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아래에서

뒤뜰텃밭에서쪽파인지,난초인지모를정도로무성하게자라난파를다뽑아냈습니다.

파뿌리밑둥은적당하게잘라다시텃밭에심어놓고,

보조의자에앉아파를다듬기시작했어요.

싱그러운바람이불때마다주위의공기는매우향긋했어요.

사과꽃과레몬꽃이우수수떨어져서내쪽으로도휘날려오더군요.

작년봄에심은사과나무.

저는너무삭막한뒤뜰에정이가지않아

처음이집에이사들어올때에대나무를몇그루심었드랬어요.

바람이불면대나무가지가쏴아하면서휘둘리며내는소리를듣고싶었거든요.

이곳은바람이자주,그리고아주많이불때가많아요.

그랬더니주위에서대나무뿌리가번성이잘되기때문에집터쪽으로뻗어나오면곤란할것이라고하여,

귀가엷은저는그이듬해엔가그대나무를다뽑아내고레몬나무와사과나무를심었어요.

열매를따먹기보다는,

나무의무성한푸른잎사귀와꽃을보기위함이었지요.

모처럼갖는여유롭고평온한토요일아침입니다.

주위는아주고요했고바람소리와낙화하는꽃송이만휘날리고있었는데,

그안에앉아파를다듬자니심심했어요.

그래서커피를엷게블랙으로내려와서맛도즐기고커피향도탐닉하면서

아주천천히,하나하나집어들고파다듬는것을즐기기로하였어요.

그리고고개를들고가끔씩사과나무와레몬나무에서꽃잎이낙화하는것을바라보았어요.

아주오래전에,

그러니까제가중학교에다니던때에읽었던책중에,

벚꽃나무아래에서…라는제목으로기억되는단편소설이있었어요.

저는낙화하는사과나무꽃이나레몬나무,자몽나무,복숭아나무꽃들을볼때마다

그책을읽었던때가아련히떠올랐어요.

그때가45여년전이니어떤내용인지도선명히기억나지도않는데

유난히그책을읽으면서느꼈던그저아스라한분위기만잡힐듯느껴지는거예요.

사진속의사과나무와레몬나무주위에흙이골라지지않고있는것은,

지난주에그나무주위를더넓게해주느라파헤친것인데

힘이부치기고하고또시간도없고해서저렇게그냥놔두고있어요.

이럴때는힘센장사가필요하다는생각도들어요.

아들녀석이집에돌아오면해야할일이한두가지가아니예요.

잊어버리기잘하는저는일일이적어놓아야할것같아요.

향기로운토요일아침,

사과나무아래에서파를다듬으면서생각했어요.

갓을넣고파김치를담아볼까…하구요.

다듬은파를냉장고에넣어두고,

감은머리가마르길기다리면서이글을쓰고있어요.

바람이많이붑니다.

컴앞에앉아있는유리창너머로

어린복숭아나무와자몽나무가지들이사정없이이리저리휘둘리기도하네요.

이렇게바람부는날은생각이깊어집니다.

혈압이높은내가갑자기쓰러진다면내아이들은어떻하지?

어느날갑자기회사에서퇴직을당하면이집값은어떻게내고살지?

나름열심히살아왔던시간들이허망해지면어떻하냐구…

황사가오려는지쟂빛하늘이내마음처럼흐립니다.

흔들리는복숭아나무가지처럼내마음도같이흔들려버립니다.

내가이렇게약해지면안되는데…생각합니다.

이제기운을내렵니다.

나가서한국가게에들려갓을사고,

친구가게에들려서티타임을갖은다음에

성당에가서토요특전미사를참례할까합니다.

이세상에서그누구보다도더나를알고사랑해주시는그분을뵙고오렵니다.

그런다음한층맑은정신,새로운기운으로업되어집에돌아와서는

갓을넣은파김치를정성스럽게담아볼까합니다.

그리하여,

누구든내집을찾아오는이를위하여따뜻한밥상을차려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