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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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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이름은 몰라도 그림을 본다면 낯익은 것을 알게 되는 작품들-

체코가 낳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알폰스 무하의 책을 만나본다.

 

그에 대한 평가는 예술로만 대해왔던 미술을 실용적인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으며 그가 추구하던 예술의 변천사가 실로 다양해서 그림으로 접했을 때 작가의 의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체코에 속한 모라비아의 이반치제에서 태어난 무하는 어릴 적부터 온 집안을 낙서로 도배했을 만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를 졸업 후 아버지의 주선으로 재판소 서기로 일을 했지만 그림을 손에 놓지 않고 있어 마을 사람들 초상화나 지방 극단의 무대 배경들을 그리면서 보냈다.

 

그러던 중 빈으로 올라와 공방이나 극장에서 무대장치 만드는 일을 돕다가  귀족 쿠엔  백작의 후원을 받게 되었고, 쿠엔 백작의 동생인 에곤 백작의 도움으로 뮌헨 아카데미에서 종교화와 역사화를 공부할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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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파리에 입성한 그는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잡지, 책에 삽화를 그리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지내는데 어느 날 운명처럼 그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든 기회를 얻게 된다.

 

유명 배우인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한 연극 ‘지몽스다’의 포스터를 그린 것이 결정적인 대 히트를 치면서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이후 그는 사라 외에도 회화, 포스터, 삽화는 물론 보석상 푸케와 인연을 맺으면서 박람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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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무하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 파리에서 그의 명성을 드높이게 되고 미국까지 진출하면서 무하 양식을 선보인다.

 

슬라브인으로서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국에 대한 사랑과 역사를 생각하던 그는 말년에 체코로 돌아오면서 그의 대표작으로 남긴 슬라브 서사시 연작을 완성하였으니 그야말로 예술가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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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유명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그는 부유층이나 그들과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의 한정된 분위기를 벗어나 실용적이고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미술의 세계를 열게 한 장본인이다.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듯이 당시 자신의 고국이 처한 역사적인 아픔과 슬라브 민족들의 역사적 고뇌를 그림을 통해 보이고자 했던 노 예술가의 의지가 존경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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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그림 외에 실제 당시 구석구석 그의 작품들과 장신구들인 보석, 카펫, 벽지, 달력….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곳에 자신의 영감을 불어넣은 작가, 데생부터 시작해 미술이란 장르의 여러 분야에 도전했던 그의 재능이 오늘날에 와서도 왜 무하의 그림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책을 통한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마치 전시회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명성을 알리게 된 그림부터 연대작 그림, 그의 독특한 트레이트 마크처럼 다가오는 여인들의 모습은 책 한 권의 소장가치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그를 알아가는 시간을 준다.

 

알폰소 무하에 대한 것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양장본으로 다시 출간해도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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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미투 운동이 연일 기사에 오르내리고 이에 관련된 예술계의 유명 인사들, 그들에게 자신들이 당했던 수면으로 드러내 놓고 숨조차 쉴 수없었던 피해자들의 관련 내용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치부를 소설처럼 그려낸 내용을 읽는 동안 참으로 답답한 심정, 그러면서 소녀의 감성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를 생각하니 저자의 용기가 새삼스럽게 존경스럽다.

프랑스 문단의 유명 인사인 G의 나이 50대의 유명 작가와 14세의 성에 대한 상상과 한창 발랄할 시기인 소녀의 만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란 것도 모른 채 만남이 이루어진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잦은 불화는 이혼으로 이어지고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엄마와 살게 된 V는 편집자로 일하던 엄마와 함께 모임에서 그를 만난다.

엄마와는 다른 아빠란 존재의 부재는 어린 그녀에게 곧 G로 대체가 되고 그가 소녀에게 건넨 눈빛, 제스처, 그 이상의 모든 것들을 흡수할 수 있는 노련함이 결국 소녀로 하여금 그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한다.

 내 삶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를 남겨놓고 자리를 뜬 아버지. 독서 탐닉. 일종의 성적 조숙. 그리고 특히, 주목을 받고 싶은 거대한 욕구. 이제 모든 조건이 모였다. -P. 38

아직 성인으로서의 사회적인 기준이 충족지 못한 연령대의 소녀가 겪은 이런 관계, 그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것을 빨아들인 그의 논리가 참으로 민망스럽다 못해 분노를 자아낸다.

그의 소아성애자, 청소년 성애자 취향의 논리는 예술이란 이름으로 허울 좋게 가려지고 유명 문화인이란 명예는 소녀의 주장을, 오히려 G와 공모한 사람으로까지 오르내리는 그 과정들이 한 인간의 생을 이렇게도 무너뜨릴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특히 당시 프랑스 문단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금지를 금지한다’라는 68 혁명의 기치에 동승해  모든 것을 용인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들이 충격을 준다.

엄마라는 존재도 나이가 어린 딸이 그와 헤어질 것을 말했을 때 그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아느냐 식의 대화는 동. 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왜 가해자는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오히려 당한 피해자만 음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갉아먹어 더 이상의 소모조차도 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저자가 고백한 부분에서 더욱 드러난다.

공황발작,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엄마의 집으로, 자신의 직장으로 편지를 보내오던 그에 대한 그녀가 느낀 불안감과 같은 문화계에서 일하며 승승장구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지,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인 상대를 만나기까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G는 알기나 할까?

청소년들의 자기 해방을 위한다는 언변 좋은 주장에 모든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분위기, 30년이 지나서야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한 인간을 파괴한 것에 지나지 않은 ‘폭력’이었음을 말한 저자의 글에서 책 제목인 ‘동의’가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 부모 노릇이 힘에 부치거나 부모 노릇을 포기한 부모를 가진 외롭고 위태로운 여자아이들에게 눈독을 들일 때 G는 이미 그 여자아이들이 결코 자신의 명성을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는 자는 동의한 것이다.- P 242

저자가 말한 ‘동의’에 대한 위험한 경고는 비단 저자가 겪은 실제 일과 함께 프랑스 문단의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비단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이 사회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살아가는 속에서 사회 전체가 묵인하고 방관할 때 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공감하게 한 책이다.

 

서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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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서점에 들르게 되면 항상 계시던 주인아저씨, 아니 사장님은 사탕을 계산 등록기 옆에 두고 오고 가는 손님들의 손이 저절로 쑥 들어가게 하는 마술 아닌 인정이 담긴 마술을 보이곤 하셨다.

 

당시만 해도 용돈을 모아 곧장 읽고 싶었던 책을 사기 위해 들렀던 곳인데, 이제는 동네에 서점이란 찾아볼 수도 없는 곳이 많아졌다.

 

그나마도 동네책방이란 소신을 갖고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에 책을 접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반갑기 그지없고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책을 주문해서 받아 본  경험도 있는 터라 이 책을 접하면서 더욱 동네 책방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이란 까칠한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스코틀랜드 한구석의 잊혀진 땅, 위그타운에 자리한 중고 서점 ‘더 북숍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이다.

 

우연찮게 서점을 인수한 후 지금까지 중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나름대로의 일상의 느낌을 풀어낸, 일기 형식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한다.

 

흔하디 흔하게 책을 구입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인터넷 쇼핑을 통해 구매하는 추세가 대세인 이 시대에 신작도 아닌 중고 서적을 중심으로 구입하고 되팔고 다시 구입하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사연들은 가슴이 찡한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직원인 니키와의 투닥거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골탕(?) 먹이듯이 행동을 취하는 것들에는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 (2월 7일 금요일) 노리가 떠나기 전에 니키와 뭔가에 대해 열을 올리며 나누는 대화의 뒷부분을 듣게 되었다. 아마도 진화에 대한 얘기 같았다. 니키는 진화에 관련한 주제로 입씨름하는 걸 즐기는데, 그래서 종종 일부러 『종의 기원』을 소설 코너에 꽂아 놓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니키가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는 성경을 소설 쪽에 꽂아 놓는다.- p17 

 

서점에 들르면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손님을 맞는 것을 본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잠시 동안의 짧은 여유라고, 실은 책을 정리하고 가까운 우체국에 책을 소포로 보내고 전화로 책을 팔 의사를 전해오는 집을 방문해 어깨가 빠지도록 책을 차에 담고 오는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책을 통한 타인의 취향을 알게 된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게 된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책의 장소나 선택된 책의 종류, 팔려고 내놓는 책을 통한 이미 고인이 된 분에 대한 유족의 아픈 마음들을 솔직하게 다룬 부분에서는 일말의  나도 모르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책과 함께 하는 2월 초부터 시작되던 서점 이야기가  그다음 해 2월 초에 끝 이남으로써 책은 일단락되지만 읽는 동안에는 거리는 멀어도 마음만은 그곳 서점을 열심히 둘러보고 다녔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저자는 말한다.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저 책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차이가 있다는데, 실례로 쭉 훑어보고 그냥 나가는 사람과 한참을 둘러보고 책을 구매하는 사람 간에는 서점 주인으로서 대해왔던 고객에 대한 어떤 확고한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 겪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 또한 현실적이다.

 

컴이 발달하고 그 컴에 의지하는 부분들이 많은 지금 검색만 하면 툭 하고 나오는 많은 책에 대한 정보도 좋지만 인간 컴퓨터로써 자긍심을 가지고 일했던 선배들의 직업정신, 책을 둘러보면 어느 때에 출간이 됐고 양장인지 반양장인지, 같은 책이 개정을 거치면서 표지는 어떻게 바뀌었고 초판의 경우엔 어느 때 나왔는지 같은 인간의 지능이 가진 무한대의 정보 습득을 시간과 노하우가 겹쳐지면서 술술 뱉어내는 책 서점인들의 선배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아마존이란 거대 공룡이 휘두르는 정책에 의해 소신을 갖고 판매를 하려고 해도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타협(?) 앞에 출판사와 중간 서점,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의 상생 관계를 다룬 부분들은 도서 정가제에 대한 다른 점들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서점의 바깥 쇼윈도 창이 큰 이유가 책을 진열해 놓았을 때 시선을 끌기 위해서 필요하고 서점이 유독 추운 이유 중 하나도 내부의 공간이 따뜻하면 뿌연 공기로 인해 진열된 책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그래서 저자의 서점이 오래된 건물인 점도 있지만 이 같은 이유로 추울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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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하면서도 그 나라 나름대로의 운영방식이 다른 부분들을 통한 서점의 풍경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라 그 안에 담긴 365일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가 왜 까칠해질 수밖에(?) 없게 됐는지에 대한 사연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이렇듯 불평을 늘어놓는 저자가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이 위안이 독자인 나에게도 언젠가는 방문하고 싶다는, 이 책을 들고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노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2권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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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전2권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서평가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가 쓴 한국 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묶어 낸 책이다.

한국의 남성 작가, 여성작가로 구분해 나온 책의 목차들을 훑어보니 1960년부터 2000년대까지 고루 나뉘어 당 시대를 대표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우선 남성들의 작가들은 최인훈의 ‘광장’, 이병주의 ‘관부연락선’,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이승우의 ‘생의 이면’으로 분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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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넘어오면서 역사 속의 각기 다른 형태들의 작품을 통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들 속에는 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에겐 추억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에겐 지난 시절의 역사의 한 현장일 수도 있고 근대화 과정 속에서 허물어져 간 사람들의 관계 또는 지적 교양에 목말라하던 이들의 해갈을 조금을 씻겨 주었던 작품들까지 고루 담겨 있다.

책 속에 담긴 저자들의 작품들 중 읽어본 것도 있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놓친 작품들도 들어있어 저자가 쓴 내용들을 함께 보완해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단 생각이 들었다.

또 여성의 작가들이 쓴 작품을 다룬 책은 남성 작가의 작품보다는 많이 읽은 작품들이 눈에 띄어 반갑기도 하고 남성인 저자가 본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은 어떤지도 궁금했다.

강신재, 박경리, 전혜린, 박완서, 오정희, 강석경,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 황정은에 이르는 각 시대의 느낌을 대표하는 작품들은 남성 작가들 못지않은 구성을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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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굵직한 표현이 있는 작품들이 있다면 여성 작가들의 경우엔 보다 섬세하고 내밀한 감정의 표현들, 가족 관계나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 특히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란 작품을 통한 비평은 보통의 읽기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문학 작품을 읽고 작가가 그려보고자 하는 방향성은 나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느끼게 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 문장마다 각인이 되는 글들이 많아 마치 실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 점이 기억에 남는다.

*** 쿤데라도 이야기했듯, 소설의 미덕은 인새의 본질에 대해, 실존의 비밀에 대해 뭔가 더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이 무엇을 더 알게 해 주는가. 이미 아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해 줄지는 몰라도 더 알게 해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 엄마가 이런 존재라는 것은 이 소설을 읽기 전에도 다들 알고 있다. 그저 이 소설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할 뿐이다. 작가가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비밀이라는 것도 싱겁다. 쿤데라에 따르면 이런 소설은 부도덕하다. – p 261

모든 것이 그렇듯 비평이 있음으로 해서 보다 더 발전된 문학으로의 길을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남성 작가뿐만이 아니라 여성작가에 대한 넓은 시야의 글을 통해 미처 접해보지 못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과 함께 읽은 책을 그 나름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준 책이었다.

아직 한국 문학에 대해 생소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보다 폭넓은 작품의 세계를 만나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메리칸 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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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책을 통해 읽다 보면 실제와 허구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며 읽을 때가 있다.

인문계열의 직시적인 시점에서 다룬 실제의 상황이 문학이란 장르로 변할 때 독자들은 어떤 느낌으로 와 닿을지 이 책을 접하면서 생각한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의 전 대통령인 트럼프가 아메리칸드림으로 불리는 자신의 나라로 불법 이민 내지는 불법체류 형식으로 오는 남미 계열 나라들의 국민들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세웠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는 먼 나라의 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불법적인 방법을 하더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마지막 간절한 본능에 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멕시코 휴양도시 아카풀코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리디아는 기자인 남편 세바스티안과 9살의 루카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주부다.

가족들이 모여 즐기는 그날, 총성이 들려오고 그 자리에서 자신과 아들만 간신히 살아남은 채 16명의 가족들이 몰살당한다.

자신과 아들을 찾는 소리, 화장실에서 숨 막히던 그 순간을 벗어나고 미처 남편의 시신과 그 외의 가족들의 장례도 없이 바로 그 자리를 떠나 아이와 함께 떠난다.

왜? 무엇 때문에?

모든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자신의 책방 손님이자 책을 통해 가까워진, 우정이면서 남편과는 다른 사랑의 좋은 느낌을 간직한 하비에르 크레스포 푸엔테스, 일명 라 레추사라 불린 카르텔의 두목이 이런 일들을 벌인 당사자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에 대한 기사를 솔직하고 대담한 필치로 썼던 남편에 대한 복수이자 하나뿐인 딸의 자살에 대한 복수극…

경찰, 과학 수사원들, 심지어 버스기사까지 어느 정도 카르텔의 수하인 알콘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 나라를 벗어나 북으로, 북으로, 삼촌이 있는 미국에 가기 위한 여정이 필사적으로 펼쳐진다.

누구를 믿어야 하며 어떻게 도움을 호소해야 할지, 교통수단마저 모두 자신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현실 속에 그녀가 택한 것은 라 베스티아에 탑승하는 것이다.

‘라 베스티아(짐승)’

일명 중미지역의 난민들이 미국으로 향할 대 이용하는 화물열차의 별칭으로 불리는 기차를 타기 위해 고가도로 위에서 기다려 기차 등에 뛰어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난민 쉼터에서 잠깐씩 머무르는 여정이 숨 막히게 다가온다.

 

pimg_7136731162835833                                                          (다음에서 발췌)

 

거의 모두가 멕시코가 아닌 온두라스, 과테말라를 비롯한 주변 나라 국민들이 타는 이 기차 안에서 이방인이자 같은 동지애를 느끼면서 가는 길은 온두라스 출신 두 자매 솔레다드, 레베카와 함께 동행하면서 험난한 일들을 겪으며 미국을 향한 그들의 살아내야 한다는 본능이 독자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얼마 전 읽은 장 지글러의 책의 내용이 많이 떠올랐던 것은 난민이란 것을 악 이용한 사례들도 있지만 이들처럼 시시각각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그것이 자신의 모든 가족 죽음을 현장에서 봤고, 자신의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모성애의 본능 자극과 맞물린다면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말 이외엔 더 이상 그들에겐 목적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카르텔의 난폭한 일들을 겪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한 남성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솔레다드나 레베카가 겪은 일들은 그들 사이에 깊은 침묵과 트라우마를 안기며 강한 근성을 남기게 했지만 이마저도 가족들의 죽음이나 생사조차 모른 채 사막을 횡단하는 여정 속에 아픔을 지니게 한다.

저자가 그린 이 내용들이 비단 허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내세워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들의 목숨이 돈에 의해 결정되고 갈증과 허기,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모른 채 함께 움직이는 가운데 느껴지는 인간애를 드러내는 감성들은 막연하게 난민의 자격이나 난민들의 생활을 그린 보도를 통해 알고 있던 그 이상의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민자가 아닌 언제 이민 당국자에 걸려 추방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생활은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간직한 취재를 소설 속에 담아 그려낸 저자의 글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추방되어도, 다시 라 베스티아에 자신의 목숨을 걸며 뛰어내리는 사람들, 공존이  필요한 시대란 점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