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 녹화한 날입니다.

지난토요일가까운친구가’섬유미술전’을열었습니다.

여러종류의실크천으로만든작품들앞에서한동안생각에빠졌습니다.

이렇게천을여러모양으로잘라서작품을만들듯이,우리네들도인생이란무색보자기에다

자기만의색깔을칠하면서,자기만의형태를만들면서살고있지않을까…하는생각이스쳤습니다.

시카고에는교포들을상대로하는한미TV방송국이하나있습니다.

1989년에생겼고,하루24시간가동되고있지만,토요일과일요일에는몇시간을떼어서인도,폴란드,스페인등의

나라에방송시간을대여하고있습니다.

저는3주전에방송국기자로부터<독서세계>란프로그램을맡아보라는제의를받았습니다.

세상에나….이나이많은촌부에게무슨일이생기는것일까요?

먼저지난이야기를풀어놓아야할것같습니다.

아무리생각해보아도이것은완전히조블때문에생긴일이나다름없다고생각하기때문입니다.

저는지난6월초에조선일보블러그를열어놓고는한달반동안아무것도할수없었습니다.

어떻게해야하는지확신도안서고,자신도없고,글도쓸줄모르고…

가끔블러그에들어가서이방저방다녀보면,기가막히게잘써져있는글에다좋은음악들이분위기있게팡팡흘러

나오고,멋들어지게올려진사진을감탄하면서들여다보고…이렇게읽고,감상하고,즐기다가어느순간부터는저도

다른사람들처럼한번해보고싶다는생각이슬금슬금들기시작했습니다.

하지만글이라고는평생에편지정도만써본실력이라서고민이여간되는것이아니었습니다.

그런데그때마침신문에기사가하나났습니다.참.이곳에는중앙일보와한국일보가있답니다.

서울의본국지에다이곳의뉴스를추가로실어서구독하는각집집마다아침에배달하여주고있습니다.

‘시카고한인사회에문예부흥을일으키고싶다.’라는제목으로난기사였는데,문학평론가이면서노스이스턴

대학교에서한국문학을가르키고있는M교수가강사로되어있었습니다.

7월14일부터9월15일까지,매주목요일오후7시30분부터9시까지.

수강장소도집에서겨우10분정도의거리였습니다.

옳지,그래이거야.이거라도한번들어보면무슨도움이되지않을까…하고10주코스인’문예창작교실’을수강하게

되었습니다.수필,시,소설등에대해서전체요약을하여주는정도였지만기초가없던저한테는커다란도움이

되었던공부였습니다.

첫시간에수필에대해서가르키면서’시카고의여름’이란제목으로하나씩수필를써오라는숙제를주었습니다.

저는이때처음으로머리를짜내면서글을썼습니다.이틀만에써서숙제를내고온날저녁에제블러그에슬며시

올렸습니다.그런데글쎄…그글이다음날인기글에올라가있질않겠어요?

생각해보세요.이것정말보통일이아니었답니다.저한테는…

처음으로써서올린글이인기글에올라간것은미약한저에게커다란힘이되었습니다.

그래서그다음부터는용기를갖고글을하나씩써서올렸습니다.보통서너편써서올리면한번정도는꼭인기글로

띄어주더군요.아.인기글…별거아니네.나처럼수준낮은글이다올라가다니..하고혼자말을해본적도있었습니다.

(그렇게생각하고나서부터는인기글하고는거리가멉니다.근데인기글아님어때요?저도이제배짱이늘었습니다.)

블러그이야기가나왔으니까한마디만더하겠습니다.그렇게글을올리다보니까제방에찾아와서댓글을남기는

이웃들,또제가찾아가서댓글을남기기도하면서이웃들을하나둘가깝게알게되었습니다.

이제는친하게된이웃들하고는매일인사를나누지않으면안부가많이궁금합니다.또저개인적으로는이블러그를

하면서저의정신건강에많은도움이되었다면동감이되실련지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제가이방송이야기를블러그에올렸을때여러이웃들이찾아와서격려하여주고용기를주었습니다.

한번잘해보라고….

사실이웃님들하고는얼굴도모르면서단지올리는글을읽고나눔으로서서로의성격내지품어나오는향기를맡을

정도인상태에서서로를위해서아낌없는격려를한다는것은조블의힘인것같습니다.

아무튼이렇게해서그’문예창작교실’이끝났습니다.10명의수강생들이하는마지막쫑파티에생각하지도않았던

한국TV방송국기자가왔습니다.교포인구가10만명정도가된다고는하지만아무래도좁은시카고이니까뉴스

거리를찾아서오질않았나싶기도합니다.

그때몇사람인터뷰를하게되었는데저보고자꾸하라는바람에할수없이,정말가르켜준분의얼굴을생각해서

응하였습니다.지난번詩에대한강의를하는시간에는마침서울에서오신성기조시인께서강의를하였는데,

그때도방송국에서나와서취재를하였고,또인터뷰가있었는데전,그때그냥집으로내뺐거든요.

어떻게해서수강을하게되었는가?수강을받고난소감은어떤가?하는질문에전혀준비가안된상태에서어떻게

대답을하였는지도모르겠더라구요.인터뷰가끝난다음에기자가,

"말씀을아주잘하시네요.내일저녁9시30분뉴스시간에나갈겁니다."

하였는데정작저는그뉴스를보지못했습니다.

그리고나서일주일정도있다가방송국기자한테서연락이온것입니다.

<독서세계>를하면아주잘할것같으니까한번해보라고말입니다.현재두사람이하고있는데그중에한명이

건강상의이유로더이상할수없는상황이라고말하였습니다.

이프로그램은제가어떠한장르의책이든지간에책을선택하여서읽고난다음에그책에대해서소개를하여주는

것입니다.책에대한연구나비평이아니고간단한소개정도에서끝나면된다고하더군요.

소요되는시간은5분정도이지만원고는제가써야한답니다.

샘플비디오를한번구해서보았더니처음부터끝까지말하고있는사람의얼굴만비쳐주고있더군요.

허..거참..(주름살많은제얼굴어떡하라구…)

결국오늘10월31일오후에첫방송녹화를하였습니다.

그런데하고보니까이것은영제체질이아닌것을깨달았습니다.화면에보이는제원고를말하는것처럼쭈욱읽는

것은하나도어렵지않지만,무엇이든지한번하는것은완벽하게하려고하는제성격으로보아서는이러다간스스로

스트레스를많이받을것같은생각이들었기때문입니다.대강대강하는스타일이아니라서요.

녹화가끝난후에기자는처음녹화하는것에비해서아주잘했다고는하지만,아무래도시간을두고한번더신중히

생각해보아야될것같습니다.

오늘밤만지나면11월입니다.

방송국에서돌아오는길에있던가로수들의노오랗게물이든나뭇잎들이바람에흩날리는것을보니까

이곳시카고에도곧초겨울이올것입니다.

그나저나올해는개인적으로변화가많았던해인것같습니다.

4월부터산행을시작하였고,블러그에다뒤늦게글을쓰는재미에푹빠지게되었고,블러그에서친하게된이웃들과

인사를나누는것도이제는삶의일부분이되어가고,그블러그를잘꾸려가기위하여수강한덕분에방송에도나가고,

현재제가갖고있는직업은항상제마음에들어서늘신나게일하고,지난9월부터갑자기성당에서하는토요한글

학교에나가게되어아이들과같이지내고(ㅋㅋ생각지도않은한글학교때문에주머니가두둑해집니다.)…

바쁘면서도재미있게제생활을꾸려가고있는것같지요?

아직은건강하니까할수있을때까지는더열심히뛰어볼려고합니다.

그리고가끔씩이렇게전혀각본에도없는사건들로인하여인생은살만한것인지도모르겠습니다.

SteveRaiman-MoonlightEc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