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6년 4월 28일

빅 마운틴 스캔들

스캔들

빅 마운틴 스캔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4월

《그림자》, 《너는 모른다》, 《마리오네트의 고백》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작가가 지향하는 글의 내용을 훨씬 더 잘 알 수 있는 작품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추리 소설들이 그렇지만 읽는 독자들의 두뇌 싸움을  유도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전혀 뜻밖의 사실들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장치를 주로 이용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저자가 추구하는 내용들은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작과는 달리 이번엔 자연의 대표적인 ‘산’을 배경으로 이루고 있는 책이다.

 

주인공 뱅상은 프랑스 동남부 지역에 있는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에서 산악 가이드로 프리로 일하고 있다.

한 곳에 정착하기보단 계절에 따라 등산객들이 원하는 코스를 설명과 함께 안내를 해주면서 한 해에 해당되는 돈을 모으고 앙콜리라는 산장에서 아끼는 개와 함께 살아가는 41살의 남자-

그런 그에겐 5년 전 눈 맞은 관광객과 함께 도망간 아내 로르가 있고 그 충격으로 인해 로르에 대한 복수와 상처의 충격을 하룻밤 상대로만 하는 여인들을 통해 해소하려는 생활이 주를 이룬다.

 

그러던 중 여행사 직원인 미리암과의 관계는 그녀의 자살로 이어지게 되고 좁은 마을에선 그에 대한 차디찬 시선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인 공원 관리직원인 피에르마저 비난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한편 메르캉투르 지역 군인 경찰대에 배치받은 초년병 군인 경찰 세르반은 지리도 잘 익힐 겸 뱅상에게 가이드를 부탁하게 되고 점차 둘은 동료로서 친근감을 쌓던 중 피에르가 죽은 채로 발견이 된다.

 

절친한 단짝 친구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으로 인해 뱅상과 세르반은 익명으로 받은 편지를 통해 사건의 배후에 어떤 이상 징후를 느끼고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나가는데…..

 

과연 프랑스 최고의 권위 있는 추리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저력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실제로 저자 자신이 배경이 되는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실체를 다룬 이야기의 소재로서 그녀의 글에 대한 역량을 잘 발휘한 책이 아닌가 싶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천태만상의 묘사, 계곡과 현기증이 나는 현상과 험난한 여정을 통해서 느끼는 등산의 맛, 그 가운데 여자라면 믿질 않게 된 뱅상이 세르반을 만나고 나서 그녀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되는 사랑이 세르반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성 정체성과 겹치고, 이후 그녀가 그에 대해 느끼는 사랑의 변화까지 곁들여져 있는 책이기에 기존에 느껴보지 못했던 로맨스가 살짝 가미된, 그러면서 그녀의 주 특기인 인간의 심성에 내재해 있는 변화무쌍한 암투와 비리, 비밀 폭로와 그 피해를 본 사람들, 뱅상 아내의 비밀, 그리고 여기엔 마리오 영감의 보이지 않는 미지의 힘까지 보태지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설정들이 추리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코냑 추리소설 대상 수상작인 ‘빅 마운틴 스캔들’ 이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그녀가 다루는 인간들의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자신들의 죄, 혹은 자식의 죄를 감추려는 부모로서의 결단력들이 어떻게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지의 한계에 부딪치는 한정 공간에서의 사투 장면이 여전히 매력을 발산한다.

 

기존의 작품들이 한 곳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숨 막히게 느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작품에서 보이는 배경이 산이란 점, 그렇지만 결코 자연도 그렇게 호락호락 인간에게 친절만 베풀지 않는다는 깨우침과 함께 피에르의 죽음을 둘러싼 사소한 작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연결의 고리가 깊어지면서 이를 막으려는 인간들의 비 인간성을 제대로 포착해서 그린 또 하나의 그녀의 대표작이란 생각이 든다.

 

항상 그렇지만 그녀의 작품에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무사히 사건의 해결을 마친 주인공들의 행보를 통해 독자들은 여전히 책을 덮고서도 아련한 심정을 갖는다고 해야 하나?

이 책에서도 모처럼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느껴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안타깝게 그려내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선 사뭇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프렌치 스릴러의 여왕’, ‘프랑스 심리스릴러의 아이콘’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름만큼이나 매 작품마다 새롭게 보이는 그녀만의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이 책 또한 실망을 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