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의 회상:구산벌 이야기(2) / K,S, Ham

<만추(晩秋)의회상:구산벌이야기(2)>

철학교양과목을택하면Plato’sCave(푸라토의동굴)라는애기를들을때가있다.
이말은우리가지식이제한된동굴속에갇혀있으면동굴속에서보고듣는것밖에모른다는얘기다.동굴속

에서나와서넓은세상을보라는평범한뜻을Socrates(쏘크라테스)가자기의제자인Glaucon(글로콘)에게하

는이야기다.

구산벌을지나신작로양쪽으로줄지어있는성산마을을지나노라면아마도대관령을넘어서울로가리라생각

되는동해와강원여객버스한두대가손님들을태우고새벽의찬산공기를가르며뽀얀흙먼지를연기처럼뿜어

내면서산을오를준비라도하듯이지나간다.옛날6.25전에서울에가셧다오신할머니께서손자들을모아놓고,

"얘들아서울에가서한큰산에(남산인듯)올라가내려다보니서울은온통꼿밭이더라"라고얘기해주셨다.

우차를그것도우리의우차가아닌숙부네집의우차를몰고가는나로서는저렇게서울로가는뻐스를타고산

을넘어가는사람들은좀특별한사람들이려니생각했다.

신작로는경사지어올라가는언덕길이되고,길을따라계곡을급히흐르는거울처럼맑은냇물은떠오른아침

햇살을반짝거리며반사하여산골의적적한공허를소리내어메우고떨어진노랑빨강단풍잎실고급히흘려

내려간다.단풍으로채색된대관령을중심으로이어진산들이(連峯)줄줄이보일즈음이면,신작로는령(嶺)으로

올라가는굽이진언덕길이된다.이제는소옆에서서고삐를이리저리끌고댕기며신작로구비에마추어소를

몰아야한다.스므나뭇(20이조금넘는)구비를돌아올라가면숙부와약속한조금은펑퍼짐한(평탄한)곳이있는

골짜기의시냇가에우차를세우고소를풀어내어콩을잔뜩(많이)섞어서새벽에끓여볒짚섶(가마니)에담아서

싣고온여물을꺼내먹인다.

숙부와머슴이미리해놓은나무단들을지게로날라우차위에한단두단조그만집채만큼쌓아올려밧쭐로

이리저리단단히묶어산을내려갈준비를해놓으면해는벌써중천을조금넘는다.이맘때쯤이되면한창커

가는나이의나는허기느껴지게마련이지만내색을할수도없어참으며내려오다보면산이맏대어파인골짝

시냇가에다다르면지난여름장마가깨끗하게씿어놓은펑퍼짐한바위를찾아둘러앉아하얀햅쌀이밥에반찬

들을섞어비비고곁에흐르는물을퍼다마시며배를채운다.그때의먹성을보면서어느땐가할머니께서젊어

서는돌을깨물어먹어도맛있다고하셨다.

해가대관령영마루를넘어갈준비를하고있다.산을내려가야할시간이되었다.소를몰아구르마(달구지)를

메우고하산길에오른다.무거운나뭇짐을우차에올려싣고산을내려오는것은올라가는것보다더힘이드는

일이다.나뭇짐무게에밀려구르는구르마(달구지)의힘을나와소가힘을합해서반대방향으로떠받아밀어주

어야한다.밀려내려오는이힘을막지못하면구비를돌다가내려오는속도에딸려한쪽으로쏠려넘어지게되

도그렇게되면소와나는함께넘어지게된다.그러면소와함께나도나무단에믇히게되기가십상이어서사고

로이어질수도있기때문이다.그렇기때문에소의코멍에를힘있게잡고뒤로당기면소는앞발과뒷발에힘

을주어버티면서한발짝두발짝뚜벅뚜벅경사진구빗길를따라내려오면소도나도땀에흥건이젓는다.숨

이차서흑흑거리는소의코김이고삐를잡은내손등을적신다.소걸음에맞추어다리를뻐팅기며조심조심내

어딛는내발목도힘을잃는다.구비구비돌아힘들게내려오면영(嶺)밑의조그만한다리를마지막으로건느

면비로소한숨을길게내어뿜는다.그제야산을내려오면서운명을같이한소가기특하고귀여워저서소등을

몇번툭툭처주면서“야,소야.참일잘햇다.”하고말을건네준다.

성산마을로내려오면대관령위에걸려있던해는산을넘기시작하고신작로양쪽에아침에보았던양철지붕

집,검은기와집,언덕위초가집들의굴뚝에는벌써저녁연기가하늘로피어올라제법쌀쌀하기시작한저녁나

절을데우고있다.이제는비탈길을다내려왔으니안도의한숨을쉬면서소의등을토닥여주면서구산벌신작

로를들어간다.아침이슬로곱게단장하고떠오르는햇살아래하늘색닮은파란얼굴로보일락말락하게숨은

미소를품고줄지어기다리던들국화들도이제땅꺼미지면쌀쌀하게될저녁기운을맞아들이려는가조용히

지나가는나그네들에게수줍은듯고개를흔들어작별인사를한다.서울에갔다오는손님들을태우고돌아오

는버스들도한두씩대관령을내려와한숨을놓은듯먼지구름을남기며지나간다.

조금여유를찾은귀가길,,소와동무하며지나가는버스의차창을부려운듯처다보며생각에잠겨보기도한다.

선택의여분이없이삶의무거운짐을지고가는나와소는어떤순간에같은길을가는친구처럼느끼면서됨오

직숨소리와발소리그리고느낌으로대화하면서묵묵히가고있다.늦가을해가산을넘기시작하면하루의

일을마무리하고제집찾아빨리가려는듯뒤도보지않고바삐산을넘는다.구산벌의곧게펴진신작로위에

내려앉은석양은점점어두움을더해간다.

누군가지나가는버스의차창을열고검은머리를조금내어놓으면서색갈을구별하기힘든얇은비단같은목

도리를나를향해흔들어주며지나간다.누구인지는알수없지만어느부자집따님여학생이서울에갔다오는

길에이벌을지나면서집덩이같이나무를해싣고우차를몰고가는한소년에게낭만적인동정을표시하는것

같았다.저녁물길으려철뚝옆우물가에모여끈에매단듯이줄따라지나가는기차를물끄러미처다보며하루

의정담을나누는촌마을아낙네들게먼길가는여행객들이빈손흔들어인사하는것처럼……그러는나도속마음

은그녀가누구일까떠올려보기도한다.혹시남대천뚝방길을걸으면서오가던등,하교길에서자주마주첬던,

그러면서나를좋아해주기를바라던그여학생이였으면하는공상에빠저보기도한다.

그러는한편으로는나도때가되면우차를몰고집으로돌아가는정든이삶의Plato(푸라토)의cave(동굴)에서

나와넓은세상을대하며지식을찾어갈기회가오려니하는막연한생각에잠기며이모저모로나대로방정식

을만들어보지만미지수가실수보다더많으니도무지풀수없는방정식이기에나의어리석음에핀잔을준다.

문득지난여름육촌아저씨와이랠의논을맬때에잠간휴식을취하며단어장을보고있을때,“야야,이놈아

꾀부리지말고논이나빨리매지,니(너)거게(거기에)앉아책본다고누가밥메게(먹여)주나.”하면서고함

지르며야단치던소리가비웃음처럼들리는듯도했었지.
어느듯벌을지나고홍제동구비진가파른언덕길을오르기시작한다.나는다시소와대화를나눈다.“야,이

고개를넘으면회산들판의평탄한길이나올테고이제는순조로히힘들지않게집으로갈수있으니힘내어올라

가자.그러면너도푹~쉬게될것이야”

몇일전대장간노인이잘갈아놓은넓은낫으로소의발목을꾸부려올려잡고발가락의발톱을깨끗이깍아

내고먼길나무실으려가려는발바닥에철징들을잘박아놓았다.소는묵묵히징박은발로자갈길을걸으면

서철컹철컹하는철발꿉소리를내며발꿉을앞으로꾸부려한발짝한발짝힘겹게언덕을올라간다.조금이

라도소의역겨움을덜기위해나도우차를앞으로밀면서소의걸음과속도를맞추어오른다.허덕이며올라가는

고개의신작로길에는어두워지는밤빛이무겁게내려와덮기시작한다.자갈이박혀흑벽돌처럼딱딱해진진흙

비탈길을철컹철컹하는소리를내면서오르는소의무거운발꿉소리가고개길의어둠을메운다.나는“이려~

이려~”하면서소를달래기위해소의등을손바닥으로몇번씩두들겨준다."이고개를넘으면곧바르고평탄

한들판길이펼처있으니참고힘내어걸어올라가자."하며타이른다

우리는(소와나)산넘어에는보다나은세상이우리를기다리고있으려니기대하면서철컥철컥소의철발꿉

소리에맞추어꿈꾸는세상에서부를노래의악보를그리면서나는고개를넘는다.

Harrisburg,Pennsylvania
October2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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