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5년 1월월

모자의 시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모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여러 모로 인상적인 영화다. 우선 4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인터미션 포함 230분)이 놀랍고, 그 긴 시간을 사건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정교하게 교차편집해서 엮었다는 점도 그렇다. 여러 번 다시 봐도 지겹다는 느낌보다는 그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어지간히 훌륭한 영화도 두 번째 볼 때는 재미나 감동이 덜하기 마련인데 역시 걸작은 뭔가 다른 모양이다.

갱스터 영화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도 패션 참고서가 될만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굳이 일부러 주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것이 모자다. 영화는 주인공 누들스가 노인이 될 때까지 60여년의 세월을 그리고 있는데,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모자를 쓰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모자를 협찬한 브랜드를 따로 언급했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엔딩 크레딧. 모자를 Borsalino에서 제공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모피(fur)는 Fendi에서 제공했는데, 주로 여성복에 쓰였기 때문인지 영화를 몇 번이나 본 뒤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엔딩 크레딧의 한 장면. 모자를 Borsalino에서 제공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모피는 펜디(Fendi)에서, 보석은 불가리(Bvlgari가 아닌 Bulgari라고 썼다)에서 제공했는데, 주로 여성복에 쓰였기 때문인지 영화를 몇 번이나 본 뒤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국의 전통에서도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관례(冠禮)는 성인이 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서양에서도 모자를 쓴다는 것, 특히 중절모를 쓰는 것은 중류 이상의 어엿한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기호로 통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누들스 무리들은 밀수품 운반으로 제법 돈을 만지게 되자 먼저 좋은 옷을 맞춰 입는다. 땟물을 벗어버린 이들은 가장 어린 도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중절모를 썼다. 수트에 긴 코트를 맞춰 입고 어른 행세에 들떠서 마지막에는 저마다 중절모를 하나씩 집어들었을 것이다.

도미닉이 “누들스, 나 넘어졌어(Noodles, I Slipped)”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면서 누들스들의 운명은 전환점을 맞는다. 누들스가 감옥에 들어가면서 잠시의 어른 흉내도 끝나고 마는데, 감옥에 들어서는 누들스를 전송하는 장면에서 친구들은 수트를 벗고 예전의 조무래기로 돌아와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다. 뚱보 모(fat Moe)는 예외다. 이것은 뚱보네 집이 가게 유리벽에 다비드의 별을 그릴 만큼 유대교 전통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뚱보 모가 쓰고 있는 모자는 아마도 Kippah(정수리 부분만 덮는 유대교 신자들의 모자)인 것으로 보인다.

제법 돈을 만지며 어른 흉내를 내는 누들스 무리들(왼쪽)은 가장 어린 도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말쑥한 중절모를 쓰고 있다. 도미닉의 죽음으로 어른 놀이가 막을 내린 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이들은 다시 뉴스보이 캡을 썼다.

제법 돈을 만지며 어른 흉내를 내는 누들스 무리들(왼쪽)은 가장 어린 도미닉을 제외하고 모두 말쑥한 중절모를 쓰고 있다. 도미닉의 죽음으로 어른 놀이가 막을 내린 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이들은 다시 뉴스보이 캡을 썼다. 맨 왼쪽 뚱보 모는 제외.

세월이 흘러 출소하는 누들스를 마중나온 것은 맥스였다. 출감 장면에서 둘의 옷차림이 대조적이다. 장의사 업체(를 가장한 불법 비즈니스)를 차려 잘나가기 시작했던 맥스는 말쑥한 수트에 중절모를 썼고, 감옥에서 막 나온 누들스는 재킷에 넥타이까지는 구해서 걸쳤지만 머리에는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다. 출감 시점에서 20대 후반이었을 누들스에게 썩 어울리지는 않는 모자다.

누들스가 블루칼라였다면 이런 모자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lunchtime atop a skyscraper’와 같은 사진을 보면 건설노동자들이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다), 누들스는 상류층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블루칼라도 아니다. 동료들이 이 무렵부터 사업가 행세를 하며 이미 모두 중절모를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들스의 뉴스보이 캡은 감옥에서 막 나와 아직 옷을 갖추지 못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성년이 된 누들스가 중절모가 아닌 모자를 쓰고있는 것은 이 장면 뿐이다. 출감 이후 청년 시절에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 뉴욕에 다시 돌아온 노년에도 누들스는 중절모를 쓰고 나온다.

어린 시절, 출감 직후, 청년기, 노년기의 누들스(왼쪽부터). 청년 시절에 비해 노년의 누들스가 쓴 모자는 정수리 부분의 각이 비스듬해져 좀더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왼쪽 옆에는 깃털 장식이 있다.

어린 시절, 출감 직후, 청년기, 노년기의 누들스(왼쪽부터). 노년의 누들스가 쓴 모자는 청년기에 비해 정수리 부분의 각이 비스듬해 좀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왼쪽에 깃털 장식이 있다.

누들스의 출생연도는 영화에서 분명하지 않지만, 맥스(1905년생), 팻시/짝눈(1907년생)과 동년배이니 1900년대 초중반일 것이다. 출감 시점은 1933년(금주법 폐지 연도)이고, 뚱보의 술집으로 돌아온 노년은 “35년동안 생각해 봤는데”라는 대사를 감안하면 1960년대 후반이다. 남성복의 필수 규범으로서 모자가 존속했던 시기가 대략 1960년대까지이니, 이 영화는 ‘모자의 시대’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모자는 20세기 초반부터 2차대전 전후에 이르는 시기와 지금의 남성복을 구분짓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제는 가끔씩 액세서리처럼 모자를 쓰는 사람이 있을 뿐, 아무도 모자를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 Bernnard Roetzel의 ‘Gentleman-A Timeless Guide to Fashion’을 보면 모자는 1960년대까지 사회적 규범의 하나로 인식되다가 1970년대 들어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모자의 본질적 기능은 비, 먼지, 햇빛 등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1970년대 무렵부터는 굳이 모자가 아니어도 이런 효과를 보게 해주는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예컨대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 굳이 모자를 쓰고 빗속을 걷지 않아도 된다. 1950년대까지는 머리를 지금처럼 매일 감기 어려웠는지는 좀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헤어스타일도 다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모자를 쓰면 애써 만든 머리모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모자의 퇴장을 부채질한 것 같다.

1960년대까지 모자는 남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관습에 대한 반발 또한 ‘뭔가 다른 것’을 머리에 쓰는 것일지언정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구절은 이런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남자는 언제나 모자를 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자를 벗어야 할 때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돌아와 방황하던 청춘들(‘택시 드라이버’와 ‘람보’의 M65 필드재킷)

‘택시 드라이버’ 말을 꺼낸 김에 좀더 생각을 해봤다.

나에게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나 반영웅(antihero)이라는 캐릭터 못지않게 의상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눈이 호강한다 할 만큼 압도적으로 멋지거나, 옷 입기에 참고할 만한 교과서 같아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트래비스 비클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의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꼼꼼하게 계산된 의상 연출이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하긴 어떤 영화는 안 그렇겠느냐마는.

우선 필드재킷 M65. 영화에서는 트래비스가 본격적인 행동으로 접어들면서 이 옷을 입기 시작하는데, 체구가 크지 않고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미군들의 외양과는 거리가 한참 먼 로버트 드 니로지만 생각보다 아주 잘 어울린다. (하긴 그런 외모 때문에, 광기에 물들어가는 트래비스의 모습이 더 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에서 보듯 M65는 1965년도에 나온 필드재킷이고, 우리 군에서 쓰는 말로는 야전용방상외피(野戰用防上外皮) 즉 ‘야상’이다. 이 옷이 나오는 영화가 전에는 없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M65라는 옷을 발견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M65는 대중문화의 여러 작품에 등장했고 심지어 빈 라덴도 이 옷을 입은 채로 매체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생각나는 장면이 많지는 않다.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이 ‘람보: 퍼스트 블러드'(1982)다. 갈수록 실망스러웠던 속편들과 달리 이 1편은 꽤 수작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서 실버스타 스탤론도 성조기 패치를 붙인 m65를입고 나온다. 어느 순간 겉옷은 벗어던지고 ‘난닝구’ 바람이 되어 있긴 하지만.

트래비스도 람보도, 전쟁에서 돌아와 사회에 쉽게 녹아들지 못하던 젊음들이었다. 트래비스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혼자 맞서려 했고, 람보는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과 달리 어느샌가 사람들로부터 사냥감처럼 쫓기는 신세가 됐다. 유약해보이는 트래비스가 몸으로 세상에 부딪쳐 부서져내릴 때 울퉁불퉁 근육질의 람보는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하였으나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는 차이는 있다.

아무튼 M65라는 옷은 전장에서 돌아온 그 시절의 청춘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사회에 대한 원망, 소외감, 울분, 공포의 기억, 그리고 전쟁터에 대한 향수(鄕愁)도 아주 조금은 섞인 기분으로 매일같이 걸치던 그런 옷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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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에는 군복이 하나 더 나오는데, 트래비스가 머리를 모호크(mohawk) 스타일로 깎고 M65 필드재킷을 걸치기 전에 입고 나오는 탱커 재킷(tanker jacket)이다. 이 옷은 ‘Jacket, Combat, Winter’로도 불리는 동계용 겉옷인데, 애초 전차병용으로 개발된 것이 인기를 끌면서 다른 병과로도 퍼져나간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일반 전투병용으로 먼저 실용성을 검증받은 이후 전차병용으로 개량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군별을 막론하고 군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는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호바스 상사나 퓨리(2014)의 ‘워대디’도 이 옷을 입고 나온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두 영화와 베트남전이 배경인 택시 드라이버의 설정상 시차가 20여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트래비스가 이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 고증상으로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공부를 더 해봐야겠다.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을 썼던 폴 슈레더(Paul Schrader)는 영화의 의상, 소품 등을 지난 2010년 텍사스 오스틴의 해리 랜섬 센터(Harry Ransom Center)에 기증했다고 한다. 기증품에 드 니로가 입었던 탱커재킷이 포함돼 있다. 슈레더가 기증하게 된 계기는 앞서 2006년 자신의 소장품을 이곳에 기증한 드 니로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슈레더와 드 니로 모두 택시 드라이버의 의상이나 소품 등을 기증한 셈이다. 그 덕에 랜섬 센터는 이후 해외에서 열린 ‘마틴 스콜세지’ 전시회에 소장품을 대여해줄 수 있었다. 이들의 콜렉션에 위에서 언급한 M65도 포함돼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사진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스텐실로 새겨넣은 듯한 이름과 'King Kong Company' 부대 패치가 들어간 탱커재킷.

아마도 스텐실로 새겨넣은 듯한 이름과 ‘King Kong Company’ 부대 패치가 들어간 탱커재킷 / Harry Ransom Center

슈레더가 기증한 탱커재킷은 보존상태가 좋고, 등에 새긴 ‘BICKLE. T’라는 이름이나 팔에 달린 ‘King Kong Company’와 같은 디테일들도 잘 남아 있다. 킹콩 패치는 밀리터리 룩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이런저런 곳에서 레플리카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고릴라의 표정을 오리지날에 가깝게 복원한 곳은 별로 많지 않다. 해리 랜섬 센터의 영화담당 큐레이터인 스티브 윌슨은 흥분한 킹콩의 표정은 주인공 내면의 분노를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부대 마크 디자인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려넣은 것은 아니란 얘기다.

택시 드라이버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 영화는 아니다. 트래비스도 군복만 입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면 드 니로가 출연한 ‘디어 헌터’도 본격 전쟁영화가 아니면서도 전쟁의 비인간성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가령 초반부에서 벳시에게 구애하던 무렵 입고 나오는 빨간색 코듀로이(아마도) 재킷도 트래비스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러나 끝내 그에게 이런 옷은 맞지 않을 운명이었던 것인지, 군복을 걸치고 머리를 밀어버린 나중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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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닦으면서

새 팀에 와서 일주일, 좀 긴장도 되고 신경도 쓰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구두를 꺼내 닦았다. 델리케이트 크림과 왁스만 쓰는 간단한 작업이다. 그래도 구두 코를 헝겊으로 문지르며 광택이 돌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구두를 닦으면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닌 모양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장면을 종종 본다. 우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가 생각난다. 처음엔 이 영화가 패션의 관점에서 언급된다면 필드재킷 ‘M65’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지금 더 생각나는 건 ‘사회의 쓰레기’를 쓸어버리기에 앞서 트래비스가 정성껏 부츠를 닦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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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의 심경에 결정적 변화가 오는 건 벳시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갔다가 퇴짜를 맞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트래비스는 밀매상에게서 총을 사들이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운다.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기 직전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이 있는데, 마른 꽃(아마도 벳시에게 주려던)을 세면대에 버리기, 부츠 닦기 등등이다.

그의 결심을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밀어버린 것이었다.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서도 연합군 병사들이 노르망디 상륙을 앞두고 머리를 이렇게 깎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머리 스타일이 용기를 북돋워준다고 믿는 어떤 공통의 코드가 있는 모양이다. 백인에 맞서 용맹하게 싸웠던 모히칸 족의 머리 모양이라서 그런 것인지? A특공대에서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B.A.가 마지막에 보여준 반전 역시 이 모히칸 헤어스타일이었다.

Band of Brothers 'D Day' 에피소드에서 리브갓이 동료들의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깎아주는 모습.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에는 리브갓 등이 1명당 15센트씩 받고 머리를 깎아 준 것으로 나온다. 오른쪽은 모히칸 머리를 한 트래비스.

Band of Brothers ‘D Day’ 에피소드에서 리브갓이 동료들의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깎아주는 모습.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에는 리브갓 등이 1명당 15센트씩 받고 머리를 깎아 준 것으로 나온다. 오른쪽은 모히칸 머리를 한 트래비스.

다시 구두 얘기로 돌아와 보면, 트래비스는 오른손에 헝겊을 말아 쥐고 구두약에 불을 붙여 녹여가며 신발을 닦는다. 영화에서 트래비스는 옷에 가상의 부대인 ‘King Kong Company’ 패치가 붙어있을 뿐 어느 군별(軍別)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이 장면을 보고 트래비스가 해병대 출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외국에는 있는 모양이다. 헝겊을 말아 쥐는 방식이나 구두약을 불로 녹이는 방법이 해병대 스타일이라는 것인데, 아무리 덕중의 덕이 양덕이라고는 해도 그걸 보고 진짜 알 수 있는지 약간 의심스럽긴 하다.

부츠는 그냥 신발이 아니고 대검을 꽂는 중요한 도구다. ‘거사’에 나서기 전 정성스레 부츠를 닦는 트래비스의 마음은 전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무기를 손질하는 병사와도 같았을 것이다.

얼마전 올레TV에 무료로 나와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도 주인공이 구두를 닦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장면이 나온다. 데이빗 핀처와 케빈 스페이시의 만남으로 시작 전부터 화제였던 이 드라마는 미 의회의 실력자 프랜시스 언더우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워싱턴 정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세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오바마 대통령도 팬이라니 리얼리티가 매우 뛰어난 모양이다.

프랜시스는 교육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교사 노조의 지도자인 친구와 등을 돌리게 된다. 둘은 TV 토론에도 나서는데, 노련한 달변가인 프랜시스는 승리를 자신하다가 한 방 먹고 만다.

낙심해 집으로 돌아온 프랜시스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머리 좀 식히겠다며 자리를 뜨는데, 이어지는 장면이 무릎에 구두를 끼고 열심히 닦는 모습이었다. 프랜시스는 평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총싸움 게임도 하고, 아내가 사다준 요상한 운동기구에서 땀도 흘리지만 그 순간에 택한 방법은 구두 닦기였다.

유력 정치인인 프랜시스는 의회에 드나드는 구두닦이 아저씨(진짜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는 물론 모른다)에게 구두 손질을 맡길 정도의 금전적 여유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저 순간에는 직접 구두를 닦았다. 이 장면에서 프랜시스는 검은 구두가 가득 꽂힌 신발장 앞에 앉아 있는데, 몇 켤레 꺼내서 한참 문지르는 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구두 닦기에는 왜 이런 효과가 있을까? 나름대로 생각해본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구두 닦기는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운동이나 집안 일로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며 이런저런 DIY, 정원 가꾸기처럼 요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많이 한다는 활동들도 따지고 보면 사무실 책상에서 잠시 떠나 몸을 쓰는 일이다.

그런데 구두 닦기는 저런 일들과 달리 같은 동작의 일정한 반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무 동작도 안 하거나, 불규칙한 동작을 하는 것에 비해 잡념을 쫓기에 유리하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작더라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비슷하게 구두 손질하는 장면이 나오는 다른 영화가 있었는지 떠올려보려는데 잘 생각이 안난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구두를 다 꺼내서 끈을 풀고 닦아봐야겠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브룩스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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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부끄러운 얘기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읽어 봤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소설은 다자키 쓰쿠루가 가사(假死) 상태를 넘나들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삶의 의욕을 회복하면서 다자키 쓰쿠루의 생활에 조금씩 변화가 온다. 이 대목에서 그는 ‘체중이 늘었고’, ‘옷을 사러 갔다.’

다자키 쓰쿠루는 옷을 사러 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어머니의 취향은 브룩스브라더스였다. 아마 감색 블레이저나 옥스포드 버튼다운 셔츠, ‘밀라노’핏 치노팬츠 따위를 샀을 것이다. 체격이 특별히 크지 않은데다 극단적으로 체중이 줄었다가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 다자키 쓰쿠루에게 맞는 치수의 옷이 일본 브룩스브라더스 매장에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취향으로 브룩스브라더스를 내세운 건 설득력이 있다. 어머니의 취향이 베르사체라면 너무 야하고, 휴고보스나 아르마니였다면 어딘가 모르게 속물같았을 것이다. 엔지니어드 가먼츠라고 하면 어머니가 갑자기 ‘패션 피플’로 느껴지고, 그렇다고 유니클로라고 하자니 다자키 쓰쿠루가 자라온 유복한 환경을 표현하기에는 약간 부족했을 듯싶다.

다자키 쓰쿠루는 색채가 없지만 완전히 무색 무취의 인간은 아니다. 수영으로 몸을 단련하고, 음악에 있어서도 문외한은 면했다. 철도와 역(驛)에 끌리는 취향도 일본적으로 ‘geek’한 데가 있다. 소설 곳곳에서 하루키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데, 패션에서는 브룩스브라더스라는 브랜드로 다자키 쓰쿠루라는 인물의 일면을 표현하고 있다.

브룩스브라더스라는 브랜드가 연상시키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모범생이다. 그러나 마냥 답답하기보다는 나름의 색깔이 있는 모범생이다. 각 부분의 패턴을 다른 색으로 만든 fun shirts나, 양쪽 다리의 색깔이 다른 fun pants 같은 옷들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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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책을 빌려주신 분이 있어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를 읽어본 적이 있고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어쩐지 하루키의 다른 글에서도 브룩스브라더스에 대한 언급을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루키 본인이 이 브랜드의 팬이라는 얘기도 왠지 들어본 것만 같고… 이 글을 본 한 선배의 말을 나중에 들어보니 실제로 여러 작품에서 여러 차례 브룩스브라더스가 등장한다고 한다.

브룩스브라더스는 믿음직스런 브랜드다. 옷의 디자인이 기본에 아주 충실하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간지남’까진 못 되더라도 중간은 갈 것 같은 느낌. 남성복의 어지간한 아이템은 양말, 속옷부터 턱시도까지 다 갖추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이건 어떤 아이템이든 브룩스브라더스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비슷한데, 반대로 브룩스브라더스에 없는 아이템이라면 어딜 가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브랜드 옷들과 매치하기 난감할 때가 있다는 점에서는 약간 아쉽기도 하다. 직선적이고 넉넉한 이른바 ‘미국식’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옷들과는 잘 안 어울릴 때가 있다. 예를 들면, PT01의 캐주얼 팬츠와 브룩스브라더스의 네이비 블레이저를 함께 소화할 자신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옷 하나만 놓고 보면 훌륭하지만 워드로브 안에서는 따로 놀게 되는 듯한 느낌이다. 곡선이 자연스럽고 슬림한 스타일보다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건 최근 한국 남성 패션의 트렌드가 이른바 ‘클래식’이라는 이름 아래 유럽(주로 이태리) 따라하기처럼 흘러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는, 제품만 놓고 보면 훌륭하지만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그렇게 바꾸기 전에는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지는 무인양품 옷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