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에 젖어 든 추억과 여행

간혹아니,어쩌다한번씩듣는소리가있었다.

그소리는한밤중깊은잠속에빠져있는나를깨우기도하고,

어떤때는맑은정신으로깨어있는내게마치꿈결속의소리처럼들리기도하였다.

그소리가들리기시작하면이미사방이깊은정적속에있는데도

어둠속에서나는더욱숨소리조차죽이면서그소리에귀기울이다가다시깊은잠속으로빠져들곤하였다.

어떤날은길게울리기도하고,

또다른날은한두어번짧게울음을토하곤바뀌굴러가는소리만여운을남겨줄때도있었다.

내집에서약1마일정도떨어져있는곳에기찻길이있는데

한새벽에화물열차가지나가면서그렇게나를잠시흔들어준다.

아마도뉴멕시코를지나서텍사스주로달리는기차이리라…

내늘그막에기차의기적소리에이렇게가슴을쓸어내리며

때로는잔잔한단상에젖어들기도하고,

어쩌다가는깊은어둠속에서잠시나마자신을돌아보는시간도갖으면서

박경리님처럼,

모진세월가고

아아편안하다.늙어서이리편안한것을

버리고갈것만남아서참홀가분하다.

하면서다시편안한마음으로잠속에빠져들기도하니,

나,그래서기차의기적소리로인하여행복하다고자신있게말할수있다.

초등학교다닐때,약2년정도시골에서살았던적이있었는데

그때들으면서자라났던기차의울음소리를

이미국땅,사막의한곳에서들으면서산다는것이신기하다면신기할뿐이다.

맨처음이집터를보러왔을때,

기찻길이가까이있어서집값과상관이있을지라도개의치않으리라마음먹었다.

내가앞으로몇년을더살수있으리라고누가말할수있겠는가?

사람의앞일은아무도모른다.

내일일도모른다.

그러니내가살아숨을쉴동안은내가행복하게살면된다.

남에게해를입히지않는범위안에서.

난,기차의기적소리를좋아한다.

어쩌다듣게되는데,오늘새벽에도그기적소리를들었다.

다른날과는달리이내잠이들지않아아예깨어나거실로나와

식탁위에펼쳐놓은대형지도를자세히들여다본다.

오랫동안시간을들여하나씩하나씩자료를준비해왔던곳,

그동안찾아가지않고내가아껴두었던곳,

그래서’이제는찾아갈때가되었다’라고생각하면서

나혼자일주일정도돌아볼려고다준비해놓았던곳,

지도위로동그라미그어놓은그도시이름들을가만히소리내어불러보기만해도가슴이설레인다.

여행을떠나는사람이라면누구나알것이다.

여행을떠나기전에느끼는그알수없는세계에대한설레임과두려움,

여행가방을채우면서꿈꾸는일탈과무사히돌아올수있을까하는약간의불안감과

그리고여행매순간마다증폭되는생각의크기들..

‘나는지금어디에와있는가?’

‘나는지금올바로걸어가고있는가?’등등…^^

그리고매순간부딪혀야하는낯설음과이국적인삶의풍경

그리고여행을마치고돌아올때쯤에느끼는약간의아쉬움과평온함,

또다른여행의기대치까지….^^

그런데,그여행계획이틀어져버렸다.

나혼자가아닌친구들과함께로,

그리고일주일이아닌,단며칠동안으로.

나홀로여행의아쉬운마음을다음의기회로접으면서

친구들과의여정으로다시계획을수정하였다.

모두남편님들을떼어놓고나와함께떠나고싶다는그녀들.

이렇게며칠을같이움직이는것도쉽지않은기회일테니….^^

스무살이될무렵

나의꿈은주머니가많이달린여행가방과

펠리컨만년필을갖는것이었다.

만년필은주머니속에넣어두고낯선곳에서

한번씩꺼내엽서를쓰는것.

만년필은잃어버렸고,그것들을사준멋쟁이이모부는

회갑을넘기자한달만에돌아가셨다.

아이를낳고먼섬에있는친구나,

소풍날빈방에홀로남겨진내짝홍도,

애인도아니면서삼년동안편지를주고받은남자,

머나먼이국땅에서생을마감한삼촌…

추억이란갈수록가벼워지는것,

잊고있다가문득가슴저려지는것이다.

이따금다락구석에서먼지만풀썩이는낡은가방을꺼낼때마다

나를태운기차는자그락거리며침목을밟고간다.

그러나이제기억하지못한다.

주워온돌들은어느강에서온것인지,

곱게말린꽃들은어느들판에서왔는지.

어느외딴간이역에서빈자리를남긴채

내려버린세월들.

저길이나를잠시내려놓은것인지,

외길로뻗어있는레일을보며곰곰히생각해본다.

나는혼자이고이제어디로든다시돌아갈수없다는것을.

오래된여행가방-김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