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인간에게 있어서 음악이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흔한 말로 실연을 당한 사람들은 유행 가사의 가사들이 하나같이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낄 때가 많고 어느 한 구절을 특정해 기억해내며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줄 정도의 음악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음악이 주는 다양한 역할은 실로 크다고 느끼게 된다.
뮤즈의 신, 인간에게 어떤 음률과 선율을 주고 익히게 하는 과정에서 발전되어 온 음악의 신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어 했을까?
사실 가장 기본적인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클래식에 관해선 유명한 구절만 약간씩만 알뿐 그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외한으로서 모처럼 음악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를 접했다.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온다 리쿠의 신작, 제목도 꿀벌과 천둥이다.
언뜻 보면 제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제목 안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과연 무엇일까?
음악 중에서도 클래식, 그 가운데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보인다.
전 세계 다섯 개의 대도시에서 진행되는 오디션으로 시작되는 대회, 그중에서 일본의 요시가에 에서 벌어지는 대회는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이 콩쿠르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음악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인 것처럼 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들은 모두 음악이 곧 자신의 인생이고 시작이며 그 힘든 과정을 무던히 이겨나가며 참가한 사람들이다.
이들 참가자 중 참가한 16살의 가마자 진-
양봉업자인 아버지를 따라 일정한 교육도 아버지로부터 받고 있는 학생이자 한없이 순수한 청소년이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심사위원들은 특히 그가 유지 폰 호프만이 타계 전까지 직접 찾아가며 가르쳤던 제자란 점, 스승의 음악 패턴을 따라 하지 않은 과감한 음악 연주 때문에 합격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게 하는 존재로 비친다.
세계적인 거장으로서 얼마 전 타계한 유지 폰 호프만이 보내온 한 장의 추천서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한다.
여러분에게 가자마 진을 선사하겠다.
말 그대로 그는 ‘기프트’이다.
아마도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시험받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이자 여러분이다.
그를 ‘체험’하면 알겠지만, 그는 결코 달콤한 은총이 아니다.
그는 극약이다.
개중에는 그를 혐오하고, 증오하고, 거부하는 이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진실이며, 그를 ‘체험’하는 이의 안에 있는 진실이다.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는 여러분, 아니, 우리에게 달려 있다. (‘녹턴’ 중에서)
클래식계에서 고정되다시피 한 불문율을 어기면서 자유자재로 음악을 다루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합격이냐 불합격이냐에 대한 진퇴양난에 빠진 심사위원들의 고충은 음악을 한평생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여기에 각 참가자들마다 갖고 있는 사연들, 또한 흥미를 유발한다.
유명 인사의 제자로 능력이 출중한 일본인 혼혈 마사루, 28세의 악기점 회사원인 다카시마 아카시, 한때 천재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으나 엄마의 죽음 이후로 잠적하다시피 은둔 생활에 접어들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던 에이덴 아야까지 , 이들을 중심으로 총 3번의 본선 진출을 가기 위한 경연의 진행 과정과 최종 본선에 오르면서 그들이 펼치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장면을 끝없이 보여준다.
애제자로 남길 원했지만 받아들여주질 않았던 유지 폰 호프만이란 스승에 대한 경도 외에 서운함, 그 가운데 가자마 진 이란 청소년의 때 묻지 않은 음악으로 하여금 음악이 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아야의 깨우침, 그리고 평범한 집안의 한 가장으로서 자신의 꿈을 뒤로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아가시가 평소에 느꼈던 음악에 대한 신조를 통해 이 책은 경연이란 장치를 펼치고 그 안에서 마음껏 자신들이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던 음악이란 것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게 한다.
클래식 경연대회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이처럼 피를 말리는 과정이 있음을,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그 당시의 분위기와 체력의 안배, 곡 선정이라든가 피아노 조율사의 중요성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저자의 세세한 표현은 시종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인다.
상대의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모자란 점을 알아내고 다시 다듬는 정신의 숙련 과정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알듯 모를 듯한 청춘들의 로맨스, 가자마 진이 펼치는 음악의 향연은 비록 책 속이었지만 독자로서 그 현장에 가보고 직접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표현은 압권이었다.
음악을 밖으로 꺼내어 나오라는 뜻, 스승 유지 폰 호프만과의 대화를 기억하며 스스로에게 어떤 음악을 표현할지에 대해 심사숙고를 하는 가자마 진이란 인물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부족함이 있었기에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집중력을 과시하며 연주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사뭇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음악이 주는 전개 과정이 하나의 맞물림처럼 이어지는 흐름이 즐거움을 선사한다.
– 하지만 굉장히 어려울 거야. 진정한 의미로 음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음악을 가둬두는 건 홀이나 교회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이야. 경치가 아름다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해서 ‘진정’ 소리를 데리고 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했다고 할 수 있을까? -p305
책을 통해 음악이 주는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책, 바로 유지 폰 호프만이 말했던 가자마 진은 과연 기프트였단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경쟁도 사소한 시기심도, 질투도 그 어떤 모든 것도 넘어서 하나의 일체감을 불어넣을 수 있은 매개체라는 사실, 인간에게 과연 음악이 없었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갔을까를 궁금해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경연 대회마다 연주하는 음악의 제목과 그 음악을 만든 음악가의 배경은 물론 특히 음악을 통해 하나의 그림처럼 묘사한 부분들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하나의 커다란 구상과 그 안에서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이끌 수 있는 인간이 가진 힘, 거기에 자연의 소리인 꿀벌과 천둥처럼 몰아치는 피아노란 악기가 가진 그 괴력의 소리는 우아함의 극치였다고 말하고 싶은 책이다.
읽으면서 저자가 상당한 조사를 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글 하나하나가 모두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 만큼 감동적인 책, 아니나 다를까 첫 구상으로부터 12년, 취재 기간 11년, 집필 기간 7년이 걸렸다고 하니 2017년 제156회 나오키상 수상작, 서점대상 2회 수상’이란 타이틀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처럼 책에 나오는 클래식을 찾아 들으며 읽었다.
그만큼 음악의 표현이 정말 궁금하게 만들었고 저자가 그린 문체의 세계가 음악과 맞는지를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던, 모처럼 귀가 호강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