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생生은혼자가는길,

혼자만이걷고걸어서깨달아야만하는등산로같은것인지도모른다.

그건눈보라와암벽과싸워서무엇보다자기앞에놓인시간과싸워서

각자가가야만하는,절대절명의고독한길.

2000년11월중순…여행을떠나기전인일년전만해도하느님이나교회라는말에낯을찌뿌렸다는

작가공지영이우연한계기로유럽의여러수도원여행을다녀와서펴낸책인<수도원기행>

한달동안유럽의수도원을떠돌면서많은사람들을만나참으로귀한도움을받았다.

그림엽서처럼아름다운길을지나다니면서그러나내가얻은것은풍경에의기억은아니었다.

그것은다향한형태의삶들이존재하고있으며

그들이제각기제궤도를최선을다해돌고있을때세상은혹여살만한곳일수도있겠다는희망이었다.

-작가의후기에서-

요며칠동안감당하기어려운슬픔과절망이무겁게나를누르고있다.

그느낌은마치,

자유롭게하늘을날던새가어디선가쏘아올린돌맹이에맞아땅위에떨어져상처입은새가된것같았다.

나는퍼뜩거리는내영혼의떨림을감지하면서

맑은정신으로이감정들을견디어나가기로마음을다독였다.

나스스로에게말한다.정신차려.넌뚫고나갈수있어.

강한의지로대처하려하나그러함에도나약한인간인지라,

많이힘들다.

낮은일에열중해야하기때문에그나마다행이었으나

매일매일이깊은밤이고고통의밤이다.

나는내가슴을치며’내탓이오,내탓이오…’중얼거리며,

그어둔밤,내상처에서흘러내리는피의감각을느끼며

그러나,과감하게내앞에놓인시간과싸우기로작정을하였다.

고통중에서자신을정화한다는것은또한얼마나눈물겨운날개짓인가!

그러던중침실내책상위로소복히쌓여있는책중에서비스듬이삐져나온책이내눈에들어왔다.

얼마전사무실의’로즈’가,

언니.이책읽었어요?제가읽으면서언니생각이많이났어요.그래서가져왔는데…

하면서내게건네주었던책,공지영의<수도원기행>이었다.

나는그책을끄집어내어겉장을유심히바라보았다.

작은글씨로적혀있는것이눈에들어온다.

‘살아야할이유를찾고싶어다시일어날때마다상처를가리기위해가면을썼고,

내가누구인지알수없게되었고,그렇게떠돌다가나는엎어져버린것이었다.

내가졌습니다!항복합니다!항복..합니다,주님’

손을뻗히어그책을더눈가까이대고그작은글씨체를읽다가,끝내는

책의첫장을펼치고읽어내려가기시작한지이틀만에다읽었다.

작가가한달동안유럽의여러나라를돌아다니며수도원을방문하는데

여행중에만난다양한형태의삶을만나면서자신의삶을뒤돌아보게된다.

그리곤18년만에처음으로영성체를받기도한다.

여러형태의수도원을방문하면서잃었던자신의신앙을되발견한것이다.

다만조금아쉬웠던것은유명한작가이기는하지만아직신앙에서는첫걸음인지라

깊은신앙의메세지가조금부족한듯하다.

하지만작가의발자취를따라

나도늦가을의유럽의수도원을같이방문한듯한마음이다.

난책을읽으면서내가좋았던귀절에는밑줄을긋는습관이있는데

내책이아니라빌린책이라서밑줄긋고싶었던많은부분들을이곳에정리한다.

프랑스아르정탱,베네딕트여자봉쇄수도원

첫건물이580년에세워졌다고하는프랑스에서가장오래된수도원의하나.

47명의수녀님중에한국인은2명,그중충북이고향이신노수녀님의말씀이다.

"우리는가둠으로써제일큰것을얻은거예요…세상의작은것들을버리고제일큰것을얻었으니

더바랄게없지요.처음불란서에와서이수도원저수도원을다녀보다가이곳에오게되었어요.

제가소개를받아이곳에도착하기전날한수녀님이돌아가셨는가봐요…장례미사를드리는데참석했다가

그분의얼굴을뵙게되었죠.관속에들어가계신그늙은수녀님의얼굴이얼마나아름답던지….

바로원장수녀님께면회를신청했어요.그러고는말씀드렸죠.제발여기서죽게해주세요…

그때원장수녀님이웃으시며말씀하셨어요.그래요.좋아요.하지만지금당장죽는건안돼요."[page52]

그레고리안성가의본산인프랑스의솔렘수도원,

베네딕트남자봉쇄수도원을방문하고난뒤의작가의말

버리면얻는다.그러나버리면얻는다는것을안다해도버리는일은그것이무엇이든쉬운일이아니다.

버리고나서오는것이아무것도없을까봐,

그미지의공허가무서워서우리는하찮은오늘에집착하기도한다.[page83]

꿈하나만믿고이룬공동체,프랑스의테제

테제공동체는1940년8월,당시스물다섯살난스위스개신교목사의아들로태어난청년로제가

이테제라는마을에혼자와서정착한것이그출발이었다한다.

그는2차대전중에는이곳에유대인들을숨겨주고전쟁이끝난뒤에는독일군포로들을돌보아주었다고했다.

돈도조직도가진것이없었던청년로제는단한가지가진것이있었는데,

그것은전쟁의고난이휩쓸고간이세상에서서로화해하고사랑하는공동체를세운다는’꿈’이었다.

그는처음2년동안황량한언덕에서홀로지냈다.

그러다가개신교신자들이공동생활과독신생활안에서일생을봉헌할것을서약한후

가톨릭신자들이입회하고그리하여오늘에이르렀다고한다.

현재25개국출신의90여명의수사님들이계시며한국인으로는장수사님한분만계시다고한다.[page104]

스위스프리부에있는마그로지여자시토봉쇄수도회

십자가에못박힌채가시관쓰고파안대소하는예수,하하하…금방웃음소리가들릴것같은예수….

스위스라면캘뱅(Calvin)종교개혁이엄혹하던땅인데그시기에왜저렇게웃는예수님을조각했을까…

나는왜그런지알것같았다.고통이극에달하면벗어날방법은아마도별로없을것이다.

미쳐버리든지해탈하든지…이조각상의작가도미쳤거나해탈했거나둘중의하나라는생각이들었다.

고통의극에서,아마도꿈이나환영속에서그는이렇게웃는예수님을만났을지도모른다.

예수님은괴로운그에게말씀하셨는지도모른다.괜찮다.자들어봐라,내웃음소리를….

잘봐,내가웃는모습을.이제좀위로가되니?하고.[page141]

스위스의오뜨리브남자시토봉쇄수도회

여자수도원들은남자들에게도숙식을허용하는데남자수도원은특히여자취재자에게개방이안된단다.

남자들에게는가끔은여자들이경계의대상인가보다.그게다여자때문이아니라사실은제마음속에있는

마귄데…우리나라고승들은몇천년전에이미그걸알지않았나싶었다.

그러니까수도하다가성기를자른들무슨소용이냐고하지않았을까.

그유명한베네딕트성인도청년시절동굴에서혼자독거하고있을때언젠가한번본여자의환영때문에

괴로워하다가가시밭을뒹굴었다고했다.뿐인가,아우구스티누스성인도욕망때문에눈밭을뒹굴고….

그런데그분들은안것이었다.그게다내마음속의일이지누구때문이아니라는걸….[page144]

늦가을하늘은높고푸른데인적드문오뜨리브숲길여기저기작은들꽃들이

마지막가을꽃씨를터뜨리고있었다.

멀고먼스위스프리부,자주오기가쉽지않은곳이다.

몇년후,별러서다시찾아왔을때늙으신장신부님이다시거기계신다는보장도없다.

나는걷다가돌아보았다.후두둑휘장을드리운것처럼펼쳐진검은하늘,

누군가의눈빛인양맑은별이몇개떠있다.

시간속에묻혀기억도사라져갈지모른다.꽃은곧시들어버릴것이라언제나마음속에서아름답고

사람은짧게스쳐갈수록오래도록기억이나는것인지…[page145]

시간의물살을거슬러과거로올라가면누구라도그러하듯이,

나는침대머리맡에앉아나의어리석음이펼쳤던내인생의드라마를

두눈똑바로뜨고다시바라보는형벌을받았다…..

내생이결코내맘대로되지않는다는것을뻔히알면서도내인생은나의것이어야한다는이딜레마.

우리삶에상처를입힌사람들을용서할수없는고통에시달리면서

바로그순간에도나는또한남에게잊지못할상처를주고있다는딜레마…

까뮈가그렇게말했다.내가만일내인생의전환기를느낀다면

그것은내가얻은바에의해서가아니라내가잃은그무엇때문이라고…[page195]

H.나우엔의말처럼우리는"상처를딛고일어설자유"를얻어야한다.

나역시많이편안해진후에,돈이나명예,사랑이나이름에대한집착을버려야한다고

날마다되뇌며살던어느날깨닫게되었다.

내가상처에대하여,그것이차마집착인줄도모르고,그어느것보다더무섭게집착하고있다는것을.

[page209]

독일의마리아의언덕,

몽포뢰도미니코수도원에서통역을하여주었던김은애여사의말,

"사랑할시간이이렇게부족할줄그때도알았다면좋았을것같아요.

남편과결혼한지15년만에남편이좀마음에들더라구요.그래서내가남편에게그랬죠.

여보이제당신나를떠나어떤여자와결혼한다해도좋을거야.당신은이제완벽한남자니까…

그러자남편이말했어요.

당신육체의병은내가고쳐주었지만내마음의병을고쳐준것은당신이잖아.

오늘의나는당신의작품이야.그러고는정확히2년후그가죽었어요.

(그녀의남편은독인인으로의사였는데1969년당시웬만해서는갈수없었던중국에의료봉사단으로

나갔다가스위스에어가추락,그때의사고휴우증으로1971년에죽었다.)[page228]

내여행의윤곽이문득선명하게내게다가왔다.

그러니결국이세상모두가수도원이고내가길위에서만난그모든사람들이사실은수도자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들었다.바로그들을만나려고내가이길을떠났었다는생각이들었던것이다.[page250]

다친달팽이를보게되거든

도우려들지말아라

그스스로궁지에서벗어날것이다

당신의도움은그를화나게만들거나

상심하게만들것이다.

하늘의여러시렁가운데서

제자리를떠난별을보게되거든

별에게충고하고싶더라도

그만한이유가있을것이라고생각하라.

더빨리흐르라고

강물의등을떠밀지말아라

강물은나름대로최선을다하고있는것이다.

장루슬로의시[page248]


지금이글을쓰고있는내방의창문너머로훤한아침동이트고있다.
유리창저만큼에서싱싱하게물이오른복숭아나무의초록잎새들이나에게아침인사를하여주는듯하다.
이고요한아침,
이늦가을에읽은한권의책…
그속의수많은낱말들이강江처럼흐르며나를헹구어주고있다.
더빨리흐르라고강물의등을떠밀지말아라.
순리대로…그렇게강江은흐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