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9년 2월 17일

에일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에밀리에겐 아무

에일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최형아 지음 / 새움 / 2019년 1월

지금은 다문화 가정이란 용어가 익숙하고 시대적 흐름에 따른  인식이 많이 보편화돼서 혼혈2 세들에 대한 인상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이런 아픈 차별 어린 시선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인식하는 시대가 된 만큼 이 책을 통해 본 또 다른  한국인 혼혈  2세들에 대한 얘기를 읽어보게 됐다.

 

방송에서도 시사 프로그램이나 세계 각지의 사건들을 취재하는 방송 중엔 이런 부분들을 다룬 내용들을 접할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코피노’다.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인 이 말은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뜻하는데 한국 남성들, 특히 유학생 신분이나 회사의 일 때문에 현지에서 생활하던 한국 남자들이 필리핀 여성과 사귀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생긴 2세들을 지칭한다.

 

2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본국으로 돌아갈 때 엉터리 주소를 알려주는 등의 행동으로 오로지 2세들을 키우는 몫은 현지 여성들이 져야 한다는 현실이 착잡하게 다가온다.

 

책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낸 소설이자 현실적인 방안들을 검토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지금도 방송에서 한인들이 현지에서 실종이나 피살 사건을 통해 죽음을 다룬 내용들을 접할 때면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인에 대한 인식들도 생각해 볼 시점이란 생각에서 더욱 이 소설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같이 등장한다.

 

사업차 필리핀으로 떠난 형의 실종을 밝히기 위해 사건을 밝히는 과정 중 드러난 코피노에 대한 만남, 특히 가해자 신분이 현직 국회의원이란 설정 부분도 들어있어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적절한 배합을 통해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베트남이나 필리핀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한국 혼혈 2세들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이 소설뿐만이 아닌 시사 보도자료를 통해 알고 있는 만큼 한국 아버지와 현지 어머니들 사이에 태어난 2세들에 대한 지원 정책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2세들의 막막한 현실과 시선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차별을 느낀 시절이 있었던 만큼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지 말아야 함을 경고한 책, 주인공 에일리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제목 그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다시 한번 크게 다가온 책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 1.2

세싱딸

[세트] 세상의 모든 딸들 1~2 세트 – 전2권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출판사 / 2019년 1월

이 책에 대한 기억은 3권에 이른 방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 특히 당시 읽었던 부분부분들에 대한 묘사들은 익숙지 않았던 시대배경이었던 만큼 저자의 묘사를 다룬 부분들은 타 책들보다 긴 호흡을 느끼며 읽었다는 것이다.

 

올해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며 스페셜 에디션으로 다시 만나본 이 책은 2권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구석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과거로의 흥분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인류의 정착시기 중 구석기 시대를 통해 그 속에서 살아간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에도 여성의 삶에 대한 연장선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 준다.

 

주인공 야난을 통해 바라본 그녀의 성장과 일생은  고집이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면에선 일찍부터 두드러진 성격을 가진 면을 보인 아이다.

 

가족이 모두 죽고 달란 동생과 같이 남겨진 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에 대해 야무진 삶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자세는 남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환경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수도 있었지만 당시 구석기 시대란 점을 인식하며 읽는 과정은 야난이 아버지 무기로 사냥을 하고 헤어진 부족과 자신의 약혼자를 찾아가는 여정은 본능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같이 보인다.

 

살기위해 늑대와 공동 연합을 하고 늑대가 떠난 뒤 다시 일족을 만나면서 남편 티무와의 결혼생활을 통해 새로운 여인의 삶을 시작하지만 야난은 이미 부족의 남자들이 매머드 사냥꾼들과의 사귐을 통해 난폭하고 여성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이에 굴하지 않는 강함을 보인 여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알아야할 임신의 징조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여건, 남편 티무와의 이혼을 선언함으로써 일족을 떠나버리지만 그녀의 한 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길로 들어서는 안타까운 여정을 보인다.

 

결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가했건만 엄마의 말처럼 어느새 자신이 여성이 걸어가는 일반적인 인생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보인 이 소설은 구석기 시대의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하는 행동들, 그 안에서  인간들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남성이 여성에게 행했던 일방적인 행동들을 보임으로써 여성들은 어떤 저항과 행동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지를 보인 책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의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원시인들의 원초적이고도 생생한 묘사와  주인공 야난의 인생을 통해  먹먹한 감동을 전해 주는 책,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하며 그 위대함 속에 여성만이 지닐 수 있는 강인함은 거룩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왕은 안녕하시다.1.2

왕은안녕

[세트] 왕은 안녕하시다 1~2 – 전2권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출간하는 작품 속에 담긴 유쾌한 유머와 촌철살인의 문장들을 통해 신작을 기대했던 만큼  저자만의 색깔을 지닌 입담은 여전함을 느낀다.

 

흔히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누구의 손에 의해 쓰였는가에 따라 후세들은 그 근간을 기본으로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그 안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해 취할 것을 취하는 배움의 자세를 지니며 살아간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승자의 손에 쓰인 역사 외에도 무명 씨의 손에 남겨진 작은 문장 하나라도 비교하고 다뤄봄으로써 또 다른 역사의 시선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바로 이 소설은 그 출발점이 타 작품과는 다르게 시작된다는 신선함을 지닌다.

 

 

기생방을 운영하며 재산을 전국에 뿌려놓고 사는 할머니 밑에서 사는 파락호 성형은 어느 날 스승의 심부름으로 송시열 집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데, 그 수위가  인간으로서 겪기에는 상당히 억울함을 지닌다.

 

개가 분출한 큰 것을 핥아먹기 일보직전 10 살 가량의 미소년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모면을 하게 되고 그 소년과는 의형제를 맺게 된다.

 

자신보다 한창 어린 그 소년과의 의형제 맺음은 그 사람이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왕은 자신과 맺은 의형제 약속을 결코 철회하지 않은 채 그를 궐내로 불러들여 벼슬 자리를 준다.

 

 

한낱 미천한 출신의 서자 출신인 성형이 바라본 당시의 세계란 그야말로 하루가 어떻게 뒤바뀌고 권세를 쥐고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는지를 목격하는 일들을 목격하는 일상으로 변해가는 세태를 느끼며 살아간다.

 

대왕대비와 대비, 중전의 죽음과 대비와 왕의 관계, 장옥정의 출현들은 비정한 궐내의 세계를 속속들이 알아가면서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 또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많은 문학 작품 속의 시대 배경중 하나인 숙종의 시대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시대였다.

선왕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오른 숙종이란 동생을 둔 성형이란 자의 눈에 비친 세상 사는 궐 내의 당내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 두 번의 예송 문제를 통해 서인과 남인의 자리가 바뀌면서 그 속에서 파리 목숨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당시 조선은 반정의 힘으로 오른 선대 왕의 자리 위치란 것이 강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숙종이 보위에 올랐을 때도 신하의 힘이 강하던 때였다.

 

책 속에는 많은 역사 속의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면서 당시 시대적인 당파와 성형이 흠모했지만 왕에게 자신을 맡긴 장옥정이란 여인과의 관계, 자신이 모시고 있던 스승들이 사약을 받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들, 바른말을 하는 인재를 죽이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여러 감정을 성형이란 인물을 통해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숙종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결코 피바람을 불면서까지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자신의 위치가 안녕해야 만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이 안녕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선택의 기로에서 과감성을 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 왕이란 실체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해맑고 순진했던 소년의 모습이 어느 순간 자신의 위치를 넘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때론 죽음으로, 때론 용서로, 때론 베개 송사를 통해 정사를 결정짓는 모습들을 보는 성형의 마음은 왕에 대해 안타깝다가도, 미워서 벼슬 자리에 물러나가면서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이런 그의 행동들과 말들은 뒤 편의 헤어질 때까지 모든 애증의 감정을 쏟아붓는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할 시원하고 맛깔스러운 말로 인해 사이다를 날리는 역할을 자처하는 성형이 오히려  왕은 자신의 속내를 가장 솔직하게 내보인 것을 아닐까?

 

 

– 한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의 뜻을 이길 수는 없어요. 한 사람의 뜻이 아무리 지당하고 그가 아는 게 많다고 하여도 언제나 옳을 수는 없고. 한 사람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만인을 얻어야죠. 그러면 저절로 그 한 사람을 이기게 돼요. – p.171

 

 

자신의 안녕을 위해 수시로 서인과 남인의 사이를 경쟁시키듯 교묘히 그들을 아용하며 왕권의 강화를 이룬 숙종이란 동생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형에게만은 진실로 보였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겐 자신의 위치라는 것이 있다.

그 모든 사람들마다엔 저마다의 역사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이 있듯이 성형의 눈에 비친 당시의 피바람 속에 그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역사 또한 소중한 법이다.

 

 

 

 

격동의 일변도 속에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속성과 권력에 대한 야망, 그 안에서 몸부림치며 살아내야만 했던 그 누군가들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 누군가의 삶은 계속될 수 있었음을, 저자는 역사적인 팩트 속에 가상의 인물과 실존인물들의 적절한 출현을 통해 새로운 역사소설을 창조해냈다.

 

 

성형이란 인물을 통해 조선 숙종시대를 그린 책의 내용은 천방지축 파락호가 무술을 연마함으로써 뛰어난 검객이 되어가는지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여인의 해바라기 사랑을 그 또한 옥정을 통해 실패한 아픔을 자신이 느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던 점은 실망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노량진 헌책방에서 우연히 건진 책을 통해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출발로 책 속에 책의 이야기처럼 구성된 장치,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형식을 취해 독자(나)로 하여금 실제처럼 여겨지게 만든 속임수 또한 유쾌하게 그려진 점이 인상에 남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역사는 이어지고 흐르고 있음을, 그 안에서 펄떡 살아 숨 쉬는 민초들이 살아남았기에 우리들이 있다는 사실을 성석제 만의 작품으로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