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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

브러드온스노우

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흔히 말하는 마니아란 말에 대해서  그다지 이런 명칭을 즐겨하진 않지만 이 작가에 대해서만은 주저 없이 말하고 다니는 나, 먼저 도착하는 신착에 대해선 내가 우선적으로 읽은 후에 가족들에게 주는, 그런 요 네스뵈에 대한 사랑은 짝사랑이긴 해도 전혀 외롭지 않은 짝사랑을 여전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를 연상하면 떠올리게 되는 벽돌 두께와 견주어도 전혀 꿇리지 않는 그의 책들은 지루함은 노~, 스릴 만점과 해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연민과 애타는  안타까움, 그리고 모든 것을 제대로 평정해 놓는 그만의 독특한 북유럽 세계를 맛 본 독자라면 이해를 충분히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제대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우선 두께면에서 그렇고, 내용면에서는 해리를 배제한 ‘아들’이나 ‘헤드 헌터’를 이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했다는 점, 그럼에도 내용 전반에 흐르는 갖가지 감상들을 고루 느끼게 하는 책이란 점에서 흥분을 일으킨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펄프픽션’에 대한 흥미를 느낀 상태에서 이 책에 관한 내용을 비행기 안에서 순식간에 썼다고 한 말에서 보듯 그의 창작력은 어디까지 한계를 그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무겁고 진중한 해리에 대한 단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1975년 오슬로에서 살아가는 올라브 요한센의 독백 형식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란 인간은 천천히 운전하는 데 서툴고, 버터처럼 물러 터진 데다 금방 사랑에 빠지며, 화나면 이성을 잃고 셈에 약하다. 책을 좀 읽기는 했지만 아는 게 별로 없고 쓸 만한 지식이라곤 더더욱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속도보다 종유석이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p14

 

이렇듯 자신에 대해 표현한 것처럼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킬러란 직업을 가지고 일할 때뿐이다. 청부 살인 의뢰를 받고 죽여야만 자신의 삶을 유지해 가는 그의 삶에 대해선 그 자신은 불만도, 사랑도, 그 어떤 불편함을 가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랑에 휘말리는 그-

상대는 자신의 부인을 죽여달란, 오랜 청부 의뢰인이자 ~나리~로 부르는 호프만의 청부살인 명령이었다.

 

호프만의 집 건너편 호텔에서 부인 코리나를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우면서 그는 호프만의 명을 어기고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되면서 그녀를 자신의 집에 같이 오게 되고 사랑에 빠지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원래 이 책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쓴 이야기로 나오는 설정으로 구성이 되었지만 독립적으로 나오게 되었고 곧이어 후속편인 ‘미드나잇 선’ 으로 이어질 예정이란다.

 

비장하고 냉철함을 유지해야만 하는 청부살인 업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읽다 보면 올라브란 인물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직업으로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우선 들게 된다.

포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마리아를 지켜주고 죽인 자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자, 그럼에도 엄마를 괴롭히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 사랑에 빠짐으로써 본격적으로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철두철미한 일의 절차 속에서도 내용의 촘촘함이 없는 , 그것이 책의 두께와 연관이 되어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왠지 그런 그를 감싸 안아주고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벌어지는 일들이 청부살인서부터 사랑을 하게 되면서 자신과 그녀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살인계획을 세우는 일,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벌어지는 교회의 총격전, 뒤를 이은 배신, 흰 눈 속에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붉은 피의 속절없는 흡수성이 이 책의 전반을 감싸고도는 이미지를 드러내 준다.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는 그 추운 겨울에 한개피씩 피던 성냥이 토해내는 붉고 노란 불빛을 통해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장면을 보면서 행복함을 느낀다.

 

올라브가 마리아에 대한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한 채, 종이에 끼적였던 사실이 그의 머리 속에 생각하고픈 일의 연상 작용처럼 그려진 장면이 아파왔다.

작가의 구상이 이토록 짧은 단편에 속하는 책 속에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되, 그것이 결코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는 것은 한 가지 일에 연관된 일들의 다양한 변주로 이어지는 변화가 어색하지 않는다는 것이 크게 기인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요 네스뵈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 책이 아닌가 싶다.

 

읽다 보면 왜 저자가 펄프픽션에 그토록 매료되어 이 책의 구상을 이런 방식을 택해 썼는지에 대해 이해를 할 수가 있을 만큼 손에 쥐고 읽는 이상 손에 놓지 못하게 하는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단 생각이 들게 한다.

 

추운 것은 딱 질색이지만 저자가 표현한 극과 극의 대비처럼 연상되는 흰색과 빨간 색으 대비가 이토록 계절과 맞아떨어짐으로써 더욱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장치로 거듭날 줄이야….

 

역시 요 네스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