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깊은 슬픔>과 석류나무

두달전에조그마한석류나무한그루를앞뜰에심었었는데,

엊그제꽃한송이가피어났습니다.

처음그꽃을발견하곤뛸듯이기쁜마음이잔잔하게마음안으로퍼져나갔었지요.

전혀올해에는꽃을기대하지않았었는데…^^

환희가넘쳐나는마음을아세요?

바로그런마음으로아침저녁으로그꽃을바라보았답니다.

그런데오늘저녁집에돌아와서보니채활짝펴보지도못하고

그만뜨거운햇살에시들시들꽃이말라버렸습니다.

어찌나마음이아프던지요….

여러종류의과일나무중에왜유독석류나무를심고싶었는지모르겠어요.

그것은어쩌면오래전에읽었던한소설에서연유했었을것입니다.

문두드리는소리가들린건은서가석류를밟아버린발을씻고있을때다.

석류를밟아버린발바닥에는석류향이묻어있었다.

씻는다면서사실은그향을맡고있었다…..

신경숙의<깊은슬픔>중소제목’석류를밟다’의첫페이지,첫줄에서.

책이처음출판되었던때가1994년이었을것입니다.

그때이책을읽었었는데다읽고난후에내책을누군가에게빌려주고는돌려받지못하였었습니다.

그러다지난번서점에서이책을사서2번째로다시읽었었지요.

이번에는더욱천천히…더욱깊숙한마음으로…더욱애뜻한마음으로.

프롤로그에쓰여있는흑인시인랭스턴휴즈의재즈풍의시가좋았습니다.

새벽2시,홀로

강으로내려가본일이있는가

강가에앉아

버림받은기분에젖은일이있는가

어머니에대해생각해본일이있는가

이미죽은어머니,신이여축복하소서

연인에대해생각해본일이있는가

그여자나지말았었기를바란일이있는가

할렘강으로의나들이

새벽두시

한밤중나홀로

하느님,나죽고만싶어-

하지만나죽은들누가서운해할까

그리고에필로그에쓰여있는신경숙에의하여그려진은서라는여자의독백도…^^

나,인생에대해너무욕심을냈구나.

한가지것에마음붙이고그속으로깊게들어가살고싶었지.

그것에의해보호를받고싶었지.

내마음이가는저이와내가한사람이라고느끼며살고싶었어.

늘그러지못해서무서웠다.그무서움을디디며그래도날들을보낼수있었던건

그럴수있을거란믿음이있어서였지.

하지만이제알겠어.

그건내가인생에너무욕심을낸거였어….

그여자,육층과아파트화단사이에서꽃잎처럼가벼이떠도는순간,

나는가슴이터질듯한통증을느꼈었습니다.

나,그들을만나불행했다.

그리고그불행으로그시절을견뎠다.

그렇습니다.

어쩌면그모든것들을더욱깊숙이안고싶어서

석류나무를내앞뜰에다심었을것입니다.

이제아가인이나무가오륙년이지나면커다란나무가될수있을것입니다.

그때쯤저는석류나무그늘아래에앉아서

은서를생각해낼수있을지모르겠습니다.

은은한석류꽃향의난무속에서

아스라한내기억의창고속에표백되어있는것들과함께말입니다.

내가슴을수없이쓸어내렸던불면의밤도기억할수있을지모르겠습니다.

석류몇알을두고도열엄두를못내었다

뒤늦게석류를쪼갠다

도무지열리지않는門처럼

앙다문이빨로꽉찬,

핏빛울음이터지기직전의

네마음과도같은

석류를

그굳은껍질을벗기며

나는보이지않는너를향해중얼거린다

입을열어봐

내입속의말을줄게

새의혀처럼보이지않는말을

그러니입을열어봐

조금은쓰기도하고붉기도한너의울음이

내혀를적시도록

뒤늦게,그러나너무늦지는않게

석류/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