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때 초당 허엽이 살던 곳으로 허날설헌이 태어났으며 허균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문화재자료 59호의 허날선헌 생가는 경포호 부근에 있다.
강릉엘 갈때 마다 오죽헌은 들렸으면서 이곳은 그냥 지나치기만 하다가
이번에는 그 부근 초당두부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찾아 가 봤다.
이 집은 흙담과 주변 솔밭이 조화를 이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고 안내문에 쓰여있었지만 고건축의 미학에 대해서 별 아는것도
없는 내 눈에는 집 주위를 환하게 밝히며 피어있는 배롱나무꽃에만 신경이
간다.
나무가 유난히 커서 지붕까지 덮고 있는 배롱나무, 마당안에도 몇그루
있어서 정취를 더해준다.
마침 아주머니들 한떼가 문화해설사와 함께 들이 닥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해설사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시 한번
쳐다 봤다. 나이들어서 참 좋은일을 할려고 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면서
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표정들이 모두 진지하다.
안내문에서 말하듯 생가터는 꽤 넓다.
이 곳에서 두 남매가 문학의 향기를 꽃피웠으리라 생각하니 왜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까 하는 후회가 된다.
허날선헌과 허균은 문향 강릉이 낳은 오누이 문인이다.
오누이는 아버지 허엽과 장남 허성, 그리고 허봉과 함께 허씨5문장가를
이루어 글 잘짓고 학문하는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강릉 땅 초당에서 살면서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탐승하며 시를 읊고 문학성을 키워 나갔다고
안내문은 전한다.
입장료도 안받는데 마당도 건물도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어릴적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으며 박수도 치고 안타까워도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다시 한번 여기저기에서 두 오누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디딜방아가 있는데 당시의것인지 수집해서 가져다 놓은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릴때 우리집에도 저 방아가 있어서 방아찧던 생각이 난다.
꿈속에 노닐던 광상산의 시
-허날설헌-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난새와 어울렸구나
연꽃 스물일곱송이 붉게 떨어져
달빛 서리위에 차갑기만 하여라
사촌에 이르다
-허균-
사촌에 당도하자 얼굴 문득 풀리니
교룡산은 주인 오길 기다린듯 하네
홍정에 몰라보니 하늘 바다 잇대어라
봉래산에 아득히 그 사이에 내가 있네
더운 날씨에도 생가를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홍길동전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없을테지…
유난히 눈길을 끄는 두 자매의 모습, 휠체어를 밀고 온 모습이 참 아름답다.
생가 뒷뜰에는 감나무도 있고 해바라기도 피어있고 장독대도 있었다.
상사화도 피어 있었다.
생가에서 기념관으로 이르는 길은 기념공원으로 허씨 일가의 시비들이
나란히 서 있다.
생가터를 돌아보고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 사진은 다음 포슽에 올릴예정이다.
허난설헌과 허균, 고전문학의 향기가 흩날리는 생가터와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잠시 더위도 잊은채 작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흙둔지
2013년 9월 2일 at 11:42 오후
고택 정원에 보이는 정원수들이 아름답습니다.
한국도 이제는 저런 고택들 관리를 제법 잘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도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지요.
점차 더 좋아지겠지요?
데레사
2013년 9월 2일 at 11:55 오후
흙둔지님.
입장료도 안받으면서 저렇게 잘 관리를 하고 있더군요.
강릉시에서 노력을 많이 하는것 같았어요.
점점 좋아지고 말고요.
mutter
2013년 9월 3일 at 1:40 오전
그 옛날에 저런 집이면 대단한 집안이지요.
제가 저런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네요.
왼지 억울해요.옹기쟁이가 흙으로 어떤 그릇을 빚던 그것은 옹기쟁이 마음대로
라던데 .. 어떤집에 태어나도록 하는것은 하나님 마음대로겠죠?
그래도 억울해!!
睿元예원
2013년 9월 3일 at 2:47 오전
환한 가을햇살이 가슴에
와 닿는듯 합니다.
저의 조상인지라 더욱 ~
데레사님이 쓰시는 관광기는 보신곳을
돋보여 주십니다.^.^
샘물
2013년 9월 3일 at 4:05 오전
참 좋은 내용을 올려주셨네요.
저는 몰랐던게 너무 많은걸요. 허난설헌과 허균(하마트면 홍길동이라고 적을 뻔 했네요)
이 남매인줄 몰랐고 홍길동 만화는 본 것 같은데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없네요.
꽃이름을 모르신다더니… 많이 아시고
집이 참 정갈하고 저런 곳에 살고 있으면 저절로 시인이 될 듯 싶습니다.
허균의 시에서 셋째줄은 ‘홍정에 올라오니’겠지요?
휠체어를 끌고 가는 모습이 과연 아름답네요.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4:20 오전
무터님.
저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해보거든요.
이제와서 억울해도 돌이킬수는 없지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드라면
하는 생각은 더러 더러 해요.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4:25 오전
예원님.
아, 허씨였지요? 예원님이.
훌륭한 조상을 두셔서 뿌듯하시죠?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4:26 오전
샘물님.
휠체어 끌고 이곳저곳 구경시키는 자매의 정이 참 아름다워 보였어요.
앗, 제가 오타를 했네요. 고맙습니다.
나의정원
2013년 9월 3일 at 4:56 오전
허 난설헌에 대한 소설책도 나왔는데, 참 안타깝죠.
시대만 잘 타고났다면 지금의 여류문인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출중한 재주를 발휘하지 못했으니..
님 덕에 잘 구경하고 갑니다.
보미^^
2013년 9월 3일 at 5:56 오전
강릉이 낳은 아니 한국이 낳은 문인들입니다.
남매가 문인이니 대단한 집안이기도 합니다.
가보의집
2013년 9월 3일 at 6:53 오전
데레사님
덕 분에 명소 들 잘 봅니다
허씨 집안 이네요 허균에서 부터요
너무 잘 정돈 된정원이며 나무들 꽃들이 아름답습니다
감사 합니다
아지아
2013년 9월 3일 at 7:05 오전
아하
요런대도 있네요
허균은 알아도 누이는 아무래도 첨 들었는데..
데레사님 땜에 공부 잘 하고 갑니다
누나?
누이동생?
어느쪽이든교?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8:47 오전
나의정원님.
허지만 당시의 제도하에서 이만큼 명성을 얻기도 쉽지는
않은 일이죠.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8:47 오전
보미^^님.
맞아요. 한국이 낳은 문인이죠.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8:48 오전
가보님.
네, 입장료도 안받는데도 아주 잘 관리가 되고 있었어요.
강릉시에서 많이 신경을 쓰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8:56 오전
아지아님.
별게 다 궁금하나 봐요.
누나 였어요.
허난설헌이 1563 년생, 허균이 1569년생이에요.
됐습니까?
노당큰형부
2013년 9월 3일 at 10:06 오전
ㅎㅎㅎ
홍길동전은 알면서 허씨 남매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비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해 연
2013년 9월 3일 at 10:50 오전
허난설헌 책을 읽었었는데 내용에서도 배롱나무가 있었어요.
허난설헌은 이 시대에 태어났어도 적응 못했을것 같아요.
너무 특이해서요.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11:49 오전
노당님.
그러셨군요.
ㅎㅎㅎ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11:49 오전
해연님.
아, 그랬어요?
그래서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나 봐요.
나무들이 큰걸 보면 최근에 심은것 같지는 않았어요.
다사랑
2013년 9월 3일 at 6:20 오후
여행하시고 이처럼 자세히 올려주시니,
저는 그저 지나쳤던 곳도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데레사님께 배워야 할 점이지요. 절실히..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3일 at 10:28 오후
다사랑님.
나도 늘 지나쳤다가 이번에야 들려 본거에요.
뭐 특별할것도 없는데, 고마워요.
잡식
2013년 9월 4일 at 4:13 오후
고향 생각이 납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4일 at 11:46 오후
잡식님.
고향이 그곳인가요?
雲丁
2013년 9월 5일 at 1:13 오후
배롱나무와 기와지붕이 정갈한 운치를 자아냅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완벽한 조화같아요.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5일 at 8:33 오후
운정님.
이곳 배롱나무는 정말 기와지붕과 푸른하늘과 함께
잘 어울였어요.
인회
2013년 9월 6일 at 1:10 오전
와..상사화가 많이 피었군요.
저도 그곳은 지나치기만 했는데..
데레사님의 사진과 글로 대신합니다.
데레사
2013년 9월 6일 at 8:56 오전
인회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매번 지나치기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들려 봤답니다.