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겔, ‘이카루스의 추락’, 1555~1558′
화창한 시월 초순의 어느 날에 벨기에 왕립박물관의 이 그림 앞에 서 있었습니다.
2006년 시월의 추석 연휴에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이 그림 앞에 서 있었지요.
괴로워서 도망치듯 떠난 여행있었습니다, 당시에.
이번에는 출장 중에 잠시 짬을 내 미술관 관람을 간 거였었죠.
7년 전의 저는,
7년 후에 다시,
브뤼셀에서 이 그림 앞에 서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요.
그림의 힘에 대해,
사람을 그 앞에 서 있게 하는 그림에 대해,
그림의 인력(引力)에 대해,
그림이 주는 위로에 대해,
오래간만에 생각했었습니다.
2006년에, 추락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익사 직전이라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데,
주변이 너무나 무심하여 원망스러웠었어요.
원래 세상이란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지요.
브뤼겔은 그 장면을 너무나 절묘하게 그려놓았죠.
해를 향해 날아오르다 태양열에 밀랍 날개가 녹아내려 떨어져버린 이카루스,
그가 빠져죽든 말든,
낚시꾼은 무심하게 낚시를 하고,
농부는 태연히 밭을 갈고,
소년은 태평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사실 이 그림을 처음 알게 된 건
고3 때였던 1997년,
대학 입시 면접 준비를 하며 읽었던 최영미 시인의 ‘시대의 우울’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금도 집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
유럽 미술관 기행이었는데,
가장기억에 남는 게 바로 이 그림이었죠.
그 때, 면접 준비를 하면서,
만일가고자 하는 과에 합격을 하게 되면,
이 그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시 시험엔 떨어졌지만,
재수 끝에 다음에 같은 과에 합격했고,
2008년 나온 첫 책 ‘그림이 그녀에게’에 이 그림에 대해 썼었지요.
결국
꿈은 이루어진 셈인가요?
어찌하였든
저와 인연이 깊은그림인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저를 다시 그림 앞으로 서도록 한거대한 힘,
그것이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의미를 깨닫게 되겠지요.
이건 서비스 컷.
무척이나 좋아하는 플랑드르 화가인
로베르 캉팽(‘플레말르의 거장’이란 별칭이 있죠)의 ‘수태고지’랍니다.
원래 이 작가의 ‘수태고지’로는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클로이스터분관의
‘메로드 제단화’가 더 유명합니다만,
로베르 캉팽, 메로드 제단화, 15세기
제 눈엔 더 소박한 이 ‘수태고지’가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제가 마리아라면,
주님의 은총을 입기 전에
은총을 알리러 온 천사에게 반해버릴 것 같아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도록을 사오려다가
값도 비싸고, 무게도 무거워서 포기했는데,
나중에 귀국하고 나서도 저 그림이 계속 눈에 아른아른.. ㅠㅜ
차라리 사고 후회할 것을,
번번이 안 사고 후회하는 이 버릇은 대체 언제 고칠 수 있을지..
(저는 인터넷보다는 책을 선호합니다)
자, 이제 월요일.
뻑적지근하지만 그래도 힘 차게,
한 주 시작하시길 빕니다.
아카시아향
2013년 10월 14일 at 3:41 오후
브뤼겔 그림을 보면서는 항상
무슨 숨은 그림 찾기 게임 같은 게 제일 먼저
떠올라요.ㅎㅎ
자세히 드려다 보면…
‘세상은 잔인하기도 하다.’ 는 걸.
그럼에도 예술은 위로를!^^
곽아람
2013년 10월 14일 at 8:19 오후
아카시아향> 네, 말씀대로 ‘숨은 그림 찾기’, 그러나 잔인한 숨은 그림찾기. 잔인한 예술이 인간에게 위로를 준다는 건 참 역설적이죠.
八月花
2013년 10월 15일 at 11:38 오후
왕립미술관을 스치듯 보고 나왔어요.
아쉬움이 잔뜩 남았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네요
꿈을 이루신 곽기자님..
승승 건필하시길 빌겠습니다.
곽아람
2013년 10월 20일 at 9:48 오후
팔월화님> 스치듯 보셨다면 정말 아쉬움이 잔뜩 남으셨을 것 같아요. 승승건필하려고요. ㅎㅎ
equus
2014년 1월 3일 at 5:35 오후
그렇지요. 브뤼겔의 그림은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있는것 같아요. 한참동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이야기 책을 읽고있는 듯한…
나는 반대로 사고나서 나중에 후회하는…
잔뜩 쌓여있는 저 책들, 잡동사니들, 어떻게 모두 버리고 죽나?
곽아람
2014년 1월 4일 at 1:31 오전
equus님> 저도 책에 대해서는, 대체 어떻게버리나 싶어요 ㅠㅜ
김준학
2014년 2월 21일 at 4:19 오후
영화 뮤지엄아워스에 브뤼겔,브뤼헐 그림이 나와요^^~ 브뤼겔 그림은 꼭 월리를 찾아라를 보느 느낌이에요ㅎㅎ 다양한 캐릭터들이 숨어있는~~ 바벨탑 그림도 나오고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주배경 영화인데 너무 좋았어요!
곽아람
2014년 2월 25일 at 8:50 오후
준학님> 그 영화 꼭 봐야겠어요.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좋아하는데 ^^ 감사합니다.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