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봄 –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밤새잠을이루지못하고설쳤다.

다행히도이호텔방은꽤넓직한데다가

두침대가나란히있지않고

하나는저쪽으로,

또하나는이쪽으로있어서

뒤척이는내소리가수녀고모에게방해가되지않은듯하다.

왜냐하면수녀고모는나의날샘과달리고른숨을내쉬며푹잠에빠졌으니까.

오늘로써길위로나선지나흘째.

그것도한국에서미국에도착하자마자바로그이튿날부터

우리의여행은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더미국의자연을보여주고싶은나의마음이었기때문에

시차적응은달리는자동차안에서하셔요….하면서말이다.

우리는36년동안시뉘올케사이였지만

그긴세월동안우리의만남은손가락을꼽을정도로얼마되지않기때문에

서로에대해잘알지못하는부분이많았다.

하지만나흘동안같이밤낮으로붙어있으면서

긴장거리운전시간동안이야기를나누고

같이밥을먹고

같은방에서샤워하고자고

그러면서점점더많이알게되고

서로를위하는마음이깊어지고있다.

수녀고모는

내가결혼을해서서울에살즈음에

막대학을졸업하고

대전에서직장생활을하였기때문에만날기회가없었다.

직장생활도잠시뿐,

수녀가되겠다고준비를하더니수녀원으로들어간막내시누이.

그뒤수녀원으로미국이민오기전에한번찾아가만났을때가1984년이었는데

그때는수녀가되기위한수련기간이었다.

수련기간을거쳐서정식수녀가되고

그뒤로내가한국을두번방문해서

두번만나본것이본것이전부였다.

내가가톨릭신자가된것도수녀고모의권유때문이었다.

그때수녀원으로찾아갔을때,

수녀고모가미국가면꼭세례를받았으면좋겠다고말했고

미국에오자마자성당을찾아가교리공부를받고세례를받았으니까.

1992년미국에온뒤로처음한국을직장연수기회로나가게되었는데

수녀고모가김포공항에마중나와서는

내손에봉투하나를쥐어주고는필요한곳에사용하라고하였다.

받지않으려고뿌리치는나에게자기가해줄수있는최대한이라면서받아달라고했다.

자기오빠때문에미국에서내가너무고생을많이하고있어서미안하다고하면서.

역시공항에마중나온친정오빠가같이집에가서식사라도함께하자고했지만

부드럽게사양하면서돌아섰다.

오빠집에와서보니그봉투에는적지않은돈이들어있었다.

아니,수녀가웬돈을!

하지만후에난알게되었다.

다른시뉘들이준용돈을쓰지않고모아두었다나에게주었다는것을.

생각은또생각을이끌어내어

밤을하얗게새우고

새벽다섯시쯤그냥침대에누운상태로묵주기도를10단바쳤다.

여섯시에자리에서일어나니수녀고모도같이일어난다.

아침식사를적당히하고

커피를내려같이커피를마셨다.

오늘은주일이라이곳에있는성당에서아침미사참례한다음에길을떠날려고한다.

아침9시에있는미사때문에샌시몬,이곳에서하룻밤묵었던것이다.

원형테이블을가운데놓고마주앉아커피를마시면서

이런저런이야기를나누다가

먼저눈물을쏟은것은내쪽이었다.

담담하게말을끄집어내기는했는데

이야기도중에북받치듯설움과회한과쌓인고통이한꺼번에터지는듯했다.

수녀고모도덩달아같이울면서내손을꽉잡았다.

언니,전언니가그런상황에서이렇게걸어왔다는것이대견하고

내언니라는게자랑스뤄워요.

그리고언니,내손에묵주를잡을힘이없어질때까지필립이를위해서기도할께요.

나도힘든때참많았어요.내아버지도그렇고오빠도그렇고.

하지만전끊임없이기도할꺼예요.언젠가는꼭이루어질것을믿고있으니까요.

호텔에서성당까지는10여분거리에있고

오늘아침으로태평양바다를보는것이마지막이라

호텔에서나와바닷가를먼저조금걸은뒤에

8시30분쯤에성당에도착했다.

우리는오늘처음으로같이미사참례를하게된다.

오늘은<주님수난성지주일>이라제대는붉은제대포를덮었고

커다란종려나무잎으로제대를장식해놓은것이특이했다.

시골의작은성당이라음악봉사하는분들도모두연세가많았는데도화음이참듣기좋았다.

가만히보아하니각자악기를연주하면서성가를연습하고있었다.

수녀고모와나는맨뒷자리에앉아눈을감고들려오는성가속으로빠져들고있었는데

갑자기앞에서말하는소리가들렸다.

"Goodmorning!IamFatherMike"

아,키가큰사람이앞에서환히웃으면서우리에게손을내밀고있었다.

악수를한다음에우리소개를했다.

나는애리조나주에살고이분은한국에서잠시미국을방문했고,

우리는지금여행중인데주일미사후에다시길을떠날것이다….등등….

성전을찍으려고들고갔던카메라를다시차에둘려고나왔을때

본당신부님은성전앞에걸어다니면서신자들과일일이인사하면서악수를하고있었다.

굉장히꽤할하고다감한본당신부님이신것같다.

저분이바로본당신부님.

참,

미사중에누군가뒤에서조심스럽게신호를해왔다.

등뒤를손가락으로살짝건드리는식으로.

뒤를돌아보니점잖게생긴남자분이었다.

우리보고예물봉헌을해줄수있느냐고소근거리며물었다.

아마도전례를담당하는분인것같았다.

아니,우리는지나가는나그네인데요?했더니괜찮다고한다.

수녀고모와나는서로눈으로묻고눈으로의견을나눈뒤에

그러겠다고대답했다.

그래서우리는성찬예식때에

빵과포도주를들고제대위까지올라가서제대위에놓고내려왔다.

여행복차림으로.

성당을가득채운신자들이보는가운데서.

이런일은어떻게말로설명할수있을까?

나는그때도지금도똑같이생각하고있다.

하느님은꼭제삼자를통해서당신의뜻을전달한다고.

그날아침호텔방에서우리둘이손을붙잡고하나가되어이야기를나눌때

그자리에예수님께서찾아오시어

우리의마음깊은곳을어루만지며치유해주셨다는것을.

그렇게우리와함께있었다는것을,

그것을우리에게알려주기위해,

미사중에빵과포도주를봉헌하도록하게하지않았을까싶다.

그렇지않다면,

어떻게한번슬쩍지나가는낯선여행자에게

그런일이일어났겠느냔말이다.

네가알몸이라고누가일러주더냐?

2015년3월29일(일)

여행다섯쨋날아침에

캘리포니아의샌시몬에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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