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는 호국의 고장이며 역사의 고장이다.
집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심심하면 훌쩍 다녀오는 곳이라 그냥 무심히 다녀
오는날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강화를 한번 살펴보고 올려고 지도를
펴놓고 가봐야 할 곳을 미리 체크하고 길을 떠났다.
강화에도 가을이 깊다.
강화대교를 건너자 마자 서울에서와는 또다는 색채의 단풍이 우릴 맞아주었다.
강화의 단풍이 유난히 고운것은 공기가 맑기 때문이 아닐까?
갑곶돈대로 오르는 길의 단풍이다.
맨먼저 들린곳이 갑곶돈대다
강화대교를 건너자 마자 갑곶돈대와 함께 역사박물관이 있었는데 역사박물관은
고인돌 공원쪽으로 이전을 해 버리고 없어서 갑곶돈대만 둘러 보았다.
갑곶돈대에서 바라 본 경치, 이곳은바다가 아니고 염하 라는 강이다.
홍이포와 블랑기
조선후기에 우리나라 군대에서 사용하던 대포가 놓여 있다.
이섭정 은 1398년 (태조7년)강화부사 이성이 세웠으나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가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갑곶돈대 안에 팔각의 2층
정자를 세워 이섭정이라 현판을 달았다고 함
여기는 갑곶돈대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이다.
선정을 베푼 유수, 판관, 군수의 영세불망비 및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 삼충신을 기리는 삼충사적비등 총 67기의 비석이 모여있다.
조상들의 자연보호 정신을 엿볼수 있는 표석인 금표는 1703년 (숙종29 년)
강화유수부 앞 등지에 세웠던 것으로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 100대,
재나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 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다음에 들린곳은 광성보 사적 227 호
강화는 곳곳마다 선조들이 피땀흘려 나라를 지킨 호국의 현장이 있는
거룩한 땅이다.
광성보의 누각을 뒤쪽에서 찍은 모습이다.
20 여만평의 자연공원으로 이루어진 광성보는 고려시대의 성을 1618년(광해군10년)에
외성을 보수하고 광성보를 설치했다고 한다.
우리가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난 학생들.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다.
이 곳은 초지진 사적 225호
외세의 침략에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이다.
해상으로 부터 침략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 (1656년)에 구축한
요새다. 고종3년(1866년)에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함대 및
고종8년(1871년)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아세아 함대와의 격전을
벌인 곳이다.
일본 군함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년)에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을
맺어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또한 우리나라의 주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강화안내문에서 발췌했슴)
초지진에서 바라 보이는 김포
멀리로 초지대교가 보인다.
강화에 오면 언제나 마음이 애틋해 진다.
강화섬 전체가 보, 돈대, 진 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평화전망대가 있어
북한땅이 바라 보이기도 하고 그 옛날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서 비감한 마음으로 옷깃을 다시 여미게 되는 그런 곳이 강화땅이다.
강화에 와서 외세에 시달렸던 흔적들을 살피며 마음 아파한다.
( 주말에 강원도에 갑니다. 이웃방문을 못할것 같아서 댓글을 닫았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는 돌아와서 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