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낮잠>을 읽고…

안내등이늘어선요양원의복도가살아온세월처럼길고아득하다.

정년퇴직을하고요양원에들어온지삼년이된주인공.

노인전문치료기관,이라고해도일반양로원을갈수없는노인들이

그저간호를받으며여생을보내는곳인요양원.

대개가,그래서질환을앓고있다.

중풍과치매가많고,나처럼심장이좋지않거나당뇨가있거나…

혹은멀쩡하지만가정형편이어려운노인들이죽음을기다리는곳이다.

오년전아내가자궁암으로죽었을때도,

이런곳에서여생을보내게될줄은정말몰랐다.

나는무언가…그래도…그랬다.

다부질없는생각이었다.

부질없이평생을살고,부질없이죽음을기다린다.(P253에서발췌)

어떤무언가가내삶에남았을거라믿어왔다.

여유가있고비로소자신의삶을살아가는,그런노후….

퇴직을하고한동안그런삶을산다는착각에빠졌었다.

데생을배우기도했고,기원을오가고,아주잠깐철학강의를듣기도했다.

그리고곧,걷잡을수없는무력감이밀려들었다.

할일없는인간이되었다는자괴감,쓸모없는인간이되었다는허무함,

길고,시들고,말라가는시간의악취…얼마나놀랐는지모른다.

다시일을할수있다면얼마나좋을까,오가는직장인들을바라보는스스로의진심에나는좌절했었다.

그토록지긋지긋했던그삶이,결국내가원하는삶이었다니.

언젠가퇴직을하면,하는상상으로삼십삼년의직장생활을견뎌내지않았던가.

내삶은과연무엇이었을까.삶이란….무엇일까.(P254에서발췌)

자욱한노을,자욱한어둠…자욱한인생.

시작도끝도알수없는그자욱함속에,그러나아직은두발을담그고서있었다.

경솔한결정이었을까,훗날아이들의원망을사지나않을까고심했으나후회는없다.

평생을희생해왔다.

내게도한번쯤은살고싶은삶을살권리가있는것이다.

나는,살아있다.

(P281에서발췌…같은요양원에서만난첫사랑-그녀역시치매에걸려있다-와결혼하기로결정하면서…)

요새는자꾸낮잠이온다.

오늘도밤잠을자긴다글렀군,이선의손등을토닥거리며나는실없이미소를흘린다.

이선은더욱천진해졌고,나도조금은…천진해졌다.

안그런가소년?그런목소리로온몸을쓰다듬는듯한봄볕이다.나는결국눈을감는다.

이보세요,이렇게훤한데잠을자면어떡해요?

이선의목소리가들려온다.아이참우스워서…이보세요?눈을뜨지않아도그녀의미소를볼수있다.

그눈동자입술이보이는듯,하다.아버지…일어나요.예?이선의손이어깨를흔든다.

아주잠깐,그래서눈을떳다다시감았다.잠깐본세상이너무나눈부셨다.아름답다.(P285에서발췌)

작품집에실려있는총평을적어본다.

노년의삶에어린사랑과회한의심경을섬세하게묘사한작품

주인공은삼년째요양원에서노년을보내고있다.젊은시절의삶은이제아득히멀게만느껴진다.

오년전죽은아내를회상하면서자신의삶을되돌아보지만허망함을떨칠수가없다.

자궁암으로아내가죽고아들딸들이상속문제로갈등을일으키자주인공은주변을정리하고

요양원에몸을맡긴것이다.그런데뜻밖에도요양원으로학창시절짝사랑했던여인이들어온다.

그녀는퇴행성치매에걸려가족들과떨어진상태다.하지만그녀는아들의사업실패로더이상

요양원생활을할수없게된다.그사정을알게된주인공은그녀의아들에게자신이모든비용을

대겠다고한다.그리고그녀에게옛날의기억을찾아주려고애를쓴다.

어느오후그는그녀의곁에앉아그녀가흥얼대는노랫소리를듣는다.

따스한봄볕의감촉에그는눈을감는다.

<낮잠>은치매요얀원의광경속에노인문제를아프게다루며,노년의삶에어려있는사랑과회한의

심경을섬세하게묘사해놓았다.담담하게펼쳐지는이야기와사실적이고절제된심리묘사가매력을

느끼게한다.

2008년제32회이상문학상작품집을다읽었다.

8개의단편집이수록되어있었는데정작내마음을흔들도록파고들었던작품은,

대상수상작인<사랑을믿다>가아니고우수작으로맨꽁무니에실려있는

박민규의<낮잠>이었다.

인생이란무엇일까,

사랑이란무엇일까….를깊게생각하게한작품이었다.

그들의삶이낯설지않다.

요실금으로기줘귀를차고요양원에서살아야만하는주인공.

퇴행성치매로대변을가리지도못하는주인공의첫사랑.

한번쯤은살고싶은삶을살권리를찾는주인공이야말로인생의참맛을아는사람이다.

그들만의세계에있는그들은행복해보였다.

그리고….

그것이그들만이아닌,

곧나에게도찾아올지도모를나의삶이될지도모르기에…가슴이저리도록나또한회한에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