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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애틋한 가을 - 심장 위를 걷다
애틋한 가을

낮에,

비갠 직후의 한강대교를 택시를 타고 건너다 말고,

약간 서글픈 기분에 잠겼습니다.

가을이다 보니 애틋해지네요.

회사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대학 동문회에서 온 소식지를 훑어보다가,

이런 시를발견하곤 더욱 애틋해졌습니다.

뜰에다 옷가지며 장신구를 말리다 보니
고향에서 가져온 헌 신발이 눈에 뜨인다.

지난날 내게 준 사람을 생각해 보니,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내게 주면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꼭 이 신발이 다 닳도록 신어주세요.

영원히 이 신발의 두 끈처럼
함께 걷고 함께 멈추길 원합니다."

나는 이곳 강주로 좌천되면서
삼천리 길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그래도 다정한 그녀에게 감격하여
이곳까지 함께 가지고 왔다.

오늘 아침 그리움에 어찌나 슬프던지,
손에 들고 거듭 바라보며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사람은 혼자지만 신은 두 짝인데
우리 두 사람 이 신발같은 적 언제였던가?

아아, 신발이여 가엾기도 하구나.
속에 수 놓고 겉에 비단 입힌 신발이

오랜 장마 기간을 거치고 나니
빛 바래고 화초 무늬는 사라져버렸다.
-백거이, ‘정을 느껴서’-

中庭晒服翫 忽見故鄕履.
昔贈我者誰 東隣嬋娟子.
因思贈時語 特用結終始.
永願如履綦 雙行復雙止.
自吳謫江郡 飄蕩三千里.
爲感長情人 提携同到此.
今朝一惆悵 反履看未已.
人隻履猶雙 何曾得相似.
可嗟復可惜 錦表繡爲裏.
況經梅雨來 色暗花草死.
-白居易, ‘感精’-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29세에 진사 시험에 합격,

승승장구하며 사회개혁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권신들의 미움을 사 44세 때 강주로 좌천되었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816년 이 시를 지었다네요.

시에등장하는 빛바랜 낡은 신발은,
젊은 시절의 연인상령(湘靈)이
정표로 준 것이라고 하는군요.

백거이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고 말았다고요.

백거이는 그녀를 잊지 못해, 당시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37세에 결혼했고,

유배지까지 옛 연인의 정표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1200년 전 시인이나,

현대의 우리나,

사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이 금력(金力)의 시대에 그래도 인문(人文)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 옛날의 그들이나

현대의 우리나,

같은 인간이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

그걸 깨우쳐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서늘한 가을날 아침,

옛날 생각들 많이 나시지요.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백거이의 애잔한 마음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옛 여자를 못 잊어, 그를 글로까지 남긴 남편을 둔 백거이의 부인을 생각하자면…

다정(多情)도 병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

신발의 화초 무늬가 바래듯,

옛사랑도 언젠가는 바래기 마련이지만…

이 시를 지었을 당시 결혼 8년차였다는데…

어느 아침 문득 생각이 났겠지요.

백거이의 ‘그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당 화가 주방(周昉)의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 첨부합니다.

사실, 시에 나오는 그 어여쁜 여인은,

이보다 더 가녀리고 청순했을것 같지만…

주방, 잠화사녀도.jpg

주방, ‘잠화사녀도’, (부분).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15 Comments

  1. 참나무.

    2012년 10월 11일 at 6:16 오전

    …이 금력(金力)의 시대에 그래도 인문(人文)이 힘]

    요 구절 때문에 잠깐 음악 줄이고…
    시를 가져갈 수도 있겠어서 모셔갑니다
    간송 소식 등 얼마나 감사한지요

    애틋한 가을 잘 보내셔요 기자님…^^   

  2. Hansa

    2012년 10월 11일 at 10:18 오전

    곽아람님, 백거이의 시가 좋아서 제 방에 옮깁니다.

    고맙습니다.

       

  3. shlee

    2012년 10월 11일 at 12:51 오후

    떠 도는 이야기 중에
    신발을 선물하면 상대방이 도망가거나
    헤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결혼 할때 신발을 사주지 않는다고 …
    선풍기 사가면 바람난다고 하는거나 비슷한~
    백거이의 그녀가 전설을 만들었나…
    애틋한 사연이네요.
    신발은 사주지도 말고 받지도 마세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4. 곽아람

    2012년 10월 11일 at 11:48 오후

    참나무님/ 참나무님도 애틋한 가을 잘 보내세요. ^^
    Hnsa님/ 오랜만이죠? 얼마든지요. 저도 옮겨온건데요 뭐 ㅎㅎ
    Shlee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백거이의 그녀가 전설을 ㅎㅎ 근데 또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   

  5. 高火力

    2012년 10월 18일 at 12:02 오후

    아람님. 어여 빨리 좋은 분 만나 좋은 소식 들려주시길…..^^   

  6. 곽아람

    2012년 10월 28일 at 10:28 오후

    高火力님/ 제가 2003년 이후 근 10년째 줄기차게 듣고 있는 말이 바로 그겁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7. 2012년 10월 30일 at 4:43 오후

    아람님!!! 오랜만입니다~~ 저 기억하시는 모르겠어요.. 제가 넘 불쑥 찾아온 것 같네요~

    저번주에 광화문에 교육이 있어 일주일간 광화문에서 생활했답니다^^ 교보문고랑 조선일보 건물을 보니 아람님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인사라도 드리고 싶다는 소심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읽지못했던 포스트를 찬찬히 읽어보니,,그동안 바쁘게 열심히 지내셨더군요..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아요~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데요 감기조심하시구요~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남자분이 나타나길^^ 우리 둘다 ㅎㅎ   

  8. 곽아람

    2012년 11월 5일 at 9:49 오후

    연님/ 당연히 기억하죠 ^^; 저도 요즘 블로그 잘 안 들어와서 금방 금방 댓글도 확인 못 하고. ㅎㅎ 연락 주시지 그러셨어요. 근데 아마 사무실에 없었을지도? 따스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겨울나기 잘 하세요 :)   

  9. 김주형

    2012년 12월 18일 at 4:09 오후

    연말이 되어 또 인사하러 왔어요.

    올해는 글이 띠엄띠엄, 많이 바빴나 봅니다.
    블로그가 아직도 ‘애틋한 가을’에 머물러 있네요.

    백거이 시 애틋해서
    저도 생각난 노랫말을 옮겨보았습니다.

    다른 번역이 맘에 안들어 제가 해 보았는데
    딱딱한 게 역시 시는 제 타입이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탕웨이의 고즈넉한 읇조림이 좋군요.

    http://blog.naver.com/innovate100?Redirect=Log&logNo=156247385

    연말 연시 건강하게 즐겁게 보내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과거의 그림자들이 바짝 나를 쫓아 같이 떠돌아요
    눈앞의 세상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네요
    실망하지는 않아요, 또 기대하는 것도 피하겠어요

    사랑은 충분해서 두사람으로 하여금 잊지 못하게 해요
    하지만 고독은 단지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네요
    고마워요, 당신… 내 곁으로 지나가주어서요

    낯선 당신이 마치 익숙한 햇빛처럼
    내몸이 지구 위에 던져져 흔들리는 신세임을 새삼 깨우쳐 주었어요
    사실 당신이 내 안의 흔들림을 알아보았음을 나도 알아보았어요

    사랑은 마음대로가 아닌, 반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봐요
    바람이 불면 물보라도 그저 같이 따라 흩날릴밖에요

    그렇지 않다 한들, 또 어떻겠어요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에게 묻지 않겠어요
    영원이라지만 얼마나 짦은 잠시인지도 생각하지 않겠어요
    단지 당신이 내 곁에 있기를 아직 기대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에요

    사랑은 혼자서 반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봐요
    잘못이 있으면 당신과 내가 함께 갚아요

    무언가를 기다린들 또 어떻겠어요
    늦가을이 늦지 않은들 또 무슨 상관이겠어요

    -임석, 晚秋

    过去的阴影紧随我流浪
    眼前的世界麻木得坦荡
    不失望也避免期望
    爱情足够让两个人难忘
    孤独却只有我一个承担
    谢谢你走过我身旁

    陌生的你像熟悉的阳光
    提醒我身处在地球游荡
    原来我还会看你看到慌乱
    爱不是不任性就能反抗
    风来时浪花也只能狂放
    不这样又怎样

    不问你什么是真正喜欢
    不去想永远是如何短暂
    只要我还会期望你在身旁
    爱不是一个人所能抵抗
    错误有你和我一起补偿

    等什么又怎样
    晚秋不晚又何妨

    -林夕, 晚秋
       

  10. 곽아람

    2012년 12월 22일 at 10:51 오후

    김주형님/ 네, 올해는 포스팅이 지나치게 드물었습니다. 꾸준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세요. 고즈넉한 읊조림, 참 좋네요.   

  11. wonhee

    2013년 1월 25일 at 7:32 오후

    해를 넘기고 이제서야 이 포스트를 봅니다! -_-
    요즘 블로그는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거든요.

    백거이의 시가 너무 좋아서 제 페북 담벼락으로 모셔갑니다.
    님의 좋은 설명도 일부 포함해서요.

    물론 출처는 분명히 명기하겠지만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바로 내리겠습니다. ^^

    그럼 활기찬 새 해 되시길 바라면서!   

  12. 곽아람

    2013년 1월 27일 at 3:11 오전

    원희님. 블로그의 시대가 드문 건가요?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 활기찬 새해 되세요.   

  13. 정현철

    2013년 2월 17일 at 2:33 오후

    부인을 생각하여 시조차 남기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예술작품은 10분지1로 줄어들었을겁니다.    

  14. 곽아람

    2013년 2월 17일 at 7:10 오후

    정현철님> 그 말씀 듣고보니, 또 그러네요 ^^   

  15. 정현철

    2013년 2월 17일 at 9:26 오후

    가지지 못하는 사랑이 더 강렬한 법이지요^^ . 그래서 예술로 탄생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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