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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시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모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여러 모로 인상적인 영화다. 우선 4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인터미션 포함 230분)이 놀랍고, 그 긴 시간을 사건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정교하게 교차편집해서 엮었다는 점도 그렇다. 여러 번 다시 봐도 지겹다는 느낌보다는 그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어지간히 훌륭한 영화도 두 번째 볼 때는 재미나 감동이 덜하기 마련인데 역시 걸작은 뭔가 다른 모양이다.

갱스터 영화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도 패션 참고서가 될만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굳이 일부러 주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것이 모자다. 영화는 주인공 누들스가 노인이 될 때까지 60여년의 세월을 그리고 있는데,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모자를 쓰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모자를 협찬한 브랜드를 따로 언급했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엔딩 크레딧. 모자를 Borsalino에서 제공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모피(fur)는 Fendi에서 제공했는데, 주로 여성복에 쓰였기 때문인지 영화를 몇 번이나 본 뒤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엔딩 크레딧의 한 장면. 모자를 Borsalino에서 제공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모피는 펜디(Fendi)에서, 보석은 불가리(Bvlgari가 아닌 Bulgari라고 썼다)에서 제공했는데, 주로 여성복에 쓰였기 때문인지 영화를 몇 번이나 본 뒤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국의 전통에서도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관례(冠禮)는 성인이 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서양에서도 모자를 쓴다는 것, 특히 중절모를 쓰는 것은 중류 이상의 어엿한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기호로 통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누들스 무리들은 밀수품 운반으로 제법 돈을 만지게 되자 먼저 좋은 옷을 맞춰 입는다. 땟물을 벗어버린 이들은 가장 어린 도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중절모를 썼다. 수트에 긴 코트를 맞춰 입고 어른 행세에 들떠서 마지막에는 저마다 중절모를 하나씩 집어들었을 것이다.

도미닉이 “누들스, 나 넘어졌어(Noodles, I Slipped)”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면서 누들스들의 운명은 전환점을 맞는다. 누들스가 감옥에 들어가면서 잠시의 어른 흉내도 끝나고 마는데, 감옥에 들어서는 누들스를 전송하는 장면에서 친구들은 수트를 벗고 예전의 조무래기로 돌아와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다. 뚱보 모(fat Moe)는 예외다. 이것은 뚱보네 집이 가게 유리벽에 다비드의 별을 그릴 만큼 유대교 전통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뚱보 모가 쓰고 있는 모자는 아마도 Kippah(정수리 부분만 덮는 유대교 신자들의 모자)인 것으로 보인다.

제법 돈을 만지며 어른 흉내를 내는 누들스 무리들(왼쪽)은 가장 어린 도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말쑥한 중절모를 쓰고 있다. 도미닉의 죽음으로 어른 놀이가 막을 내린 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이들은 다시 뉴스보이 캡을 썼다.

제법 돈을 만지며 어른 흉내를 내는 누들스 무리들(왼쪽)은 가장 어린 도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말쑥한 중절모를 쓰고 있다. 도미닉의 죽음으로 어른 놀이가 막을 내린 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이들은 다시 뉴스보이 캡을 썼다. 맨 왼쪽 뚱보 모는 제외.

세월이 흘러 출소하는 누들스를 마중나온 것은 맥스였다. 출감 장면에서 둘의 옷차림이 대조적이다. 장의사 업체(를 가장한 불법 비즈니스)를 차려 잘나가기 시작했던 맥스는 말쑥한 수트에 중절모를 썼고, 감옥에서 막 나온 누들스는 재킷에 넥타이까지는 구해서 걸쳤지만 머리에는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다. 출감 시점에서 20대 후반이었을 누들스에게 썩 어울리지는 않는 모자다.

누들스가 블루칼라였다면 이런 모자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lunchtime atop a skyscraper’와 같은 사진을 보면 건설노동자들이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다), 누들스는 상류층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블루칼라도 아니다. 동료들이 이 무렵부터 사업가 행세를 하며 이미 모두 중절모를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들스의 뉴스보이 캡은 감옥에서 막 나와 아직 옷을 갖추지 못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성년이 된 누들스가 중절모가 아닌 모자를 쓰고있는 것은 이 장면 뿐이다. 출감 이후 청년 시절에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 뉴욕에 다시 돌아온 노년에도 누들스는 중절모를 쓰고 나온다.

어린 시절, 출감 직후, 청년기, 노년기의 누들스(왼쪽부터). 청년 시절에 비해 노년의 누들스가 쓴 모자는 정수리 부분의 각이 비스듬해져 좀더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왼쪽 옆에는 깃털 장식이 있다.

어린 시절, 출감 직후, 청년기, 노년기의 누들스(왼쪽부터). 노년의 누들스가 쓴 모자는 청년기에 비해 정수리 부분의 각이 비스듬해 좀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왼쪽에 깃털 장식이 있다.

누들스의 출생연도는 영화에서 분명하지 않지만, 맥스(1905년생), 팻시/짝눈(1907년생)과 동년배이니 1900년대 초중반일 것이다. 출감 시점은 1933년(금주법 폐지 연도)이고, 뚱보의 술집으로 돌아온 노년은 “35년동안 생각해 봤는데”라는 대사를 감안하면 1960년대 후반이다. 남성복의 필수 규범으로서 모자가 존속했던 시기가 대략 1960년대까지이니, 이 영화는 ‘모자의 시대’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모자는 20세기 초반부터 2차대전 전후에 이르는 시기와 지금의 남성복을 구분짓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제는 가끔씩 액세서리처럼 모자를 쓰는 사람이 있을 뿐, 아무도 모자를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 Bernnard Roetzel의 ‘Gentleman-A Timeless Guide to Fashion’을 보면 모자는 1960년대까지 사회적 규범의 하나로 인식되다가 1970년대 들어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모자의 본질적 기능은 비, 먼지, 햇빛 등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1970년대 무렵부터는 굳이 모자가 아니어도 이런 효과를 보게 해주는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예컨대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 굳이 모자를 쓰고 빗속을 걷지 않아도 된다. 1950년대까지는 머리를 지금처럼 매일 감기 어려웠는지는 좀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헤어스타일도 다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모자를 쓰면 애써 만든 머리모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모자의 퇴장을 부채질한 것 같다.

1960년대까지 모자는 남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관습에 대한 반발 또한 ‘뭔가 다른 것’을 머리에 쓰는 것일지언정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구절은 이런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남자는 언제나 모자를 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자를 벗어야 할 때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