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동급생

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인류사에 전쟁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언제 읽거나, 보거나 들어도 참혹함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이상적인 야망과 권력을 쥐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전선으로 몰아내고 그 최후의 마지막 보루까지 놓지 않으려는 구심점에 서 있던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은, 지금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하물며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념이나 논쟁, 그리고 자신에게 닥칠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를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들이라면 이런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만 했을까?

 

제목이 주는 ‘동급생’이란 느낌이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친구’나 ‘동무’란 단어 이상의 그 무언가를 넘어선 느낌마저 드는 이 책은 저자의 인생관과 닮은 듯도 하지만 자신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유대인 출신의 그 나름대로의 고충을 겪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최초로 부모로부터 떨어져 같은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시기는 유치원 시절부터의 ‘친구’란 개념이 아닐까 싶은데, 그 ‘친구’란 개념은 점차 나이가 들게 됨에 따라서 자신과 같은 취향, 생각들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이가 깊어지고 ‘우정’이란 것으로 발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독일 슈투트가르트가 배경이 되는 곳에 의사인 동시에 랍비 집안 출신인 아버지를 둔 한스 슈바르츠는 유대인이다.

반에서 외톨이고 자신의 생각을 같이 공유할 친구가 없는 그저 그런 생활을 하던 중, 새로 전학 온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허튼 동작 보이지 않고 절도 있고 품위 있는 향기를 풍기는 콘라딘에게 한스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을 보여줌으로써 우정을 이어가게 되고, 그러면서 둘은 종교, 예술, 철학, 문학, 또래 여자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내게 된다.

 

어느 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된 한스는 아버지가 콘라딘을 보고 취한,  생각지도 못한 행동과 말 때문에 콘라딘에 대해 부담감 내지는 불편함,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거리를 두게 된다.

 

학교 생활을 하는 가운데 전운의 기운은 이미 이 지방까지 퍼지고 유대인에 대한 본격적인 차별이 시작될 즈음 한스는 부모의 명에 의해 미국으로 유학, 그곳에서 법을 전공하고 변호사로서 성공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책의 두께는 얇다.

단편이라고 알고 읽기 시작했으나 장편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주는 것, 더군다나 마지막 반전을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이 책에 대해 찬사를 했던 유명 인사들 중 한 명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에 대해 적어도 전쟁이 주는 참혹함이란 경험을 하지 못했지만 그 아픔만은 느낄 수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을 타인이 알아준다는 것, 내가 알고 그가 알고, 서로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그 공유를 한다는 것에는 이미 많은 것을 넘어서는 무한의 우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간략하고 단순한 문장들로 인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있으며, 독일 지역의 각 계절마다 변화하는 모습들의 표현이나,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동안 서서히 전조의 기운이 도사리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독자들로 느끼게 해 준다는 점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게 한다.

 

실제 저자 자신도 유대인으로서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안주하고 살다 갔지만, 이 책에서는 유대인이라도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버지와 한스 자신이 느꼈던 ‘고국’이란 존재에 대한 감정이 다분히 충동적인 것이 아닌 진정성 있는 독일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간 사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p 81

 

그럼에도 너무나도 우월한(?) 존재인 아리아인 민족에 대한 긍지가 넘치다 못해 세계사를 뒤흔들 히틀러란 존재로 인해 두 청소년의 아름다운 우정과 헤어짐, 그 자신은 미국에서 남들이 성공적인 삶을 이루었다고 인정하고는 있으나 정작 자신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용기 없는 부족함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념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의 진로가 바뀌어 살아가게 되는 아픔을 담담히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책의 마지막 반전을 읽고서야 다시 들춰보게 만들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나이 든 한스의 회상이 다시 머리 속에 그려보게 되면서 그들의 인생의 흐름과 우정을 다시금 아프게 그려보게 만든 저자의 글이 가슴속 깊이 칼에 한순간 베인듯한 날카로운 아픔을 전달해 준다.

 

첫 출간 연도가 1971년도임을 감안하더라도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정에 대해서, 그것이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이념 때문에 헤어지게 된 경우라면 두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의 말 못 할 아픔들은 얼마나 컸을까를 상상도 해 보게 되고, 이후 1977년 재 출간되어 인기를 끌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도 하는 만큼 다시 한번 펼쳐보게 된다는 말이 그저 선전 문구의 내용만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단편을 장편보다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처럼 장편 이상의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을 접한 것 하나만으로 오래간만에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는 책의 목록 한 권으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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