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이 2009, 6, 27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42 기중 북한땅에 있는 제릉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과 후릉 (정종과 정안왕후) 을
제외한 40기가 한꺼번에 등재된 경사다.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융건릉을 요즘 들리면 낙엽밟기가 아주 좋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난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길수도 있고 맑은 공기도
마음껒 마실수 있다. 그리고 도시인에게 부족하기 쉬운 걷기운동도 할수 있고.
정조의 애닲은 효심에 눈물을 글썽이게도 하는 융건릉을 찾아 집을 나섰다.
길은 어렵지 않다. 1호선 수원역앞이나 병점역 후문에서 버스도 많고
자동차를 갖고 와도 주차시설도 좋고 과천- 봉담 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와서 이정표따라 오면 된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일이며 겨울철에는 09:00 부터 17:30까지가 관람시간이다.
어른 1,000원, 어린이 500 원으로 입장료도 싸다.
때아닌 진달래가 피었다. 벌 한마리도 날아와 있고…
요즘은 계절을 잊어버린 꽃들이 꽤 많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
이렇게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백하다.
출입구에서 왼쪽길로 접어든다. 건릉쪽으로 가는 길이다.
정조대왕과 효의왕후가 묻힌 곳으로 합장능이다.
건릉에서 융릉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약간 비탈진 길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서 정취를 더해 준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던 정조의 아픈마음을 잠시 생각 해 본다.
원래 경기도 양주 배봉산 (현재 서울의 휘경동) 아래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정조가
즉위한 후 이곳으로 옮겨 장조로 추존한뒤 융릉으로 능호를 높였다고 한다.
이렇게 정조는 아버지의 능 조영에 정성을 들였다.
여기서도 정조의 효심을 볼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서 일까?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단체관람객들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의 문화가 널리 알려진다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맏아들 효장세자가 요절하자 두살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매우 영특하고 글씨를 좋아하고 시를 잘 썼다고 한다.
융건릉을 돌아 나오면서 나는 또 감상에 젖는다.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서 죽다니….권력이란 참 비정한것이구나.
가보의집
2009년 12월 2일 at 7:49 오후
데레사님 좋은자료 었습니다!
마치 때아닌 벌의 출연 처럼 진달래가 피어나듯 말입니다
알지도 듣지도 못한 역사 공부
물론 들어던 역사었는지도 모르지만 잊고 살았을테죠 저야
감사 하네요..
또 감사 합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2일 at 7:57 오후
가보님.
오늘은 일등 하셨네요. 일찍 일어나셨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흙둔지
2009년 12월 2일 at 8:20 오후
서울, 경기도 문화사절사란 직함을 드려야겠습니다. ^_^
그에 맞는 급료도 드려야 할텐데…ㅠㅠ
이 늦가을에 진달래는 너무했다 싶습니다.
개나리는 종종 봤지만 진달래까지 저리 정신줄을 놓다니요…
몽둥이가 약일까요?ㅋㅋㅋ
노당큰형부
2009년 12월 2일 at 10:34 오후
융릉 건릉에 대한 사적 사실을 배우고
릉과 주변의 경관에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철없는 진달래와 벌 한마리도
세계문화유산을 아는듯 하군요^^*
샘물
2009년 12월 2일 at 10:35 오후
사도세자에 대해 조금 찾아보니 사도세자가 자신의 울화증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알리는 글을 장인에게 보낸 것을 ‘1910년대 초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홍봉한의 5대손인 홍승두 집안의 원본을 거간꾼에게서 구입해 일본에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원본은 야마구치(山口)현립도서관에 보관돼 있고 도쿄대 동양사학과 다가와 고조(田川孝三) 교수가 이를 사진으로 촬영해 1965년부터 이 대학에 보관해 오다 퇴직 후 유품으로 남겼다’ 고 하네요.
그래서 일본에서 사도세자의 일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도세자는 소론을 지지하고 영조는 노론을… 사도세자가 왕위를 이으면 반란이 일어나
조선왕조 자체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영조의 처사로 자결을 하라 했다가 그대로 하려는데
말리는 신하들 때문에 두주에 넣어진 것 같은데 아무려나 당쟁 때문에 단종이나 사도세자나 다 있을 수 없는 죽음을 왕자로서 또는 왕으로 당한 것이니 기가 막히긴 매일반입니다.
ariel
2009년 12월 2일 at 11:07 오후
데레사님 덕분에 저도 융건릉 잘 구경합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2일 at 11:07 오후
흙둔지님.
요새는 꽃 조차 정신줄을 놓아버리니 세상이 요상하게 돌아가는것
같지요?
ㅎㅎ 그래도 지구는 정상으로 돌고 있으니까 안심해도 될겁니다.
멀리 못가니까 그냥 주변만 맴돈다고 생각하세요.
데레사
2009년 12월 2일 at 11:08 오후
노당님.
우리것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많이 등재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저 철없는 진달래를 어찌할까요?
데레사
2009년 12월 2일 at 11:09 오후
샘물님.
이날 따라 일본인들이 많이 왔었어요.
몇마디 주고 받기도 해보고요. 전에는 없던 일이거든요.
암튼 좋은일이죠. 슬픈역사든 기쁜역사든 우리의것이 알려진다는건.
권력이란 이렇듯 부모자식간에도 비정한가 봅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2일 at 11:29 오후
아리엘님.
구경 잘하셨다니 좋아요.
탱큐입니다.
jhkim
2009년 12월 3일 at 12:06 오전
이렇게도 귀하고 중요한 역사공부를
수업료도 월사금도없이 머리에 쏙 쏙 들어가도록 배우게 하여주시다니
잘 배워서 저도 다른이들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찌그리도 자상하신지요
융릉과 건능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도세자 의 참 효심
감사합니다
진달래까지 이렇게요
구산(久山)
2009년 12월 3일 at 12:45 오전
데레사 님 덕분으로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을 알게되었습니다.
호젓이 걷는 융건릉 !
생각만 해도 멋있습니다.
잘 구경했습니다
감사드리며 추천올립니다. 건강하세요!
밤과꿈
2009년 12월 3일 at 12:57 오전
참 잘도 돌아다니십니다^^*
건강하실 때 많이 많이 다니셔요~
비가 내리는 오늘은 어디로 나들일 가실 건지요?
시원 김옥남
2009년 12월 3일 at 12:57 오전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되었군요.
이젠 우리의 것만이 아닌 세계적인 유산으로 보존 되야겠지요.
12월도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데레사님의 건강을 빕니다.
뽈송
2009년 12월 3일 at 1:08 오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얼마되지 않았군요.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 구경 잘하고 갑니다…
이영혜
2009년 12월 3일 at 2:25 오전
사람이 너무 똑똑하거나 개성이 강하면 정 맞다는 말 사도세자도 그랬을거라 여깁니다.
비정한 정치의 희생양의 명복을 빕니다.
정조의 편지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는 요즘에 어울리는 게시물이네요.
데레사 님~감사히 감상합니다.
寒菊忍
2009년 12월 3일 at 2:28 오전
사도세자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근데 왜 그리 정치적인 인간이
되어서 그렇게 명을 재촉했는지…
그 놈의 정치라는 것은 없어고도 안되고
좀 과하다 싶으며 꼭 사단이 나고…
하눌님 좀 말려줘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16 오전
jhkim 님.
수원과 화성일원에는 정조대왕의 효심어린 장소가 아주 많아요.
융건릉, 용주사, 화성, 행궁등….
겨울철에는 멀리 못가니까 집에서 가까운곳이나 다닐려고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17 오전
구산님.
조선왕릉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은 우리의
자랑이지요.
틈나면 한번 가보세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17 오전
밤과꿈님.
오늘은 나갔다가 점심만 먹고 그냥 들어왔어요.
찌푸리고 바람 부는 날씨라 그냥 싫어서요.
완전 공치는 날입니다. 책이나 읽을려고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18 오전
시원님.
맞습니다. 조선왕릉은 이제 세계적인것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시원님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19 오전
뽈송님.
앞으로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더 많이 유네스코에 등재될겁니다.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20 오전
영혜님.
정조의 편지가 무더기로 나오는걸 저도 여기저기서 읽었어요.
외할아버지께 올리는 편지도 보았고요.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20 오전
한국인님.
정치사회란 정말 비정하지요?
지금도 여전하니 정말 누가 좀 말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도리모친
2009년 12월 3일 at 6:26 오전
전에 즐겨봤던 드라마 ‘이산’ 이 겹쳐집니다.
49세란 나이는 너무나 젊은 나인데
그렇게 일찍 가신걸 보니
삶과 죽음 앞에는 권력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곳을 보면 아이들과 가고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 같습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6:54 오전
도리모친님.
아무래도 서울근교는 그쪽 보다는 갈 곳이 많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잘 돌아 다닌답니다.
이산이라는 드라마 저도 봤답니다. 권력이라는게 뭔지 참 비정한
것이지요?
보미
2009년 12월 3일 at 7:05 오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들려주신 사도세자의 죽음
눈물 줄줄 흘리며 들었던 일이 어제 같은데…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에도 줄줄 울어
울보란 별명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왕언니!!!
건강 하셔서 왕성하게 활동 하시니 대단 하셔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7:08 오전
보미님.
반가워요. 초등학교대는 눈물흘리면서 얘기 많이 들었지요.
이제는 눈물도 말랐는지 눈물도 잘 안나오더라구요.
고마워요. 김장 끝냈으니 푹 쉬세요.
해맑음이
2009년 12월 3일 at 7:16 오전
그렇네요. 웅건릉에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권력의 비정함도 들게 만드네요.
권력도 다 허무한 것을….
왜 그렇게도 그 허무한 것을 못 잡아서 안달인지…
예나 지금이나 다 똑같네요.*^^*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데레사님*^^*
오병규
2009년 12월 3일 at 7:42 오전
중학교 2학녀 때이던가?
그곳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그런 사실만 기억할 뿐 그곳의 풍광은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누님의 사진으로 그 기억을 되살려 봤습니다.^^*
아멜리에
2009년 12월 3일 at 7:52 오전
데레사님 여긴 또 언제 다녀오셨어요?
나두 정조대왕 행차할 때 함 따라가 볼 것이나?
오늘은 관악산이 정말 조용했습니다. 아무래도 연말이 가까우니 다들 바쁜 듯?
아멜리에
2009년 12월 3일 at 7:53 오전
글구 ‘청설모, 청솔모 ‘두 가지 다 맞는 말이예용.
청설모로 바꿀까 하다가 수정하기 구찮아 걍 내비뒀습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9:31 오전
해맑음이님.
그래요. 그 비정한 권력을 위해 지금도 피튀기는 싸움을 하는걸
보면 보통사람인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나중 서울오면 안내할께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9:32 오전
종씨님.
중학교때 소풍이 어떻게 기억에 남겠어요?
그때는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바쁜 소풍이었을텐데 말입니다.
ㅎㅎ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9:33 오전
아멜리에님.
며칠전에 다녀왔어.
오늘 점심먹으로 백운호수엘 갔었는데 그곳도 조용하더라고.
날씨탓도 있겠고 연말탓도 있겠지.
청설모, 청솔모 둘다 맞구나.
하나 배웠다. ^^*
해 연
2009년 12월 3일 at 10:36 오전
정치가들 아들 죽이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ㅎ
아마 영조가 왕 노릇은 제일 오래 했을걸요.
정조의 효심은 참 눈물납니다.^^
김현수
2009년 12월 3일 at 11:26 오전
융릉과 건릉에 얽힌 사연이 애잔합니다.
아버지(영조)에 의해 쌀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그 아들인 정조대왕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여, 훗날 결국 자신도 옆에 묻히게 되었지만
정조대왕은 학자출신 왕답게 학문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업적을 많이 남겼지요.
융.건릉을 비롯한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것이
참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브라이언
2009년 12월 3일 at 12:21 오후
뒤주와 저도 연관성이 있답니다.
아주 어릴적 쌀뒤주에 머리를 받아
평생 이마에 팥알만큼 패인 자국을 훈장삼아 살고 있지요.^^*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풀잎사랑
2009년 12월 3일 at 12:28 오후
마음이 아픈 곳을 다녀 오셨네요~
자식을 뒤주에 넣고 죽음에 이르게 한 영조나,
아버지에 의해서 죽음에 으르게 된 사도세자나…
정조의 효심이 지극합니다.
요긴 또 언제 댕겨 오셨어요?ㅎ
하여간 팔도가 너무 좁습니닷.ㅋㅋ~
헵시바
2009년 12월 3일 at 12:31 오후
저곳에서 백일장 대회를 많이 했지요.
점심식사 후 결과를 발표해서
문예부 아이들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일이 떠오릅니다.
운정
2009년 12월 3일 at 2:02 오후
오래전에 융건릉과 용주사를 다녀 온적이 있어요.
다시 보니 반갑네요.
조선왕릉이 세계문화 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11 오후
해연님.
조선왕중에서 가장 장수했고 재위기간이 제일 길었던 분이
영조지요.
정조의 효심은 정말 눈물없이는 대할수 없는일 아닌가 합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12 오후
김현수님.
정조가 좀더 오래살았드라면 더 많은 치적을 남겼을텐데
그분은 일찍 돌아가셔서….
그냥 애잔합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13 오후
브라이언님.
ㅎㅎㅎ
쌀뒤주에 얽힌 얘기가 재미 납니다.
우리집에도 아직까지 쌀뒤주가 하나 있거든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13 오후
풀사님.
멀리 못가니까 그저 경기도 일원만 쫓아댕기는 겁니다.
팔도가 좁은게 아니고 경기도가 좁게요.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14 오후
헵시바님.
그 분에 사셨나 봅니다.
아니면 그 부근이 근무지 였는지…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15 오후
운정님.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이 된것, 정말 자랑스럽지요.
okdol
2009년 12월 3일 at 2:33 오후
선배님 오신다고 기별받잡고, 진달래가 미리 핀것 같습니다. ^^
참, 부지런도 하십니다.
건강하십시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2:35 오후
옥돌님.
그런가 봅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풀잎피리
2009년 12월 3일 at 9:36 오후
소나무 숲길을 걷는 운치가 아주 즐겁지요.
엣시간의 추억이 다가옵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3일 at 11:37 오후
풀잎피리님.
소나무 숲길이 정말 좋던데요. 갈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무무
2009년 12월 4일 at 4:11 오전
우리나라에 세계문화유산이 참으로 다양하게 많이 등재 되어 있지요.
운창선생님(진주검무 예능보유자/물처럼님 어머니) 살아 생전 소원이
당신이 발굴 복원하신 의암별제(논개부인 제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료도 준비해서 발표하러가기도 하고 그랫는데…
아마 의암별제가 관심 받게 될 그날이 곧 올겁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4일 at 5:59 오전
무무님.
그러셨군요. 앞으로 후학들의 노력여하에 달렸지 않을까 싶네요.
의암별제가 관심받는 날이 반드시 올겁니다.
빈추
2009년 12월 5일 at 2:47 오전
중고등학교 시절 단골 소풍장소였죠.용주사, 융건능.
괜시리 병점사거리까지 걸어 나오거나 와우리 쪽으로 우르르 가서
버스타고 집에 오곤 했었는데 지금은..
좋은것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데레사
2009년 12월 5일 at 8:19 오전
빈추님.
제가 수원에 관한 글을 올릴때 마다 찾아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와암(臥岩)
2009년 12월 8일 at 4:54 오전
융 건릉,
마지막에 써신대로 눈물 없인 돌아볼 수 없는 곳이죠.
효심,
그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교육장이기도 하고요.
또 영 정조대의 문화가 어느 정도 찬란한 꽃을 피우게 했는지도 이 릉을 둘러보면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요.
상댱히 오래된 일이지만,
이 페이지를 통해 그 때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었답니다.
추천은 물론이죠.
데레사
2009년 12월 8일 at 11:56 오후
와암님.
옛날에 다녀가겼나 봅니다.
지금은 조선왕릉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어요.
외국인들도 더러 오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