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살다간 여인, 프리다(2)

1931년작품<FridaandDiego>

영화속의결혼식장면.사진이나그림이나거의같다.

천재예술가의아내가되다

1928년학교로돌아간프리다는공산주의소모임에들어갔고

한모임에서천재벽화화가디에고리베라를만났다.

그이듬해인1929년,프리다의나이21살,그녀는디에고와결혼했다.

당시디에고는유명한화가였지만프리다보다21살이더많았고

이미2번결혼을했으며바람둥이로알려져있었다.

그런예술가의아내가된다는것은

그녀의장애를감안한다고해도쉽지않을결정이었을것이다.

당시프리다의부모는둘의결혼을반대했고

사람들이보기에도그들은어울리지않는커플이었다.

디에고는거구였고,프리다는작은소녀같았다.

디에고옆에있는프리다는더욱왜소해보였으며

사람들은둘의결혼을’코끼리와비둘기의결합’이라고불렀다.

레온트로츠키와멕시코의유명한유적지인테오티와깐을방문하여즐거운한때.

레온트로츠키는스탈린과의이념투쟁에서밀려서메히꼬로정치망명을갔는데

당시공산주의사상에심취해있던디에고와프리다의환대를받고

그들집에잠시살게되었는데그러다가잠시프리다와….

결국그는스탈린이보낸암살자에의하여처참하게죽음을당한다.

고통과절망으로가득찬삶을살다

그들이가진예술적재능만큼이나격렬한두사람의결혼생활은평탄치않았다.

디에고는프리다와결혼한후에도줄곧바람을피웠고

프리다는자궁기형으로두번유산을했다.

디에고의수많은바람기를인내했던프리다였지만,

그녀가도저히참을수없었던디에고의외도는여동생크리스티나와의관계였다.

심신이지쳐있을무렵,

프리다는디에고가자신의동생인크리스티나와깊은관계중임을알게된다.

여동생크리스티나를그리고있는프리다와완성된작품.

1928년도작품인<PortraitofChristinaMySister>

남편과여동생으로부터동시에배신당한프리다는성실한아내역할을그만둬버렸다.

그녀는남편을떠나자유롭게여행을하였으며

조각가,사진작가등의애인을두기도하였고동성과사랑을나누기도하였다.

디에고와여동생과의정사장면을본뒤

자기의긴머리카락을다잘라낸프리다.

그런자기를그린그림옆에다글을써두었다.

별거하는동안프리다는

술을너무많이마셔가뜩이나좋지않은건강마저도악화되었다.

그러나그녀의방황하는육체에비해정신은더욱더디에고에게집착했다.

1943년도작품인<Diegoonmymind>

프리다의일생을가장크게지배한것은남편디에고였다.

디에고를증오하면서도떠나지못했고

사랑하면서도가까이가지못하는상황이그녀를힘들게했다.

결국둘은1939년9월에이혼했다가이듬해1940년12월에재혼한다.

"일생동안나는사고를두번당했다.

첫번째는열여덟살때나를부러뜨린전차충돌사고이다.

이때부러진척추는20여년동안움직일수없었다.

두번째사고는바로디에고와의만남이었다"

교통사고로인하여평생동안척추보조대를달고살아야했던자신을그린그림

<TheBrokenColumn>

<VivaLaVida>1954년도작품

프리다는죽기8일전에이그림을그렸는데

이그림은그녀의마지막작품이되었다.

"기쁘게이세상을떠나기를바라고,

그리고다시는돌아오지않기를…."

Ihopetheexitisjoyful

andIhopenevertoreturn.

1954년47세로세상을떠난프리다의일기장에는이렇게적혀있었다.

다음은프리다가남긴글이다.

"광기의장막저편에서는내가원하는여인이될수있으면좋겠다.

난하루종일꽃다발을만들고

고통과사랑과다정함을그리면서다른사람들의어리석음을비웃으리라.

그러면모두를말하겠지.불쌍한미친여자라고.

나는세계를건설하겠다.

그것은내가살아가는동안다른모든세계들과조화를이루리라."

<Loves’sEmbraceoftheUniverse,Earth>

프리다칼로FridaKahlo는

불행과절망속에서도예술혼을잃지않은멕시코의초현실주의화가이다.

원시주의적인양식으로그린강렬하고화려한색조의자화상으로유명하다.

1940년대말부터프리다의건강이악화되었다.

오른쪽다리를잘라냈고,

몇차례의척추수술은실패를거듭했다.

휠체어를벗어날수없었고,대부분의시간을파란집에서보냈다.

그러나그녀는아픈와중에도하루에3~4시간씩그림을그렸다.

<SelfPortrait>1943년도작품

프리다의작품에는그녀의불운한삶이통째로담겨있다.

소아마비로고통받은어린시절,여성으로서의억압과콤플렉스,

멕시코자연을느끼게하는원시적화풍,

그러나고통과절망만이담긴것은아니다.

삶에대한희망과열정도엿보인다.

그녀의고통은점점더심해지고

그녀는항상약물과술에의지한태살았다.

그러던중멕시코에서첫개인전을갖게된프리다.

그녀는몸이아파움직일수없어서침대채로자신의개인전에입장하게된다.

현재깔로박물관(MuseoFridaKahlo)으로사용되는집은

집의모든바깥벽을파란색으로칠해’파란집(CasaAzul)’으로불린다.

영화에서보면프리다가그렇게파란색으로페인트를했다.

프리다는이집에서태어났고

죽을때도이집에서죽었다.

이집은멕시코씨티외곽에있는꼬요아깐(Coyoacan)에있다.

푸른벽한구석에는

프리다와디에고가이집에서살다1929~1954라는문구가쓰여있다.

멕시코를사랑한화가답게프리다가즐겨있은옷들은멕시코문화가담겨있다.

붓과물감이고스란히남아있는프리다의작업실

부서진척추와다리를고정시켜주던보조기구들.

나의평생소원은단세가지,

디에고와함께사는것,

그림을계속그리는것,혁명가가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