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레이하 눈을 뜨다

줄리에트줄레이하 눈을 뜨다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집으로 만나본 구젤 밀례브나 야히나 란 작가의 작품이다.

 

이미 차세대 유망작가로서 많은 수상을 한 작품이란 소개에 이어 러시아 역사의 한 축을 그린 유배 문학이란 점이 눈길을 이끈다.

 

15살의 줄레이는 45 살의 무지하트란 부농 출신의 남자와 결혼한 30대 여성이다.

알라신을 믿으며 이미 네 딸을 저세상에 보낸 어머니이자 눈먼 시어머니 우프리하로부터 천대와 구박을 온몸에 담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순종적인 여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가 다르게 집안의 양식과 가축들을 차출해가는 마을 지도부의 등쌀에 차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숲으로 종자씨를 숨기고 돌아오던 중 이그나토프가 이끄는 붉은 군대에게 심문을 당하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남편을 잃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전 재산 몰수, 시어머니를 남겨둔 채, 한 번도 떠나본 적도 없던 율바시를 떠나 강제 이주란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기차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부농인들, 레닌그라드의 지식인들, 범죄자들, 이교도들까지 모두 이들은 길고 긴 시베리아로 향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에 시베리아 강제이주를 시작으로 1946년까지 이르는 세계 역사 사건의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시대적 상황 속에 끈질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종교적인 신념 속에서 여성으로서 세뇌되어오다시피 한 무슬림 여성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시베리아 여정은 임신이란 기간, 탈주를 감행한 사람들 속에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뚜렷이 이어가지 못한 순종적인 여인으로 험난한 삶을 이어간다.

 

두 차례로 이어진  많은 사람들의 탈주와 생명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 생명력이란 힘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다른 인생을 부여한다.

간신히 도착한 타이가에서의 삶은 생명의 출산과 함께 힘들게 자연 속에서 각박하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곁들여져 정착지로서의 모습을 그려낸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아그나토프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스스로 자신 안에 내재된 사랑이란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려 애를 썼던 두 사람의 열정은 그녀 자신 스스로 아들의 앞날을 위해 거부함으로써 또 하나의 다른 인생의 삶을 이어나가는 여정은 인물들 간의 심리묘사와 시대가 요구했던 흐름, 그 안에서의 배신과 시베리아란 땅에서 심룩이란 마을을 이루기까지, 지난한 세월 속에  강제 이주자들의 노력과 저항,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고뇌, 예술가로서의 그림을 향한 열정을 그린 대서사시를 그렸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시베리아 사할린 강제이주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졸지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의 명에 강제로 새로운 땅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삶 속에서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신을 외면하면서까지(줄레이하) 버팀목이 되는 것은 뭐든지 붙들 수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투쟁이자 의지력을 드러낸 부분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간 줄레이하 란 여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녀의 아들로 이어진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출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 두께의 책 내용이 지루함 없이 이어지는 글의 흐름은 그동안 러시아 문학, 현대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독자로서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을 통해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면모들을 접하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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