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네……

나에겐오랜친구가하나있다.

우린내가사회에첫발을내밀던해에같은회사에서만났다.

그러니까남들처럼초등학교동창도아니요

여고때의단짝친구도아니요

대학에서만난친구는더더욱이나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수많은시간이지난지금에도

그니의이름을가만히뇌이거나

조용한그의모습을떠올려보면

저절로내입가에미소가괴고

그리움이절절이가는사람이다.

1972년처음만났을때에는어느정도의거리가있었다.

하지만서로의탐색전은한달도되지않았고

친구로서의단합이된다음부터는

어디든지붙어다녔다.

내가있는곳이면언제든지그가있었고

친구가가는곳엔항상내가그림자처럼따라다녔었다.

친구는고향이온양이라서

서울에서혼자자취를하고있었다.

나는친구집에서같이지내는때가많았다.

오랜자취생활로음식을곧잘하던친구가해주는밥을먹으면서

같이출근하고같이퇴근해서돌아다니고

그리고친구의집으로같이가서지냈다.

티샤스나잠바같은옷도

같은모양이지만색상만다른것을사서같이입고돌아다닐때도있었다.

친구가여름휴가를다른사람들처럼산이나바다로가지않고

어린동생들을데리고혼자농사를짓고있는어머니를생각하고

고향을찾아갈때도

나도같이휴가를내어그친구를따라온양엘몇번가보았을정도다.

나는그친구가그렇게좋았다.

내가이성에눈을뜨게되고

몇번남자에게채이거나

내가남자를차거나할때에도

그는언제나내곁에서나를지켜주었다.

그리고내가그런자유분방함속에서아프고성숙해져갈때에

그친구는오로지한남자만만나고있었다.

친구가데이트하러나가면난쫓아갈때가많았다.

그남자나내친구나다조용하고숫기가없었기에

나혼자서떠들고

나혼자서먹고마시고

그러다가중간에슬그머니사라져준적도많았다.

그둘이결혼하게된데까지는

이러한나의공로가많이들어있음을부정하면안될것이다.

내가미국에오고나서도여전히연락을주고받으며지냈는데

작년11월중순에우연히서울에가게되었다.

친구에게제일먼저이소식을알렸을때

잘됐다.그럼너오면김장해야지….

친구는무공해채소를짓고있다며

조그만밭을빌려서농사짓는법을3년째배우고있다고했다.

서울에도착한다음날

마침학교에강의가없다는오빠내외랑같이

용미리에있는친정아버지산소에가서인사를드린다음

친구밭이있다는벽제근처로찾아갔었다.

친구는완전히농부가다된차림이었다.

몸빼바지에갓달린모자에….

자기차의트렁크에서장화와장갑을꺼내어나에게주면서

너운좋다.네가미국에서이런일해보기나하겠니?

아주자랑스럽게말했다.

꽤넓은밭에빽빽하게심겨져있는배추들…..

아람차게속이들어차고

잎사귀에군데군데벌레가먹어구멍이뚫린배추를가리키면서

이거.농약을사용하지않아서그래.그런데맛은아주고소하단다.

농사가작년보다올해조금괜찮게되었어.

너고추가루가져갈래.내가농사지었는데.콩도있구…

나를남겨두고돌아가려는오빠의차에

친구가재빠른솜씨로몇포기를뽑아실려주면서말했다.

언니.맛있게담아드세요…..

세월이친구를붙임성있게만들었나보다.

바람이몹시부는11월어느날,

따뜻한햇빛이언덕배기밭의새파란배추에게쏟아지던날,

오후내내둘이서배추를다뽑아커다란비닐백에여러개나누어

친구차트렁크와뒤좌석에까지빽빽이실어서친구집으로갔다.

얘.너오자마자일시켜서미안하다.피곤하지?

난말야남편출근한다음에집에서이곳밭까지오다가

저만치서밭이보이기시작하면숨통이트이는것같단다.

내가농사에취미를붙이고나서는사는재미가더붙은것같아.

그날저녁퇴근하고돌아온친구남편과같이모두저녁을먹으러나갔다.

영희씨보기가너무힘들어요.자주나오면좋을텐데…

산사춘을같이나누어마시면서친구남편이말했다.

난영희씨만보면그때일이잊혀지지않고생각나요.

뭐가요

.있잖아요.옛날에장충동에이사람살때

일요일저녁이었는가……

영희씨가집에서입던옷그대로입고왔다면서고무신신고왔잖아요

나그때영희씨다시봤어요.

그용기와열정이지금도남아있는지모르겠네요.

…그때…친구가갑자기너무보고싶어져서

그날친구가데이트있다는것을알면서도

친구의집을찾아갔었는데

저녁에돌아오던두사람이그런나의모습을보곤기가막혀하던모습.

그때가꼭30년전이다.

그렇다고우리사이를이상하게보지말았음한다.

우린정말순수한우정,이세상에서둘도없는친한친구일뿐이다.

우린모두하하웃었다.

세월이훌쩍사라진것같은데

미국이모가너무좋다며자꾸만내게미소를보내는대학생인친구딸은

꼭옛날의친구모습그대로이다.

그날저녁친구랑나란히누워

우린밤이새도록이야기를나누었다.

친구가말했다.

난앞으로농사를지으면서살고싶단다.

남편이대학교를졸업하고들어간이회사에서

평사원으로부터시작해서지금은월급사장으로까지오르긴했지만

그는실제로70살먹은노인처럼가슴속이너무황폐해있어.

그래서너무늦기전에적당한곳에자리를잡아

이제는남편을쉬게하고싶단다.

다행히그도같은생각이야.그래서주말농장에도다니고있단다.

내가농사를배우는것도그런이유에서야.

아들하나,딸하나다컸으니지들이알아서할거구

그저우리둘이서채마밭일구면서살고싶단다……

그친구가춘천의암댐근처에

주택이딸린1200평정도의밭을구입했다는소식을어저께받았다.

.잘됐네.그집에내방도있는거니?

나도노후엔그곳에가서같이살고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