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가는 길

언제부터갈대는속으로

조용히울고있었다

그런어느밤이었을것이다.갈대는

그의온몸이흔들리고있는것을알았다.

바람도달빛도아닌것

갈대는저를흔드는것이제조용한울음인것을

까맣게몰랐다

-산다는것은속으로이렇게

조용히울고있는것이란것을

그는몰랐다.

갈대/신경림

우리는무엇이이리바쁜가?내머리속의오늘은왜이리복잡한가?

나는누구이고,어디에있는가?

이게아닌데,이게아닌데….여기까지밀려온세월은또무엇인가?

언제한번이라도나자신을조용히들여다보며지나온삶을뒤적여본적이있었던가?

외로워서,외로운내가외로운나에게눈물을흘려주었던일이그언제였던가.

허리굽혀신발끈을매는이아침,아…

나도,살다가,때로,조용한갈대가되어울어보고싶은것이다.-김용택-

어린소녀가보입니다.

단발머리의그아이는한대여섯살쯤되어보이는듯합니다.

산동네의어기적거리게지어놓은집뜰에서그소녀는울고있습니다.

그소녀의아버지와어머니는소녀를달래고…얼르고있는중입니다.

그러나소녀는조금전에아버지가숫돌에다작고기다란칼끝을갈고있는것을보았었고,

그칼로자기의목뒤의종기를째야한다는말을들으면서그저울고있습니다.

마침그때삶은옥수수를다라에이고팔러다니는아주머니가지나갑니다.

그녀의어머니는은근히말합니다.

너그것째면옥수수사줄께….

소녀는솔깃해집니다.

그래서가만히고개를끄덕이며어머니의무릎에머리를파묻습니다.

어머니의두손이소녀의머리와목을잡고아버지는소독한칼끝으로종기의한끝을찌릅니다.

아픔보다는두려움에울기만하던소녀는어머니의들뜬목소리를듣습니다.

아이고…야야…고름이한종기나나왔다…

소녀는얼른두손을내밀고는

엄마…옥수수줘…하고소리칩니다.

나는나의어린시절을생각하면늘이그림이먼저떠오릅니다.

벌써오십여년이다되어진그그림이…

나는한손으로눈물을닦아내면서다른한손에든옥수수를다먹었었습니다.

그당시를떠올리면지금도그때의그분위기까지선명히기억할수있습니다.

그옛날…병원에도가지않고주먹만하게부푼종기도집에서해결하던때…

삶은옥수수하나로아픔을바꾸어먹었던때…가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기억은…잊히지않는기억은누구에게나있을것입니다

한장의사진을보면서도

지난추억에젖으면서가슴을쓸어내릴때도있을것입니다.

오늘아침에왜이그림이떠올랐는지모르겠습니다.

아마도오늘은바람이…휘익지나가고있는날인가봅니다.

그렇게바쁘고열정적으로하루하루를살아가고있음에도

이렇듯불현듯이침잠해질때가있습니다.

나자신을조용히들여다보며지나온삶을돌이켜볼때마다

이렇게바람이붑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니까…인간이니까..이럴때도있을것입니다.

지금도…바람이내가슴을훍고지나갑니다.

어쩌면살아가는길…그길자체가바람인지도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