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런던에서 만난 남자 - 심장 위를 걷다
런던에서 만난 남자

조금 전까지 꽤나 긴 글을 썼었는데

컴퓨터 이상으로 몽땅 날아갔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무사히 블로그에 저장될지 어떨지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라고

참 많이도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난달에 런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서 이 사람을 만났지요.

images.jpg

데미안 허스트,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올 초에 처음 미술기자가 됐을 때

누군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장난스럽게 "음, 허스트?" 했을 때만 해도

몇달 후 그를 만나게 될줄 몰랐지요.

참, 인생…

정말 알 수 없군요.

인터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지난달 초의 어느 목요일,

‘한 한 달 후쯤이야 되겠군’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주 중에 올 수 있어? 그 담주부턴 나 런던에 없어."

런던이 무슨 대전도 아니고…

일정 조정과

출장 준비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고

퇴원한지 얼마 안 된 몸으로 장거리 비행을 해서 3박 5일 일정을 소화할 생각을 하면 골치가 아팠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 분이 그 때밖에 시간이 안 된다는데..

인생,

정말 알 수 없지요.

작년에 한 달 걸려 준비한 런던 북페어 출장은

떠나기 전날 아이슬란드 화산 터져서 몽땅 날아가고…

생각도 않았던 허스트 인터뷰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되고….

그나마 작년에 출장 준비하면서 바꿔놓은 파운드화와 사 놓은 런던 가이드북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떠난 것이 그다음주 수요일,

마감하고 기사 쓰느라 출장 준비는 하나도 못 하고

비행기 안에서 7시간 걸려서 자료 읽고,

도착한 날 호텔에서 새벽까지 질문지 작성해 통역에게 이메일로 보내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아… 내 삶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부담이 많이 가는 인터뷰였습니다.

평소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를 흠모해왔다면

스타를 만나는 팬으로서의 즐거움이라도 있었겠지만

전 솔직히 저 엽기적인 작품이 왜 비쌀까, 라는 의문만 가득하던 터라

인터뷰 잘 못해가면 안된다는 부담감만 백 배…

성격이 까칠한 인물이어서 질문에 답도 안 하고 인터뷰장에서 나가버리면 어떡하지?

등등

별의별 걱정…

하여튼 그런 중에도 세월은 흐르고,

인터뷰 시간은 다가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런던 중심가의 허스트네 회사 ‘사이언스’ 사무실 앞에 도착했는데

통역이 외치더군요. "아, 방금 들어간 사람 허스트예요!"

그러든 말든 전 정신이 없어서 알아채지도 못하고….

일단 사무실 1층 로비에서 직원이 가져다준 허브티를 마시며 인터뷰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P1040319.jpg

로비 프론트에는 허스트의 ‘스핀 페인팅(Spin Painting)’ 연작 중 한 점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앞에 놓여있는 노란 새는 제프 쿤스의 ‘티티(Titi)’입니다.

앞에 보이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은색 조각도 역시 제프 쿤스 작품이고요.

허스트는 컬렉터로도 유명한데요, 특히 쿤스 작품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인터뷰 시간,

허스트는 문 뒤에 숨어잇다가 "왁!"하고 저와 통역을 놀래켜주는 퍼포먼스를 선사했으나

전 워낙 긴장해서 그가 그랬는지 말았는지도 눈치 못 채고…

나중에 통역하신 분이 말씀해주시길

본인 기대만큼 우리가 놀라지 않아서 실망한 기색이었다는군요.

인터뷰 분위기는 상상 외로 부드러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게 중요한데,

제가 영어를 잘 한다면 농담이라도 하겠으나…

그러지 못하니 ‘의상’으로 승부하자고 생각…

입고 간 옷이 의외로 먹히더군요.

301145_224001754317474_100001229533602_717628_5272377_n.jpg

(미션을 무사히 마치고 템즈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인터넷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 티셔츠…

제 티셔츠를 가리키면서 "재밌다"면서 막 웃더군요.

네,

이미 고인이 된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그의 작품을 티셔츠로 만들 생각을 한 얼굴도 모르는 의류업체 사장님이 어찌나 고맙던지요. ㅠㅜ

(근데 진짜 이런 작품이 있는건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산 넘어 산이라고

인터뷰보다 더 두려운 시간이 왔습니다.

바로,

사진 촬영.

저처럼 기술도 없고, 좋은 카메라도 없으면

모델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는데…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찍을만한 곳은 딱 한 곳…

그것도 그림이 너무 높게 걸려 있어서 의자를 갖다놓고 그 위에 서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 날, 의외로 운이 좋았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다양한 포즈를 취해주시는지….

심지어 직원이 말렸는데도 본인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 모조품을 들고

사진을 찍어주는 센스~

P1040321.jpg

돼지코~

P1040362.jpg

인자하면서 귀여운 미소

P1040400.jpg

해골 머리 위에 올려놓고 균형잡기 묘기~

아, 저는 앞으로 허스트의 작품을 좋아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진촬영에 임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요.

게다가 사진 찍고 나니까

자기 책상에 놓인 포도를 먹으라고 갖다주고,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랬는지

누르면 요들송이 나오는 피클 모양 장난감(사진의 벽난로 위 오른쪽 컵 안에 있는 거)을

불쑥 들이밀어 요들송이 나오자 깜짝 놀라는 저를 보고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이

아주 소탈하고 좋더군요.

그렇게 허스트와 작별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귀국….

돌아와서 한 달 후에야 기사가 나갔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16/2011081602406.html

힘든 출장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기사가 나가고 나니까 뿌듯하더군요.

덕분에 벼락치기지만

데미안 허스트와 그 작품에 대해 꽤나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게 되었으며,

11년만에 런던 구경도 하고…

뭐,

인생….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아주 나쁘게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고

근거 없이 낙관해 봅니다.

이건 보너스,

P1040270.jpg

테이트 브리튼에서 11년만에 다시 만난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

그리고

P1040257.jpg

하루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던

테이트 브리튼 전시실입니다.

요즘은 사실

제가 한 때 이런 옛 그림들을 많이 사랑했었고,

이에 대해 책을 쓰기도 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언젠가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면

다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되살릴 수 있겠지요…

인생,

참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대체 제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일요일 새벽에

오래간만에 글을 남깁니다.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14 Comments

  1. 동쪽끝

    2011년 8월 28일 at 5:18 오전

    그리고, " 내일의 인생이 약속되는 날,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 이것도 알 수 없는,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인생의 일부분이지요.   

  2. decimare

    2011년 8월 28일 at 6:32 오전

    "컴퓨터 이상으로 몽땅~"

    이 블로그의 많은 사람들은….

    "블로그의 시스템 이상으로~"으로

    자신들의 글…공들인 글이 날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시비…아닙니다.ㅎㅎ)

    그리고…"돼지코"에서…

    이 친구… 멋진(?) 선물을 하고 있네요. 손가락….ㅎㅎㅎ

       

  3. 흰독수리

    2011년 8월 28일 at 3:06 오후

    수고~~~많으시네요
    건강하시고….행복하시기를
    삶이….오늘..오늘….축적되다보면
    그림 감사~~하게 보았습니다   

  4. 김진아

    2011년 8월 29일 at 5:28 오후

    장미꽃다발을 든 남자를 만나시는 줄 알았지 뭐예요.ㅎㅎ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입니다.

    출장에 만남에 기사 작성에..

    식사는 고단백으로 꼭! 잊지 마시고 하시구요.

    데미안 허스트…

    좋아질 것 같은데요. 호감도 급 상승 합니다. ㅎㅎ   

  5. 홍박

    2011년 8월 30일 at 3:54 오후

    멋쟁이! 또 좋은 글 기다릴께요’   

  6. 조인원

    2011년 8월 30일 at 5:06 오후

    사진 죽입니다   

  7. 곽아람

    2011년 8월 31일 at 2:34 오전

    동쪽끝님> 그 말, 참 슬프네요. "내일이 약속되는 날,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어디 나오는 말인가요?
    decimare님> 그게 컴퓨터 이상이 아니라 블로그 이상일까요? ㅠㅜ
    흰독수리님> 축적되다보면 어디론가 가겠죠…
    김진아님> 장미꽃다발을 든 남자를 만나도록 빌어주세요 ^^
    홍박님> 넹. ㅎㅎㅎ 감사합니다.

    조인원 선배> 모델 운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   

  8. 아침이슬

    2011년 8월 31일 at 2:16 오후

    무지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읽는 제가 부듯한데요.   

  9. 아침이슬

    2011년 8월 31일 at 2:16 오후

    여러분이 남겨주신 따뜻한 댓글 한 줄이 큰 힘이 됩니다!   

  10. 2011년 9월 3일 at 2:13 오후

    템즈강을 배경을 찍은 사진,, 미소가 예뻐요. 티셔츠도 눈에 확 띄네요 ㅎ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진 저도 모르겠지만, 아람님은 그 인생에 적절히 적응, 대응하고 있는것 같아요. 그리고 아람님 팬이 많으니깐…저도 그 중 하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든 늘 응원할게요!!   

  11. 곽아람

    2011년 9월 7일 at 9:10 오후

    아침이슬> 돌이켜보면 좋았죠 ㅎㅎ 원래 행복은 돌아봐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인 듯.

    연님> 저도 응원할게요. 근데 정말 제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12. 김준학

    2011년 9월 25일 at 11:43 오후

    정말 하루종일이라도 있으라면 있을 수 있는 전시실이에요~
    너무 부럽고~좋은 작품들 잘봐서 너무 좋습니다! ^^크크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도 매일 고민하지만~ 어떻게 흘려가는지도 중요한 거 같다고,
    요새 많이 느끼고있어요~ 인생이란게 뭔지 정말 모르겠네요ㅎㅎ   

  13. 손혜정

    2011년 11월 7일 at 10:21 오전

    오랜간만에 와서 함박웃음짓고 갑니다.^^ 선배님, 잘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북마크해놓았던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에 관한 페이지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회사에 있을때 사인받고 싶었는데…언제쯤 다시 볼 수 있겠죠?^^   

  14. 아름드리

    2012년 1월 11일 at 9:52 오전

    아쉽네요~~ 작년여름 그곳에 한달넘게 있었는데…
    사전트그림, 밀레니엄다리~~반갑고 그립군요.
    곽기자님을 좋아하는 딸이랑 음악과 그림이 있는 런던의 한저녁은 되었을걸……..
    FM많이 들으시고 언젠가 만남의 축복이 있겠지요~~~평강하세요.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