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처음 책 표지의 제목을 보고 무릎을 쳤다.
어쩜 이리도 현실적인 말을 제목에 달 생각을 한 저자의 센스도 그렇지만 이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이 남의 일이 아니었기에 더욱 공감하며 읽었다.
어릴 때는 몰랐던 느낌들, 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거나 지병을 앓고 게신다는 말들이 들려올 때면 그렇거니 하며 지나치곤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삶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젊을 때와는 다른 시야가 됐을 때, 장성한 자식들이 이제 내 손을 타지 않고 저마다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 이제는 조금 편하다 싶었을 때 전혀 뜻밖의 새로운 일을 겪게 된다면?
– “자식 다 키워서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앞으론 부모를 돌봐야 해.”-P 83
내 부모님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 병을 앓아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별일 아니란 듯이 생활하실 것이란 생각에 쐐기를 박는 일들이 닥친다면 과연 나, 아니 자식 된 도리로서 겪게 되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과 실천들을 할 수 있을까? 를 되돌아 묻게 되는 책이다.
이제는 흔한 병으로 치부되다시피 하는 치매라는 병-
이들을 돌보는, 당해보지 않은 당사자 앞에서는 그 어떤 위로조차도 위안이 되지 않는 힘겨운 레이스를 총 8편의 단편으로 엮은 이 책은 가족 공감단이란 말이 어울리듯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가질 않게 한다.
치매의 특징이 나는 편하고 행복해도 이들을 마주하고 돌보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는 자녀들의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거기에 아무리 국가적인 해결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병의 해결 앞에선 여전히 깊은 고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책 속에는 다양한 환경에 처한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고뇌, 해결 방안을 통해 어떻게 나의 부모님의 병을 인정하고 실천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곁들이고 있다.
식사를 끝내고도 바로 언제 밥을 줄 거냐며 며느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시아버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조차 모른 채 책장의 책들을 모두 꺼내어 발 디딜틈조차 없게 만드는 모습들, 자신의 아버지만큼은 치매가 아닐 것이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들의 모습, 아버지 죽음 뒤에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다가 치매에 걸려 결혼하지 않은 딸과 살게 된 엄마, 사위를 볼 때마다 수시로 바뀌면서 불리는 호칭들, 과거에 매여 지난 이야기를 마치 현재 겪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모들….
책 속에는 부모 만이 아닌 고령의 이모들을 돌봐야 하는 젊은 조카의 이야기, 남편의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홀로 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아내의 심정, 젊었을 때의 활기차고 유머 있던 아버지가 끝도 없이 한 음식에 꽂혀 요리를 하는 모습들까지, 치매에 얽힌 여러 모습들은 그 어떤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들이 보인다.
다양하게 변주하되 기본적인 문제인 나의 부모님이 어느 날 내 앞에 이러한 모습으로 오셨을 때 자식으로서의 마음가짐과 그의 대처 방안은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고민은 저자의 중간중간 담백한 글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동들을 보인 부모님의 모습에 아픔을 느끼게 했다.
모두가 소중한 사례들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면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던 큰 형님과 형수님이 어느 날 형제들을 모아놓고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를 모실 수 없다는 통보를 듣게 되는 다른 가족들의 처신을 다룬 이야기다.
각자의 생활 패턴이 다르고 형님이 꾸준히 모시고 있었던 그 고마움에 대한 것은 인정하지만 막상 다른 형제들에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손을 놓는 형님을 바라보는 다른 형제들의 현실적인 문제점들은 어떤 때는 이기적으로 보였다가도 현실이 녹록지 않은 상황을 생각하면 그들 역시도 쉽게 받아들일 수없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제목 자체가 ‘형, 뭐가 잘났는데?’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느 탤런트의 말처럼 모시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고, 형의 독선적인 행동들엔 다른 형제들 나름대로 답답한 점들도 있겠지만 여태껏 모시고 살아왔던 형에 대한 고마움 앞에선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다른 형제들이 번갈아가며 어머니의 재활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지만 만일 제대로 협력이 안되었다면 이 또한 가정 내의 다른 문제로 번질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라 결코 소설로 설정된 것에 그치기엔 아닌 소재란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일본에서의 고령화 시대는 이미 우리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고 더욱이 문제가 되는 점들 중 하나가 요양원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조차도 모른 채 막연히 손 놓고 기다리는 실정, 실제 책 속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그려놓은 것들이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게 다가온다.
막상 시설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금전적인 문제와 기저귀의 남용들은 환경 문제로까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현재 우리나라도 치매와의 전쟁이란 말이 있듯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해결방안은 물론 개인들마다 처한 환경이 모두 다르기에 보다 빠르고 원활한 문제 해결 방안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문제, “결구 왔구나”는 나 자신도 늙어가면서 부모님 또한 연로하신 분들이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병간호와 이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자세,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가 화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책이기에 모든 독자들이 한번 쯤은 읽어도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사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겸손함을 불러일으키는 ‘노년‘이란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