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논산훈련소 입소

백두(白頭)로수용연대입소

1968년1월25일

내가군에입대하는날이다.

1,500원을주머니에꼭챙겨넣고단신으로선친의고향인충청북도보은으로내려갔다.

고향으로찾아간이유는본적지인근기차역에서입영열차를타기위해서였다.

그곳엔아주어렵게사촌동생4명과홀아비로이발업을하시며연명하시는

큰아버지가계셨고또어릴적에노당을귀여워해주시던

예쁘셨던창자아줌마와가운데할머님,그리고환수조부님이계신곳이다.

한마디로예기하면나의본적지이며아버지어머니의고향인곳이다.

그날저녁가운데할머님댁에서정성으로차려주신만찬을큰아버님과하면서

큰아버님께머리를깍고입영하기위함이며또한입영열차를타는곳이대전역이라이왕이면

고향에들려선산에계시는할아버님께인사드리고가려고왔노라말씀드렸다.

사실군에가기전에군생활에대한두려움과호기심으로걱정을하기도했지만

많은이야기를주워들은바에의하면

군대는요령이다,군대는속도다,군대는돈을갖어가야한다,군대는춥고배고프다,

눈치가빨라야한다,군대에서는들지않는바리깡으로머리를자르는데머리가반정도뜯겨나오고

아픈것은고사하고피가줄줄흐를정도니이발은사회에서하고가야한다는등등…

그런이유로아예보은큰아버지께겸사겸사들렸던것이었다.

(이그림은노당의군추억록의첯페이지다)

나는다른입영자들처럼근심과두려움을가슴에품고이제곧발발한전쟁에임할각오를다짐하며

인천쪽하늘에대고아버지와어머니그리고여섯명의동생들에게"걱정마라큰형은정말용감하고

씩씩한군인으로건강하게살아돌아갈것이다"

하며이를꽉물고두주먹을움켜쥐었지만세상은그리만만치않게나를시험하고있었다.

정말그럴수밖에없었던사건들이줄지어터져나왔으니…

아마지금의현실에그런정도의사건이있었다면젊은이들을군에보내려고하는부모가있었을까?

입영하기수일전1월21일서울청와대를향하여무장공비1개소대가빠른속도로침공해왔고

그로인하여온나라가비상이걸려치열한전투로우리측의사상자가수없이발생하고

몇명은청와대뒷산인가앞산에가까이왔다고하는소식이들려왔으며

이때베트남에선베트콩들이구정총공격이1월21일시작되었던것이다.

어디그뿐인가?1월23일은미국의첩보선푸에블로호가북한의해군에의하여납치되어

북으로끌려가는사건이있었으니그시기가내가생각대로만만한군대입대는아니었다,

왜하필내가입대하는데…

북한공산당놈들은이따위로분위기를흐리며전쟁을하려고하는거야,

에이씨~8.박문규복도더럽게없네..하며

환송자도없이홀로입영열차를타겠다고딸랑1,500원을주머니에넣고그렇게고향을찾아온것이다.

(첩보수집함푸에블로호)

다음날아침예정대로큰아버님댁으로찾아가머리를백두로밀어버렸다.

그때는나도큰아버님도그저말없이바리깡소리만몇분을듣고있었다.

짤깡,짤깡.짤깡…뒷머리도,앞머리도시원함을느꼈으며길었던머리카락뭉치가

하얀까운위에툭툭한무더기씩떨어져내렸다.

이발이끝나고큰아버님이점심을먹고가라며물을끓이신다.

시커먼양은솣을보니물이끓고있었다.거기에언제먹다남은지모르는김치를한종기쏟아붓는다

찢어지게가난했던큰아버지와사촌동생들은그때까지아침을굶고있었고

나때문에국수를한관(3.7kg)사다가지금그렇게끓이시는거다.

잠시후국수가반정도들어가고솣뚜껑을덮고몇분이지나니빨간국수장국이한솣가득히끓었고

큰아버지와나그리고사촌동생들6식구가따끈한김치국수장국을배불리맛있게먹었는데

내생선그렇게맛있게끓인국수장국을맛본적이없었다.

큰아버지는내가드리는이발비100원도한사코사양하셨다.

이발손님은하루에많으면5~6명,적으면한두명손님이온다는데….

그날17;00대전발입영열차를타기위하여어른들과친척들에게인사를하고대전행버스를탔다

이제내주머니엔500원짜리두장과버스표한장이총재산이다.

꼬물꼬물한사촌동생들에게500원한장을내주며학용품사고아껴쓰라며주었기에…

캄캄해진대전역그곳에서5시에입영열차를타고그냥열차에앉아서몇시간인가를긴장속에

앉아있었다,

10시쯤인지열차가어둠속을갔다가섰다가되돌아오는듯하다가이리저리왔다갔다하면서

어디론가가기는가고있었다

(그때입영열차는그렇게해야만했을까?지금도생각할수록신기하다^^*)

1월27일01;00"전입대병력하차하여운동장에지역별로해쳐모여"라는

지시와함께한밤중의차가운바람속의수용연대운동장에집결시켜놓고

기간사병들의통솔방법이기기묘묘할정도로병력들을이리저리나누고자르고합치고

모든출신지역을섞어놓고부여받은병과도참작하여대대와중대를편성하고

다시소대로나누고있었다.

입영당시내가입고갔던상의가밤색가죽(사실은가죽같은비닐임)점퍼와빡빡깍은빽두이미지가

돋보였는지간부들은나를7중대16소대1조장으로임명하였고지시에의하여하얀치약으로

가슴에다소속표기를했다.

한내무반소대원이80여명정도되었었다그러니군번도받기전에내부하가40명정도되었다는이야기다.

02;20경인계받은40명을인솔하고16소대를향하여기간병을따라찾아가불도안켜진내무반문을열고

웅성웅성더듬더듬빈자리를찾아눕게하는데저쪽구석에서먼저들어와고참노릇하며자던친구가

"야~이개XX들아조용히못해?"

하는소리와함께어떤넘신발짝이하나날아와우리조원의얼굴에맞았다,

"딱"소리와함께순식간에조용해지고또다시"EC브럴넘들아빨리침상밑으로들어가조용히자빠져"

하는고함과함께또하나의신발짝이날아왔다…..

날아온신발짝은다행이아무도맞지않고비켜날아가우리가들어온문에맞고떨어진다.

아~대한민국군인이되겠노라고대굴빡빡빡깍고한밤중에어딘지도모르는허허벌판의포로수용소같은곳에서

난생처음느끼는공포감과절망감이답답하고후회스럽게가슴을짖눌러온다……

나는중학교를졸업할때까지동료들에게매일매만맞고학교엘다녔으며언제부턴가는학교를빠지고

만화가게를학교로삼아통학을했었다.

물론퇴학위기도몇번을당했고그럴때마다선생님과아버지앞에서"학교만가면이유없이애들이막때려요"라고

울먹이며학교를안다니겠다고한적도있었다.

얼굴은노랗게폣병환자같았고못먹고헐벗어버짐이덕지덕지핀몰골에삐쩍말라있는내모습을

많은사람들이"너어디아프냐?"혹은어머머니와아버지에게"저아이폣병아니냐?"고물을정도였으니…

그렇게하며중학교3학년을퇴학당하지않고졸업을했다,참으로다행이아닐수없었다.

당시의인천남중학교는인천에서인천중,동인천중,남인천중으로3번째로우수한학교였고치열한경쟁(1;3)으로

입학시험을치르고입학한곳이었으며사범중학교와남중둘중택일하라고해조금실력이나은남중으로

선택한곳이었데….

한반깡패(그들은주머니에아이꾸찌라고하는뾰족한칼을갖고다녔다)들이패거리로때리는

매앞에는장사가없었다.

그저일주일에한두번은학교앞산인수봉공원꼭대기로

끌려가내얼굴에서눈물이던코피던흘러나와야폭행이끝나교실로들어올수있었다.

퉁퉁부어눈물젖었던얼굴을선생님은아는지모르는지그냥그렇게수업은진행되었고

감히선생님에게매맞았다고이를수도없었다고자질한순간부터죽음이라고생각했었기때문에.

중학교를졸업하고약2달을먹고노는데내키가대충15cm정도가커버린것이다165cm정도로자랐고

아버지께서네가우리집장남인데힘들어도고등학교는나와야되지않겠냐고하시는데,

가만히생각해보니극장앞에서구두나닦고냉차나팔면서도저히

내인생의꿈을묻을수는없었다.그때까지도내꿈은만화가였었으니….

아버지의권유에따라인천신흥동해광사밑에있는항도상업기술고등학교를찾아가

전형을하고중학교를졸업후야간고등학생이되었다.

이제부턴벌면서공부한다는생각으로열심히통학했다.

그리고급우와같이인천창영동에있는유도도장(상덕관)도다니면서….

하루일과가06;00에일어나유도장2km를뛰어가서한시간수련하고집으로뛰어와서

아침먹고9시에극장으로가

냉차장사시작하고동생이학교갔다돌아오는16;00까지장사하다교대하고

그렇게야간학교를하루도안빠지고3년을다녔다.

또한正拳단련한다며당시한국기계회사담장이콘크리트슬라브로되어있었는데

매일변소만가서앉으면

이벽을정권치기로쿵,쿵,쿵몇번씩을치며정권을단련했었다.

수용연대입소이야기를계속하기위하여중고등학교추억을되짚어보았다.

(중딩때노점좌판대에서막내동생과찍은사진

나는운동화를던지며안하무인인이넘을한바탕뒤집어놓을까?하고내심두주먹을불끈쥐고

이를부드득갈며

몇대맞으면끝나곘지하는공포심을떨치지못하고그넘에게다가갔다.안그랬다면빽구의

자존심이무너질것이니까…

그러나

그넘은눈도안뜨고누운자세로"조용히해라잠좀자자"라고작은소리로기세를한풀꺽었고,

내생각도한바탕

해보았자잠시후기상하면기간병으로부터당할일을생각하며움켜쥐었던두주먹을피고

조원들에게

"쉿"하라는싸인을보냈고그렇게쉬다가내무반에서6시기상을맞이하였다.

그렇게몇일을보내고…

2월2일마지막신검일

나의신체등급"特甲種"이것은바로일년전대전병무청에서국민병력자원신체검사시받은

신체등급이다

특갑종,갑종(현역입영대상)을종(제2국민병대상)병종(신체미달자)있었는데

나는갑종도아니고특갑종이었다이런걸자랑해야하나?

아이큐132신체등급특갑종으로현역입엽대상자라고스템프가찍힌병적기록카드를들고

안과검사끝나고마지막

청력검사.조그만손목시계가뒤에서양옆으로왔다갔다하며나는들리는쪽의손을올리고

내리고청력도OK^^*

그런데군의관이양쪽귀를들여다보더니다짜고짜로내따귀를때린다,

그러며하는말이"너이X끼어딜속여"하며또한대가날아와볼태기에닿았다

찰딱~~으메내볼테기뜨거워..

나는양쪽고막이터진상태였고그상태로는군대를못간다는것,

나는그자리에서눈물을흘리며군의관에게매달렸다.

듣는데전혀지장없으니제발군대를가게해달라고,나는군대를가야사는놈이고

형제가7명인데

맏형이보란듯이군대를다녀와야동생들이본받는다고…

나의진솔한마음을헤아린그신검군의관이약속을하란다.그약속은무슨일이있어도

귀아파서군생활못하거나

제대한다고하면절대용서안하겠다고…

나는한때왜그때그렇게군에가려고애썼을까?하고후회를하기도했었다.

아무튼최종신검장교가그자리에서기록카드에찍은합격판정은1乙種合格이라고

선명히찍혔다

그리고2월2일오전군번부여와함께논산훈련소제23연대16중대로배정을받았고

잠시후2.5톤트럭에올라타신병훈련소의배정된소속중대로이동하였다.

이제부터대한민국육군박문규의평탄치않은그러나보람있는군대생활이시작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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