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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나의 마지막 미술 기사 - 심장 위를 걷다
나의 마지막 미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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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밤 11시 20분,
적요한 편집국에서
다음날 신문을 챙겨 퇴근했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었고,
9시쯤 다시 회사로 들어가 대장을 확인하고 오자를 체크했고,
다시 나와 약속에 참석했다가
11시에 다시 들어가 신문을 확인하였죠.
사진 빛깔이 칙칙할까 걱정했는데,
산뜻하게 잘 나왔더군요, 박수근 작품.

소위 ‘화면발’이 받지 않아,

박수근 작품을 기사에 자주 쓰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눈으로 보이는 것의 이면,
인쇄된 것 너머의 ‘실물’을그려주길 바랐지만,
일별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요즘같은 세상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죠.

드물게혼자서 지면을 만들었습니다.
기사도 쓰고싶은대로 썼고,
사진도골랐고,
제목도 직접달았지요.
제 마지막 미술 기사니까요.

최근 회사에 대규모 인사가 있었고,

저도 만 3년간 맡았던 미술 담당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사이니만큼 성심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박수근 탄생 100주년 전시가 가나아트센터에서 있지만,

이미 타지에 보도가 되었고,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 회사 전시,’명화를 만나다-근현대회화 100선’전에

훌륭한 박수근 작품이 있기 때문에,

그 전시에 집중하자고,

주말동안 생각했습니다.

박수근을 모르는 독자들은 많지만,

박완서를 모르는 독자들은 그보다 적겠죠.

열화당에 부탁해 박완서의 ‘나목’과
박완서가 ‘나목’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책,

‘나목을 말하다’를 구했습니다.
친절한취재원이 ‘나목을 말하다’에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초상화 주문을 맡았던 박완서는,

초상화부에서 박수근을 만났고,

그 경험을 소설 ‘나목’으로 써서 마흔 살에 등단했었지요.

어린 날, 백과사전을 뒤지다 우연히 보게 된

박수근 화보에 반해,

박수근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박수근의 ‘농악’을 가지고 판화를 만든 적도 있었어요.

그 ‘농악’이 걸려있는 미술 전시의 담당 기자가 될 줄은

그 때는 꿈에도 몰랐겠지요.

지난 주말 동안 ‘나목’과 ‘나목을 말하다’를 읽었습니다.
‘나목’에선 제가 기억하고 있는 팩트가 맞는지 확인했고,
‘나목을 말하다’에서 박수근에 대한
박완서의 회고를 찾아냈어요.
절구질하는 촌부 그림에 대한 얘기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선전 입상작이라니 우리 전시 그림은 아니었지요.
박수근 연보를 뒤져 선전 입상작 중 ‘일하는 여인’과
‘농가의 여인’으로 압축한 후,
전문가와통화해 확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썼어요.
박완서의 회고로 시작해,
‘절구질하는 여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거기에 박수근 맏딸과의 통화 내용을
덧붙였었죠.
생전의 박수근이 남긴 말과,
임종때 한 말이 가나아트센터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있었습니다.
이미 타지 기자들이 사용해 버린그 말들을,
평소의 저라면 남들과 같은 기사를
쓰기 싫다며 버렸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엔 쓰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이니까요.

그림을 골랐어요.
당연히 ‘근현대회화 100선전’에 나와 있는 ‘절구질하는 여인’이 1순위.

편집자는 박수근이 한쪽 눈이 멀어 그린 ‘행인’을 얹어놓았습니다만,
저는 빛깔이 어두우니 좀 더 화사한’골목 안’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지요.
‘나목’의 모티프인
‘나무와 두 여인’은 소장자 사정으로
이번 전시에 대여받지 못했습니다.
‘전시에 나오지 않은 그림을 기사에 써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미술 기사의 용도 중 하나는
‘교양의 확장’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그림이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나무와 두 여인’도 싣기로 했어요.
제두번째 책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에

‘나목’과 그 그림을 함께 소개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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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에게 ‘박수근 100세, 지금 덕수궁에 그의 아내가 있다’ 혹은
‘박수근 100세, 지금 덕수궁에 그의 그녀가 있다’로 제목을 달아달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의 아내가 있습니다’로 경어체가 되어있더군요.
그 편이 더 정감 있다는 편집자의 의견을 존중키로 했습니다.

"가난한 화가의 내자로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고단한 삶이 잘 살아난 제목"이라고

다음날 기사를 읽은 누군가가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혼자 일했습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저는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을 사랑했습니다.
회사 사업이었지만,
일로 여기기보다는 즐겼던 것 같아요.

저는 근대의 그림들을 사랑했어요.
척박한 시대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들의 예술혼,

그 뛰어난 기교와 진지함.

이인성의 강렬함과, 김은호의 섬세함과, 김인승의 품격을 좋아했습니다.
그 전시 기사를 쓰면서,

조선일보가 미술 전시를 열게 된 연원이 궁금해졌고,

1950~1960년대에조선일보가 주최한 전시회에 대한 석사 논문도 함께 썼습니다.
사람들이 전시를 칭찬할 때엔,
마치 제가 잘한 양 으쓱해졌지요.

이제 알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좋아했어요.

미술품과 관련된 각종 비자금 사건 때문에

전시회보다는 사건으로 작가와 작품을 배웠습니다.

항상 숨가빠 허덕였고,

때로는너무 힘들어 울먹였지만,
그래도 미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3년간 원 없이 했고,
더 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문을 말아쥐고,

조용히 편집국을 빠져나와

차가운 광화문 밤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그리고 약간 울었습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13/2014011304523.html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21 Comments

  1. 참나무.

    2014년 1월 16일 at 4:51 오전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제목만 보고…어디 병원에서 올린 기사인 줄 알고…
    근데 일단 병원은 아니어서 "휴~~다행…." 하다

    문화부 미술 전문기자 직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싶으니 다시 슬퍼지는군요

    기사 하나가 제작될 때 얼마나 애를쓰시는지 충분히 감지됩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신문 펼치고 곽아람 기자 님 기사 실리는 날은 제일 먼저 읽는데…
    김성현 기자 님 음악에서 국제부로 갈 때도 섭섭했지만-요즘은 솔직히 정독못합니다..;;

    그나저나 어느 부서(다른 일?)로 가시는지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네요…;;

    (아기가 깨어 우유먹인 후 컴 열다가…)    

  2. 김진아

    2014년 1월 16일 at 1:04 오후

    저 역시도 놀랬어요.
    까칠이 공주 간신히 재워 눕히고..다시 천천히 읽었습니다.

    근 현대회화전에서 ..디카에 담긴 그림이 눈으로 직접 본거완 너무나 달랐습니다.
    신문에 만난 박수근 화백의 그림 ..박완서님의 나목..곽아람님 글

    그랬군요. 웬지 모를 ‘그의 아내는 지금 덕수궁에 있습니다.’
    아마 곽아람님 떠난 이후에도 문화 미술 기사에서 자꾸만 찾으려 들것 같습니다.

    아쉽고 서운하고 저도 그렇습니다.
    전, 곽아람님 기사, 문갑식님 기사,지해범님 기사, 선우정님 기사..
    그날 그날 신문에서 제일 먼저 읽어가는 즐거움..

    내내 건강하시고 설마 아주 떠나시는 것은 아니시죠?
       

  3. 조인원

    2014년 1월 17일 at 4:12 오후

    수고 많았어
       

  4. 곽아람

    2014년 1월 18일 at 12:49 오전

    참나무님> 김진아님>
    저는 주말뉴스부로 발령이 나 앞으로 주말섹션 Why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토요일마다 뵙겠습니다. :)   

  5. 곽아람

    2014년 1월 18일 at 12:49 오전

    조인원> 선배, 고맙습니다! ^^   

  6. 2014년 1월 18일 at 11:29 오전

    2~3년마다 인사이동이 있나보네요. 여러 부서 중에서 애착가는 부서 중 하나였을거 같아요. 뭔가 허전함이ㅠㅠ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 전시도 곧 보러 가야겠어요
    주말섹션 Why도 챙겨 읽는데 반가운마음으로 토요일날 뵙겠습니다^^   

  7. 무무

    2014년 1월 18일 at 6:10 오후

    무슨 부서에서건 어떤일을 하시던 잘하실겁니다만
    애착을 가지고 열정으로 일하시던 것에 대한 아쉬움은
    가슴에 남겠지요
    새로운 일에도 즐기시며 하실 수 있다면….
    곽기자님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진 새로운 why를
    기대해 보겠습니다(참나무님이 곽기자님도 진주분
    이라시기에 급 관심을 가진 서울내기 진주아짐입니다^^)   

  8. 여덩

    2014년 1월 18일 at 9:52 오후

    기자님 얼마전에 기사 읽었는데 마지막 기사였군요ㅜㅜ
    항상 미술면 먼저 봈었는데..
    why 열심히 읽을게요 응원합니다!! ^^   

  9. smile

    2014년 1월 19일 at 10:52 오후

    해외거주하는 관계로, 조선일보-종이신문을 자주 읽진 못하지만, 비행기 타거나 서울 집에 가 머무르는 동안이면 어김없이 읽는 게 큰 낙 중 하나랍니다. 이 기사,, 지난 주 집에 간 다음 날 펼친 후 오래..도록 제 시선을 끈 제목이었어요.
    곽기자님 기사인 건 지금 다시 온라인으로 읽고 깨달았네요. 역시…

    다른 부서에서도 유익하고 멋진 기사 써주시길 바랍니다. ^^

       

  10. 김성

    2014년 1월 21일 at 9:02 오전

    다른 부서 가서 적응할려면 서먹서먹하고 적응하기까지 힘들수도 있지만 기자들은 여러 부서에서 경험하는 것이 장래 위해서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사 읽어보니 다시 또 가보겠습니다   

  11. 곽아람

    2014년 1월 21일 at 5:03 오후

    연님>휴가중이라 댓글이 늦었습니다. 저는 입사할 때부터 문화부 기자가 꿈이었어요. 4년 전 그 꿈이 이루어졌고, 4년간 즐겁게 일했어요. 올해부턴 새로운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전시 꼭 보러오세요. 토요일마다 뵐게요.   

  12. 곽아람

    2014년 1월 21일 at 5:05 오후

    무무님> 아쉽다기보다는, 음..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향이시니 반갑습니다.:)   

  13. 곽아람

    2014년 1월 21일 at 5:05 오후

    여덩님> 네. 앞으로 토요일에 뵈어요.^^   

  14. 곽아람

    2014년 1월 21일 at 5:07 오후

    스마일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니, 정말 뿌듯한데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15. 곽아람

    2014년 1월 21일 at 5:08 오후

    김성님> 네. 저도 다양하게 많은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16. 장혜신

    2014년 1월 21일 at 7:54 오후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림이 그녀에게’를 읽고 곽아람 기자님의 미술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던 철없는 고3이었습니다. 아직 스크랩 노트가 반이나 남았는데 앞으로 기자님의 미술 기사를 볼 수 없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언젠가 반만 채워진 제 스크랩북을 들고 가서 싸인을 받을 기회가 있겠죠?

    고고미술사학과에 지원하려던 계획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지만 기자님과 대학동문이 되는 데에는 성공했답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어요.
    몸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좋은 글 써주세요.   

  17. 곽아람

    2014년 1월 24일 at 1:44 오후

    장혜신님> 기사 스크랩이라니 영광인데요. 한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합니다. 대학 합격 축하드립니다. 앞으론 다른 기사도 스크랩해주시면 되죠!!^^   

  18. 하자스라

    2014년 1월 30일 at 8:42 오후

    참 잘 읽었습니다.
    옮겨갑니다.감사합니다.   

  19. 곽아람

    2014년 1월 31일 at 1:00 오전

    하자스라님> 네, 감사합니다 ^^   

  20. 신혜림

    2014년 2월 6일 at 2:21 오후

    곽아람 기자님의 <그림이 그녀에게>를 읽고…
    그 이후 곽기자님의 기사들을 찾아 읽을 정도였는데..
    떠나시는군요.. T.T

    저두 서운하네요~~~
    더 멋진 기사 부탁드립니다.!   

  21. 곽아람

    2014년 2월 7일 at 11:54 오전

    신혜림님> 앞으로 주말에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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