소위 ‘사이좋은 세상’에 개설된 개개인들의 미니홈피에

각종 욕설과 악플을 도배하는 네티즌들의 행태를 보았을 때,

분명히 서로를 싫어하는 걸 제가 알고 있는 A와 B가

너무나도 친한 척 서로의 미니홈피에 갖은 미사여구로 치장된 안부인사를 남기는 걸 볼 때,

생긋 웃고 있는 그 로고가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졌거든요.

하긴,

모든 사람들이 사이좋게 살 수 있었다면

그런 이름을 가진 포털 사이트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사이좋은 사람들 싸이월드’라는 문구도

일종의 개념미술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다가,

"나는 박물관장이 되길 원한 적이 없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고반 관장에게

"Now, are you happy?"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다면,좀 더 세련되게 물어보았겠지만 만들 수 있는 문장이 그거밖에 없었다는..-_-;)

그는 "지금까지 내게 그런 질문을 한 기자는 당신이 최초"라며 크게 웃더니

"Yes"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건물이라든가, 관료적인 절차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창의적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언가를 만들고, 쇼를 기획하고,

혁신(transformation)할 수 있어서 좋다"고요.

지독하게 우울한 한 주의 시작이군요.

각족 인터넷 포털 첫머리를 장식한 흰 국화와 상장(喪章)을 연상시키는 검은 띠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더 우울감이 증폭돼서

저처럼 혼자 살면서 집에서 할 일이라곤 웹서핑밖에 없는 사람은

밤이 되면 좀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우리는 슬퍼요"

우리는_슬퍼요[1].jpg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10 Comments

  1. 참나무.

    2009년 5월 26일 at 12:27 오전

    아주 아주 재밌게 잘 읽었어요 – 언제나 그렇치만 …
    더 멋진 답글이면 좋겠는데
    기자님처럼 말재주 글재주가 없어 유감천만입니다…^^
       

  2. 곽아람

    2009년 5월 26일 at 12:34 오전

    참나무님/ 정말 오래간만에 뵙는군요.

    저는 참나무님이 쓰시는 세련된 글들을 참 좋아합니다.

    제게 그런 재주가 없는 것이 참 유감천만입니다. ^^   

  3. 진희원

    2009년 5월 26일 at 1:58 오전

    주말 48시간을 꼬박 촬영장에서 지내는 동안 농담같은 일이 벌어져서 ..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이 우물쭈물했어요.
    이 곳에 오니 수업 시간에 딴 짓하다 친구와 눈이 마주친 것같네요..
    멋진 경험담에 마음 풀며 나갑니다. ^^
       

  4. 풀트로틀

    2009년 5월 26일 at 8:01 오전

    잘 봤습니다.

    빛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는 것이, 그림자를 감추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빛이 세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많은 빛 안에서는 그림자도 사라지니까요.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 참 누구에게 던지기 어려운 것이네요.    

  5. 곽아람

    2009년 5월 26일 at 11:00 오전

    진희원님/ 기분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이군요. 우울은, 특히나 공인이 스스로 세상을 버렸을 때의 우울은 쉽게 전염되는 것 같아요. 수업시간에 딴짓하다 눈마주친 친구라니 참 멋진 표현이네요. 덕분에 저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풀트로틀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렇네요. 빛이라는 게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요. 현상의 양면을 다 보아야하는데 많은 경우 저 자신도 한 면밖에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ㅎ    

  6. 봉쥬르

    2009년 5월 26일 at 8:28 오후

    곽아람님 글이 참 좋습니다.
    찰 잘쓰신다 싶은 마음이 읽어가면서 내도록 느껴지는군요.
    자연스럽게 쏙 빠지는 매력적인 ….
    잘 감상했습니다.   

  7. 곽아람

    2009년 5월 27일 at 2:42 오후

    봉쥬르님/ 댓글 참 좋습니다 ^^
    감사합니다!!!   

  8. 루시안

    2009년 5월 28일 at 1:32 오전

    One Art ….(by Elizabeth Bishop) 라는 시를 자꾸만 되뇌게 되는 요즘입니다   

  9. 코코리

    2009년 5월 30일 at 1:43 오전

    곽아람 기자님 글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
    기자님 글솜씨 참 따라하고 싶습니다^^
    글 잘쓰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10. 다사랑

    2009년 6월 19일 at 1:00 오전

    오랜만에 와서 긴 글 잘 읽고 멋지게 생긴 마이클 고반 관장의 모습도 보고요..
    또 행복, 사이좋은.. 이런 단어들이 주는 첫 느낌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다 갑니다.
    또..’머리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충격적인 사건과 그 결과에 대하여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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