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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비밀

한여름

 

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전쟁이 주는 상처는 그것을 안고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아픔을 내적으로 삯인 채 어느 누구나 다름없다는 듯이 살아가게 만든다.

그것이 한 순간 어느 계기를 통해서 쏟아져 그동안 숨쉬기조차 힘겨웠던 것을 후련하게 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인류사의 큰 전쟁을 치르고 살아가는, 이제는 인생이 어떻다 라고 하는 것을 제법 느끼며 살아가는 호프만 씨도 그랬다.

자신의 12살 이후의 생애는 아무도 모르게, 지금의 여자 친구인 블랑슈만이 아는 정도로 그칠 뿐 그는 자신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해 본 적이 없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극장을 운영하다 은퇴한 후 76세의 그는 방송국에 우연히 출연을 한 계기로 뜻하지 않게 자신이 왜 고국 땅을 그동안 밟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이후 그를 찾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녀가 전해준 누런 봉투를 받게 된다.

봉투 겉표지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아우슈비츠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60년이 지나 자신에게 온 그 봉투 안에는 오페라타의 거장으로 불리는 오펜바흐의 미출간 원고인 ‘한 여름 밤의 비밀’이란 악보 원본이 들어있었던 것-

 

이 소식은 그 음악 원본에 대한 가치를 알아본 음악 관계자는 물론 출판사까지 눈독을 들이게 되고  방송기자 발레리는 그의 허락을 얻어 그 원고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출발한다.

 

한편 독일의 마인 강에  보트를 레스토랑으로 바꿔서 운영하는 터키인 식당에 괴한이 들어와 5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그 현장에 있었던 발레리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독일 경찰은 이 수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저자 얀 제거스에 의해 태어난 형사 마탈러 시리즈에 속하는 이 소설은 독일이 안고 있는 역사의 아픈 부분인 유대인 학살을 다룬다.

 

언뜻 보기에 저작권에 대한 이익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는 설정을 독자들은 상상을 하게 하지만 이는 겉모습을 봤을 때의 일이었고 실제 그 봉투를 갖게 되면서 벌어진 살아있는 자로서는 결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했을 존재였고 죽은 호프만의 아버지 입장에선 악랄했던 독일 의사의 만행을 교묘히 암호로 풀어 넣어 두었던 악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이미 저승에 있는 자와 산 자간의 대결은 무고한 희생자들과 경찰의 희생까지 겹치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 여러 이민족들의 등장, 그리고 익명으로 살아가는 전범들의 행태와 배신, 형사의 개인적인 일들이 복합적으로 벌어지면서 시간 다툼을 급박하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독일의 과오를 뉘우치고 행동하는 양심을 보면 지금의 이 책에서도 나오는 마탈러의 심리를 통해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누구나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는 있지만 깊게는 알고 싶지 않은 평범한 독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마탈러의 시각은 악보가 전해주는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또 다른 사건의 실체를 접하는 놀라움, 여전히 전범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독선에 갇혀 떳떳하게 당시의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의사 표현들이 추리 스릴러의 맛도 느낄 수가 있지만 계속해서 역사의 한 부분을 공개하고 연구하면서 보전하려는 움직임들을 보는 계기를 알게 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수사 결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룰 수는 없었던, 헛헛함만 남긴 채 마무리를 지은 것도 마탈러의 입장에선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지만 호프만이 비로소 고국 땅을 밟게 되고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한 심정 속에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봄으로써 부모를 이해할 수 있게 한 사건들의 진행이 인간이 겪는 전쟁의 상처를 과거와 화해할 수 있는 계기의 장치로서 오펜바흐의 악보를 매개로 이끌어낸 작가의 의도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정당성을 외치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어떤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자신들의 과오를 통해 또 다른 문학 작품 속에 녹아낸 그들만의 용기가 다시 부럽게 느끼게도 되는 두 가지 느낌의 책을 읽었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