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짓다가쪽파가조금필요하여서텃밭으로나갔습니다.
어스름한저녁빛에복숭아나뭇잎과그레이프프룻나뭇잎들이땅위에소복이떨어져있는것을바라보다
땅위,이리저리몰려있는낙엽들을손으로긁어모아통에담아두었습니다.
문득,아…이곳에도가을이찾아왔구나…하는마음이들었습니다.
사계절이있는곳처럼풍성함과는전혀다른분위기의가을이이곳에도있습니다.
저녁을짓는내내무언가아쉬운마음이들었습니다.
저녁을먹고나서,책장앞에서서성거리다가그래,이책일꺼야하면서오정희님의<내마음의무늬>를꺼내들고는
이리저리뒤적이다가찾아낸글입니다.
오래전에읽었던짧은글을다시읽으며,
어쩜작가는이렇게도표현을잘할수있을까….하는부러운마음이많이들었습니다.
채밝지않은새벽,아침신문을가지러나올때마다만나는것은안개와마당가득깔린낙엽이다.물에둘러싸인이도시의안개는유난한바있다.가을이깊어가는것이다.가을로접어들면서부터아침밥을짓기전마당의나뭇잎들을모아태우는것이내일과의시작이되었다.마당을쓸고뒤돌아보면어느새나뭇잎은엷게한겹또깔려있다.한여름내내무성한그늘덕을톡톡히보았으니쓸어모으는수고를아낄것인가.안개에젖은잎은멈칫멈칫밑에서부터힘겹게타들어가며눅눅한연기를피워올리다가갑자기기세가맹렬해져서집과골목을가두어버린다.어린애가아니더라도불을피우는일은언제나신기하고,따뜻한불기운과마른잎타는냄새는행복한느낌에젖어들게한다.
해질무렵이면나는또다시마당을쓴다.나는불을피우고아이는조그만꽃삽으로열심히낙엽을모아와쌓인재위에덮어연기를피운다.연기는집을냇물처럼휘감고아직빨랫줄에널린덜마른빨래에도스며마른옷가지에서는아,가을의냄새가풍긴다.그러나내눈이더많이머무는것은기분좋은소리로타들어가는나뭇잎이나연기보다,신기해하는빛으로불꽃을열심히지켜보는아이의얼굴이다.아주훗날어른이된그애에게어느순간,세상에홀로남겨진듯한쓸쓸함이찾아올때문득엄마와함께마른잎을태우던저녁의연기,타버린재속에숨어있던불씨의추억이떠올라그에게따스한위안으로작용하기를,그를낳은부모들또한조그만일에행복해하고괴로워하기도하면서삶의순간들을살아갔음을깨닫게되고그앎이그의생에대한용기와사랑,부드러움을일깨울지도모른다는희미한기대로아이를바라보는것이다.
아름다운계절이가고있다.
누군들다음해의가을역시이와같으리라고범연할수있을까.
오정희님의<낙엽을태우며>의전문.
가을이깊어지면,나는거의매일뜰의낙엽을긁어모으지않으면안된다.날마다하는일이건만,낙엽은어느새날아떨어져서,또다시쌓이는것이다.낙엽이란참으로이세상의사람의수효보다도많은가보다.삼십여평에차지못하는뜰이건만날마다의시중이조련(調練)ㅎ지않다.벚나무,능금나무—제일귀찮은것이담쟁이이다.담쟁이란여름한철벽을온통둘러싸고,지붕과굴뚝의붉은빛만남기고,집안을통째로초록의세상으로변해줄때가아름다운것이지,잎을다떨어뜨리고앙상하게드러난벽에메마른줄기를그물같이둘러칠때쯤에는,벌써다시거들떠볼값조차없는것이다.귀찮은것이그낙엽이다.가령,벚나무잎같이신선하게단풍이드는것도아니요,처음부터칙칙한색으로물들어,재치없는그넓은잎은지름길위에떨어져비라도맞고나면,지저분하게흙속에묻히는까닭에,아무래도날아떨어지는족족그뒷시중을해야한다.
벚나무아래에긁어모은낙엽의산더미를모으고불을붙이면,속엣것부터푸슥푸슥타기시작해서,가는연기가피어오르고,바람이나없는날이면,그연기가낮게드리워서,어느덧뜰안에자욱해진다.낙엽타는냄새같이좋은것이있을까?갓볶아낸커피의냄새가난다.잘익은개암냄새가난다.갈퀴를손에들고는어느때까지든지연기속에우뚝서서,타서흩어지는낙엽의산더미를바라보며향기로운냄새를맡고있노라면,별안간맹렬(猛烈)한생활의의욕(意慾)을느끼게된다.연기는몸에배서어느결엔지옷자락과손등에서도냄새가나게된다.
나는그냄새를한없이사랑하게되면서즐거운생활감(生活感)에잠겨서는,새삼스럽게생활의제목을진귀한것으로머리속에띄운다.음영(陰影)과윤택(潤澤)과색채(色彩)가빈곤해지고,초록이전혀그자취를감추어버린,꿈을잃은허전한뜰한복판에서서,꿈의껍질인낙엽을태우면서오로지생활의상념(想念)에잠기는것이다.가난한벌거숭이의뜰은벌써꿈을꾸기에는적당하지않은탓일까?화려한초록의기억은참으로멀리까마득하게사라져버렸다.벌써추억에잠기고감상(感傷)에젖어서는안된다.
가을이다!가을은생활의계절이다.나는화단의뒷자리에를깊게파고,다타버린낙엽의재를—죽어버린꿈의시체를—땅속에깊이파묻고,엄연(儼然)한생활의자세로돌아서지않으면안된다.이야기속의소년같이용감해지지않으면안된다.
이효석님의<낙엽을태우며>중일부
낙엽타는냄새같이좋은것이있을까?
갓볶아낸커피의냄새가난다.
잘익은개암냄새가난다…
아주오래전,수십년전에,
고등학교교과서에실려있는이수필을읽었을때의청량함이란!
그당시에커피가귀하였고,당연히커피에대해서잘몰랐었던나는,
낙엽타는냄새=커피로만상상하였습니다.
어쩌면단발머리,하얀교복속의소녀에게는그때부터커피가상상속의기호식품이되었을지도모릅니다.
나는지금도커피를마실때면,잔을코에가까이댕기며커피향부터맡습니다.
그윽한향이내가슴깊숙이에로들어와앉으며,그제서야한모금입속으로들어밉니다.
밤이깊어지는지금,
아무래도커피를내려야할것만같습니다.
이곳에서는낙엽태우는일이절대로없으니커피향으로라도온집안을휘감아두르고싶어지네요.
FariborzLachini-AutumnSlu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