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물오른 나무가지처럼…

오늘은하루종일비가내리다가천둥이치기도하고그러다가개이는듯하더니또비가내리는날씨였답니다.

날씨가이러니점심시간에는시원한국물을먹으러가자고의견을모은직원몇명이모여서

이곳에서젤로잘한다는월남국수집에갈려고밖으로나왔을때는

한차례비가쏟아지고난후에얼굴을삐죽이내민태양빛으로온통모든것들이반짝반짝거리고있었습니다.

달리는차안에서바라보니평상시에도깨끗한길이더욱깔끔하게보이고

길가에가로수처럼서있는PaloVerde와PaloBrea나무에는짙은노란색의꽃들이피어있는데

햇빛에얼마나찬란하게빛이나는지….그나무아래로는비바람에떨어진노오란꽃들이

바람따라뭉치로길바닥위에서이리저리몰려다니고있었습니다.

아…이렇게봄이와있네요.

이곳은일년열두달이한여름만빼놓고는비스무리한기후라고는하지만

역시봄이되니까나무마다꽃을앞다투어피우고나무가지도더욱파릇하고나무잎도새파랗습니다.

어떤나무들은나무가지에잔뜩물이올라서연녹색의물감을뿌려놓은듯이보입니다.

유난히나무와꽃을좋아하는저는길을걸어가다가도

꽃나무가까이로다가서서코를나무에가까이들이밀고는향을맡기를좋아합니다.

그러면말할수없이고혹한향기가잠시나를아득하게밀어넣기도합니다.

자주는아니지만사무실에서일을하다가잠시브레이크타임을가질때

친구하고같이나와서다정하게빌딩주위의잔디밭길을걸으면

나무숲으로부터나오는진한향기가코끝을자극합니다.

더욱이잔디를깍아준다음에나는향은매우감미롭기까지합니다.

내가새파란하늘을올려다보면서행복해하는표정을지으면친구는말합니다.

"디아…디아는이곳에잘왔어…시카고보다얼마나날씨가좋아?잘왔다고생각하지?그지?"

하고짖궂게말합니다.

한낮의뜨거운햇살을즐기면서나무향을맡으며한바퀴를돌고나면정신이아주맑아집니다.

그리고사무실에들어와서는새로프레쉬한커피를내려가지고와서일을시작합니다.

그러면늘하는일이건만컴을보는눈이한층맑아진듯…하거든요.

이렇게봄이오면어김없이떠오르는시가있습니다.

골짜기와산위에높이떠도는

구름처럼외로이헤매다니다

나는문득떼지어활짝펴있는

황금빛수선화를보았었나니

호숫가줄지어선나무아래서

미풍에한들한들춤을추누나

은하에서반짝이며깜박거리는

별들처럼총총히연달아서서

수선화는샛강기슭가장자리에

끝없이줄지어서있었나니!

흥겨워춤추는꽃송이들은

천송인지만송인지끝이없구나

그옆에서물살도춤을추지만

수선화의흥보다야나을것이랴

이토록즐거운무리에어울릴때

시인의유쾌함은더해지나니

나는그저바라보고또바라볼뿐

내가정말얻은것을알지못했다

하염없이있거나시름에잠겨

나홀로자리에누워있을때

내마음에그모습떠오르나니

이는바로고독의축복아니랴

그럴때면내마음은기쁨에넘쳐

수선화와더불어춤을추노라

수선화/월리엄워즈워드

제가여고때부터애송하던이시를꼭한번둘째딸에게써서보낸적이있었습니다.

그러니까지금부터약8년전쯤,

고등학교를졸업하자마자여군에입대하여사우스케롤라이나에서훈련을받고있던딸에게

이시를영어로적어서보내주었었는데딸한테답장이왔었습니다.

3살때부터미국생활을시작한딸은비록완벽한한글은아니었지만소리나는대로한글로또박또박썼습니다.

엄마가보내준시가참좋아서가끔들여다보면서읽어요….엄마고마워..엄마사랑해…

나무에물이오르고…그래서연두빛이곱게하늘아래서뽐내고있을때면

그당시의둘째딸을떠올리면서가슴을쓸어내리며가만한한숨을살포시내려놓기도합니다.

결국다리가삐고부러지는사고를두번겪고서는8개월간의훈련을접긴하였지만…

그리고바로주립대학교에들어가서교육학을전공하였습니다.

스칼라쉽받고…일을하면서공부를하여스스로의학비를충당하면서우등생으로졸업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자기의꿈은국민학교선생님이되는것이라고하더니…지금은자기의꿈대로되었지요.

마침내자기의길을그렇게걸어가면서어른이되어가고있는아이.

딸아이의자라는과정을돌이켜보니인생이란게나무같다는생각이듭니다.

한자리에서서온갖풍상을다겪잖아요…

한겨우내내나목으로모진눈바람을받아내고있다가

봄이되면나무가지마다물이올라서연녹색의잎을틔우고…꽃을피우고…
때로는벌레에시달리기도하면서..새들에게밑둥을쪼이기도하면서….

그리곤결국에는열매를맺지요.

사랑의열매…인생의열매…

하루종일오락가락하던비가조금전부터다시내리기시작하였습니다.

책상바로옆의유리창으로스치며떨어지는빗방울소리가후두둑…납니다.

아마도내일은더욱나무가지에물이올라있을것입니다.

아니…내안에도나무처럼물이차올라있을지도모릅니다.

그리움의물…사랑의물…생명의물이…

나무가지에물이차오르면더욱푸르런잎을내고꽃을피우듯이

내안에가득찬물로나도더욱깊어진사람이될지도모릅니다.

봄이깊어지면

온세상에는꽃들의소리없는함성으로가득하겠지요?

아직도세찬빗줄기가창가를두드리고있는깊은밤입니다….

-사진은작년4월초에시카고보타닠가든에서찍은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