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魂에 불을 놓아

촘촘히살이박힌빗으로아침마다머리를빗듯

내헝클어진꿈들을모두일으켜빗질하고싶다

허연고뇌의먼지도말끔히털어내는시간

명주실처럼탄탄하고질긴내사랑의올을

가지런히빗겨땋아놓고싶다

그러나가늘게날이선빗으로도

빗질할수없는아픔

벗겨도말안듣는아픔은어떻게해야할까

머리를빗듯/이해인

이별보다더아름다운슬픔은없다

수없이망설이며사랑하는것들을떠나보낸뒤

하얀라이락향기로피어오르는나의눈물

이별은야속하게손을내밀지만

서늘한눈의자비를베풀며떠나려한다

철없는나를거울앞에세워

새옷을입혀놓고돌아서는친구

내가비로소유순한영혼으로

당신께돌아와문을여는자유

사무치던그리움은새가되리라

훨훨날으고싶은기도와뉘위침의産室

이별보다더후련한비애는없다

아름다운슬픔/이해인

외출했다돌아온나의빈방에

흰무명옷을빨아입은정갈한모습

말없이날기다려준고운눈매의너

손짓하지않아도밤낮내방을지키며깨어사는손님인가

천정에도,벽에도,문에도숨어있다가슴으로파고드네

죽고나면또어느누가이나무침대위에쉬게될까

지금은내가이자리에누워너를만난다

들을수록정다운카랑카랑한목소리뽑아네가노래를하면

나의방은신기한바닷속궁전이된다

지느러미하늘대는한마리물고기처럼

나는짜디짠밤의물을마신다

깨어사는고독/이해인

사랑한다는말은가시덤불속에핀하얀찔레꽃의한숨같은것

내가당신을사랑한다는말은

한자락바람에도문득흔들리는나뭇가지

당신이나를사랑한다는말은

무수한별들을한꺼번에쏟아내는거대한밤하늘이다

어둠속에서도훤히얼굴이빛나고

절망속에서도키가크는한마디의말

얼마나놀랍고황홀한고백인가

우리가서로사랑한다는말은

황홀한고백/이해인

언제쯤당신앞에꽃으로피겠습니까

불고싶은대로부시는노을빛바람이여

봉오리로맺혀있던갑갑한이아픔이

소리없이터지도록그타는눈길과숨결을주십시오

기다림에초조한내비밀스런가슴을열어놓고싶습니다

나의가느다란꽃술의가느다란슬픔을

이해하는은총의바람이여

당신앞에<네>라고대답하는나의목소리는

언제나떨리는3月입니다

고요히내魂에불을놓아

꽃으로피워내는뜨거운바람이여

내魂에불을놓아/이해인

책장에꽂혀있던이시집을뜬금없이꺼내서

주르륵책갈피를펼쳐보는데

무언가툭…떨어졌습니다.

아…그것은서울에있는친구가이시집을저한테항공편으로보내주면서

써보낸편지였습니다.

참이상하지요?

편지의날짜가1986.6.24라고쓰여있는데도

만년필로또박또박써내려간글씨가

바로금방쓴것처럼전혀퇴색하지도않고아주선명하거든요.

문득친구가그리워지고보고프네요.

여고때단짝으로붙어다니던친구였거든요.

지금…어떤모습으로어떻게지내고있을련지…

이해인수녀님의맑고고운詩를대하면서

늘갸날프기만하던…친구가

이밤에몹씨생각이납니다.

사방은점점사위어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