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7년 7월 20일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참을수 없는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역사라는 것은 승자에 의해 쓰였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들은 기본으로 삼아 알아간다.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는 많은 사건들을 접할 때면 지금의 현실과 비추어서 비교하고 토론하고 그러면서 역사관을 갖추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의 심각한 부분들을 아주 쉽고도 재밌게 다루고 있다.

 

그만큼 역사란 말에 대한 중압감을 벗어나며 좀 더 가깝게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처음부터 이 책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이야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거나 공통된 부분들을 갖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저자의 말처럼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읽어야 할  사건들이 많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역사의 한 부분을 다룰 때 이름이 붙여진 사건이나 날짜. 인물들에 연연하지 않고 그림과 연표, 심지어 그 흔한 지도도 없이 읽어 나갈 수 있는, 말하자면 저자의 책 제목처럼 세계사를 농담처럼 다룰 수 있게 한 점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렇다고 농담 따먹기 식의 이야기는 아니고, 예를 들어 14세기에 유럽인들을 공포에 몰아버린 흑사병, 인쇄기의 발명으로 인해 대중들이 갖게 되는 시대의 인식과 르네상스의 부활, 상식처럼 여겨지는 인간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글들은 독일 최대의 부수 신문 〈빌트, 유수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는 경험이을 고스란히 녹여낸  책이 아닌가 싶다.

 

– “역사는 객관적 진실을 붙잡는 학문이 아니다.  역사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관점으로 정리된 결과이다. 사실로 가득한 한 무더기의 서류철보다 동화 속에 더 많은 진실이 응축되어 있을 때도 있다.”

 

단숨에 살펴보는 46억 년의 이야기”는 간략하게 요약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큼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알아가는 세계사에 대한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 특히  ‘서양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를 논하는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들 중에는 종교를 빼놓을 수가 없는 만큼 바울의 업적을 높이 사고 있는 부분들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의 의미와도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게 한 대목이다.

 

세계사의 변화를 알고는 싶으나 부담을 갖는 독자라면 이 책 한 권으로 우선 시작해보는 어떨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다시 펼쳐서 읽는 재미도 있고 몰랐던 부분들은 이번 기회에 알아가는 재미도 주는, 다양한 주제에 걸맞은 저자의 시종 유쾌하면서도 가볍고 그런 가운데 진중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살아있는자수선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이승에서 태어나 저승을 가는 우리들의 인생에는 참으로 많은 굴곡들이 있다.

이별이란 말이 통칭하는 그 의미 안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연들이 있지만 특히 장기 기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통해서 또 한 번 삶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본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지방의 어느 의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평소에 자신의 소신대로 서약했던 장기기증을 한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장기 기증 서약이란 말이 흔하게 들려오고 들어봤지만 이때만큼 큰 충격을 받은 적도 없던 것이 내가 알고 있던 장기기증의 범위에 관해서였다.

막연히 알고 있던 중요한 장기는 물론이고 이 의사는 생전에 뼈까지도 모두 기증을 한 상태란 점, 그때서야 아! 장기 기증에는 사망선고를 받은  목숨 전체가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19살의 시몽 랭브르는 친구 2명과 함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핀을 즐기는 청년이다.

책의 표지에도 나와 있지만 파도의 강약의 세기와 심장의 높낮이를 드러내는 듯한 그림이 곁들여져 있기에 이 책에서 의미하는 바를 십분 느끼게 한다.

 

서핀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차 사고를 당한 채, 응급실에 실려온 시몽-

사망선고를 받고 곧바로 부모와 함께 의사는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은  섬세하게 다룬 문체가 시종 24시간을 그리고 있으며, 그 안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사연들을 지닌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자, 장기 기증 서약을 받고 이행하기 위해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의사, 금 같던 내 자식이 어느 날 한 순간에 식물인간 취급과 함께 장기기증자로 선택받는 과정을 겪는 부모들의 비참한 마음의 심정이 고스란히 내보인다.

 

– ‘개죽음은 아니다, 이건가요?
알아요. 다 압니다. 이식 덕분에 생명을 구할 수 있고,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린, 그게 시몽이란 말입니다.
우리 아들이요. 이걸 이해하겠소?’-157p

 

삶과 죽음은 종이장 한 장 차이라고도 하지만 막상 내 자식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이런 일들을 당하고 있다면 과연 나는 이런 수락을 흔쾌히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는 선뜻 내킨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죽음에 관한 것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시몽의 부모처럼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면서 장기기증을 허락하기까지의 과정이 읽어나가기가 참 어려웠던 책이기도 했다.

 

책은 장기기증과 장기 기증을 수락하는 부모와 의사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진행 과정, 장기 기증을 받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게 그린 작가의 글이 시종 가슴을 울리게 했다.

 

한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또 다른 삶으로 태어난다는 사실 앞에서 이 소설이 표현하는 내용들은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고, 또 그런 의미에서 장기 기증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책이 아닌가 싶다.

 

 

다음 사람을 죽여라

다음사람죽이기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남미 문학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마술적 리얼리즘을 연상한다.

유명 작가의 작품들의 대표작들을 시작으로 떠오르는 연상이 바로 이러하고 이러한 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 작품으로 인해 그런 각인된 시선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도 싶은  작품을 접했다.

 

스릴, 추리물. 특히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심리를 주제로 다룬 책들은 어떤 활발한 활동의 범위가 아닌 지극히 한정된 공간 안, 내면에 감춰진 그 어떤 것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충격과 반전, 그리고 액션 지향의 활자가 아닌, 그러면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의 포인트를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주인공 테드는 아내와 딸을 놀이공원에 놀러 가게 하고 집안에 홀로 남아 자살을 이행하려고 한다.

권총을 집고 자신에게 쏘려는 순간 누군가가 계속 문을 두드리며 자살을 방해한다.

 

문을 열고 보니 린치란 남자가 있었고 그는 자살을 하느니, 누군가를 당신이 죽여주면 또 다른 누군가는 당신을 죽여줄 것이다.  이런 제안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실 나 스스로 자살을 해서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기느니 차라리 누군가에 의해 죽는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상심의 고통은 덜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테드-

 

 

린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 이후 자신에게 올 그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데,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진행상황을 거치며 독자들을 어지럽게 만든다.

 

이러한 전개의 과정이 테드가 만들어 놓은 환상이란 점, 테드를 상담하는 의사 로라의 주도하에 그가 감추고 있는 진실에 다가서면서 그가 왜 이토록 괴로워하는지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책은 인간의 의식 속에 숨겨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끔찍한 기억을 간직하기보단 피해보려는 의도적인 행위와 그 행위를 통해 과연 테드에게 벌어진 일들은 어떤 것이 진실이고 환상에 그친 부분들은 무엇인지를 도통 헷갈리게 하면서 책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읽어나갔나 하는 의심마저 부여한다.

 

테드가 보았던 주머니 쥐의 출현, 과연 아내와 자신이 죽인 자인 웬델과의 불륜은 사실인지, 린치가 말한 사실대로 실행에 옮겼지만 정작 린치란 사람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도입 부분부터 강렬하게 와 닿았지만 이토록 반전과 반전, 미리 이런 류의 책들을 통해 대강 진행의 예상 정도는 하고 읽지만 이 책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읽어보면서 같이 의논을 하고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하는 책들은 드문데, 이 책은 그런 범주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리뷰를 쓰는 데에 있어서 스포를 하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독자들이 상상하는 그대로의 예상을 허무는 반전의 맛을 즐기시라고~)

 

 

저자가 오랜 구상 끝에 다듬은 글의 진행이 확실히 인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작가 미쓰다 신조가 말했듯 ‘독자의 모든 예상을 가차 없이 배신하는 소설’이라고 했던 말이 결코 그저 허투루 한 말이 아님을 증명해 준 책이다.

 

첫 구절을 읽는 순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심리 스릴을 원하시나요?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단연코 압권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책에 한 표를 던질 수 있게 하는 책, 여러분도 지끈하고 무더운 이 계절을 잠시나마 탈피하고 싶다면 기억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가는 테드와의 여행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