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욜라 – 성 이냐시오 生家

내일생에꼭한번은성이냐시오의고향집을순례하고싶었었다.

그소망이,이루어졌다.

스페인북부에있는산세바스티안에서로욜라까지가는길은험하였다.

게다가버스가출발한지30여분후부터는,

아침부터오다말다하던빗줄기가

또다시굵은빗줄기로버스유리창을두드리기시작하였다.

의자를약간뒤로젖히고편하게앉아창밖으로빗겨가는풍경을바라보던나에게

여행중에만나는자연의선물은기쁨과설레움을안겨주었다.

길가좌우,첩첩으로늘어서있는높은산중턱으로물안개가피어오르는것을바라보며

내자아가조금있으면만나게될,또다른낯선세계로들어감을기대하고있는것을느꼈다.

나는,바람처럼스쳐지나가는창밖을바라보며,

내영혼이환희로팔딱거림을침묵으로지켰다.

버스를내리자마자눈에제일먼저띈,

성이냐시오생가를둘러싸고있는돌담벽이마음에들었다.

비내린후의싱그러운살구밭.

생가앞뜰에있던살구꽃들이만발하여나를반겨주는듯하였다.

성이냐시오생가앞뜰에흐르고있는RioArga.

수천년부터흐르고있었을강물을무심히바라보았다.

로욜라성城이있던자리에세워진로욜라대성당.

이냐시오의뜻이었던’하느님의더큰영광을위하여’라는

영적찬미의상징이이건축물에잘나타나있다고.

이미성이냐시오에관하여서는지난번에<만레사,성이냐시오>라는제목으로포스팅을하였기에

그에관한자세한이야기는다시쓰지않아도될것이다.

다만로욜라에서느꼈던나의마음을적을련다.

성이냐시오는1491년스페인로욜라성의부유한영주의11남매중막내로태어났다.

1521년스페인과프랑스의국경에있는’팜플로나’의요새에서

조국스페인을방위하기위하여용감히싸운장교’돈이니고데로욜라’는격전끝에

그해5월21일오른쪽다리에관통상을입고,

명예로운부상자가되어들것에실려고향인’로욜라’성에로돌아오게되었는데

거대한生家로들어서면그때를재현한이청동상을바로만날수있다.

생가1층복도에서가이드가벽에붙어있는버튼을누르니

청아한목소리의예수회의신부가안내를위하여녹음하여놓은것이들려나왔다.

이녹음방송은요소요소잘되어있어서

4층으로되어있는,거대한성이냐시오생가를다돌면서그때마다필요한안내를들을수있었다.

이냐시오집안의상징인문양.

4층의’회심의방’입구에는

"로욜라의이니고가하느님의방으로들어갑니다"라는의탁의글이쓰여져있다.

‘회심의방’은다리에부상을입고집에돌아온이냐시오가이곳에서회복기를보내면서,

<그리스도의생애><성인들의꽃>을읽으며

그리스도께회심하였기에붙여진이름이다.

성인이이곳에서느꼈던것은,

"나는자주,오랫동안창문을내려다보며,

내안에서우리주님을섬겨야한다는강한충동을느꼈습니다"

그리하여이’회심의방’은이집의심장이라고하였다.

커다란유리창을통하여’회심의방’에놓여있는제대와

그뒤의이냐시오상을바라보고있는우리들에게가이드가말하였다.

"오늘미사는이곳에서드립니다"

그한마디에우리모두는환호성을올렸고,

나는메고있던작은베낭속에있는고유기도문을민첩하게꺼내어

제대위로놓으며떨리는마음으로미사준비를하였다.

미사를드리는내내너나할것없이깊은감동으로눈가를훔쳤다.

사람마다하느님을찾는방법은다를것이다.

누구나하느님을찬미하는방법은다를것이다.

그러나,오늘은우리모두가일심동체가주님을찬미하였다.

평화의인사를나눌때,

우리일행은원을그리며돌아가면서서로서로꼬옥안아주었다.

미사가끝난후연배가지극하신분들은한결같이이렇게말씀하셨다.

‘내살아생전에이곳에서미사를드릴수있음을생각지도못하였다’는것.

이날,내가봉헌성가로고른것은이냐시오성인의기도문이었다.

주여나를온전히받아주소서

주여나를온전히받아주소서

나의모든자유와나의기억과지력나의의지소유한이모든것을

주여당신께드리나이다

이모든것되돌려드리나이다.

주여나를온전히받아주소서

주여나를온전히받아주소서

내게주신모든것주의것이오니오직주님뜻대로처리하소서

당신사랑은총을나에게주시면

아무것도더바람이없으오리다.

몬세라에있는’검은성모상’이여기에도있는것은

이냐시오성인이1522년3월몬세라의성모성당을방문하여

총고백을하고속세의생활을청산하고자굳게마음을먹고

자기의칼을검은성모상앞에봉헌하면서기사의길을걷기를접었기때문일것이다.

밖에나오니저멀리산봉우리위로밝은햇살이내리비치고

비온후의맑고상쾌하고향기로운공기가대지위를가득채우고있었다.

나는,깊은심호흡을하면서

다시찾아오기힘든이곳을정깊은눈길로둘러보았다.

2012년4월20일(금)

로욜라에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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